한 강연에서 강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진짜 위기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큰 위기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고, 그 위기가 실제로 들이닥쳤을 경우 엄청난 재앙적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기존에 수립한 잘못된 계획을 고집하거나 엉뚱한 방향의 대책을 내놓고 일을 처리한다면?

이와 같은 행동은 위기를 자초했다는 정도의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배임’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태도 내지 행동일 것이다.

이와 같은 배임의 사례로 딱 들어맞는 주인공들이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강원도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재정 파탄 등으로 강원도 지역민 대부분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것이 자명한 상황임에도, 평창조직위나 강원도가 정부에서 당초 권고한 경기장 건설, 운영 방향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제시한 일부 종목의 타 지역 분산 개최 권고를 깡그리 무시하고 기존 계획대로 단독 개최를 고수하면서 계획된 경기장 신축을 밀어 붙이는 현 상황은 분명 배임이다.

▲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가 9일 서울 중구 을지로 조직위원회 서울사무소에서 제19차 집행위원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이처럼 평창조직위나 강원도가 호기롭게 기존 대회 개최 방향을 고수할 수 있는 데는 IOC의 분산개최 권고를 일축해버린 박근혜 대통령의 멘트가 한 몫 단단히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뭐 상황의 배경이야 어떻든 분명한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평창동계올림픽 자체의 실패는 물론이거니와 강원도는 재앙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몇 가지 수치만 보면 답은 바로 나온다.

최근 인천시가 발표한 인천시의 부채규모는 13조 242억 원이었다. 이와 같은 부채규모 가운데 인천아시안게임으로 직접적으로 만들어진 빚 약 1조원을 포함해 상당한 비율의 액수가 작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치르면서 늘어난 직접 또는 간접적인 비용 탓이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수치는 장난 수준에 불과하다.

문화체육부가 확정한 올림픽예산은 물경 13조 원이다. 심각한 것은 이 예산 가운데 절대적인 비율의 액수가 도로, 철도, 경기장 건설 등 대규모 토목.건설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는 점이다.

이는 작년 인천 아시안게임과 흡사하다. 인천아시안게임도 2조5천억 원의 대회 예상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약 2조원을 경기장을 건설하는 데 쏟아 부었다.

인천이 13조 원이 넘는 시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아시안게임에 사용됐던 경기장과 각종 시설을 민간에 매각하려고 하고 있지만 헐값이 아니고서는 사려고 나서는 기업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 공사 중인 평창 슬라이딩센터<<연합뉴스 DB>>
평창은 어떨까? 아마 훨씬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1년 예산이 약 3조 원에 불과하고 재정자립도가 작년 기준 18.7%로 전국 최하위권인 강원도의 현실을 감안하면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의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암담하다.

강원도는 우선 세 차례 동계올림픽 유치전을 치르면서 이미 수백억 원에 이르는 돈을 썼다.

또 건설비만 1조7천억 원에 달하는 알펜시아리조트는 현재 분양이 저조한 상황이다. 그렇게 몇 년을 허송세월 하는 사이 하루 1억3천만 원 정도를 날리면서 이자로만 엄청난 돈이 지출되고 있다. 강원도가 정부에 알펜시아리조트를 사달라고 떼를 써보고 있지만 정부가 덥석 사줄지는 미지수다.

동계올림픽 경기장으로 사용될 경기장들 역시 시설 수준이 올림픽을 치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지적 받기 일쑤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스키점프 경기장이 그랬고, 스노보드와 스키 프리스타일 경기장이 그랬다.

특히 스노보드와 스키 프리스타일 경기장의 경우 당초 보광휘닉스파크 경기장을 보수하는 비용으로 총 205억 원(정부 154억 원, 강원도 51억 원 부담)의 예산이 책정돼 있었지만 현재는 이 비용이 1천040억 원으로 5배 넘게 불어난 상황이다.

여기까지도 어찌어찌 참아줄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인천공항과 서울에서 강원도 지역으로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해 KTX, 복선철도, 고속도로 등을 확충하는 데 투입되는 약 13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지금은 보기에 근사해 보일지는 모르나 동계올림픽 이후 상황을 떠올려 보면 강원도민이 애처롭게까지 느껴진다.

전체 1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건설비용 가운데 강원도 내에서 벌어지는 사업에 대해 강원도가 25~40%의 예산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교통 인프라의 확충으로 서울과 시간거리가 가까워졌을 경우 강원도 지역 경기가 오히려 침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교통시설의 확충으로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좋아지면 여행객들은 굳이 강원도에서 숙박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강원 지역민 역시 옷 한 벌을 사더라도 잠깐 고속철도를 이용해 서울에 와서 사려 할 것이다.

그럴 경우 강원도는 지역 공동화 현상과 그에 따른 지역 경기 침체라는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

여기에다 동계올림픽 이후 미처 활용법을 찾지 못한 경기장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된다면 평창은 소치에 이어 ‘유령도시’라는 기분 좋지 않은 별칭을 갖게 될 수도 있다.

▲ 9일 오후 강원 평창 고원전지훈련장에서 열린 'G-3년, 미리 가 보는 평창'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성화봉송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양호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연합뉴스
최근 MBC 보도에 따르면 총 55조 원이 투입된 소치동계올림픽 이후 도심을 오가는 열차 운행 회수가 10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었고, 공항과 연결되는 노선은 아예 폐지됐다. 폐업하는 숙박업소와 식당도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외 상황이 이렇다. 이런데도 평창은 요지부동이다. 이런 태도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아대 정희준 교수는 이 같은 평창조직위와 강원도의 태도에 대해 “올림픽이 이들에겐 스포츠가 아닌 '토목개발 이벤트,' '국고예산 따먹기 프로젝트'”라고 했다. 또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를 정점으로 하는 지역 기득권집단을 위한 돈잔치”라고도 규정했다.

인천시가 굳이 신축할 필요가 없었던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을 꾸역꾸역 건설해야 했던 이유도 결국 평창과 다를 바 없다. ‘반짝 부동산 경기’를 등에 업고 ‘한탕’ 해보려 했던 사람들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올해 열릴 광주유니버시아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이 같은 비이성적인 상황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사실상 유일한 희망은 강원도민들뿐이다. 지금이라도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근거 없는 희망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현재 상황으로는 평창동계올림픽이 강원도와 대다수 강원도 지역 서민들의 살림살이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오히려 평창동계올림픽 준비로 인해 생겨난 엄청난 재정부담을 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정작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슬그머니 빠져나가 다른 곳 다른 자리에서 평창 무용담을 술자리 안주거리 정도로 삼을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분산개최든 개최권 반납이든 그 어떤 논의든지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예정된 재앙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꼼짝없이 재앙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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