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2주년 풍경은 초라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청와대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집권 이후 처음으로 조회를 여는 것으로 취임 2주년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3분 30초간 발언하고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드물게 사심없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상 퇴임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여전히 후임 비서실장은 정해지지 않았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통일준비위 구성 등을 밝히던 1주년과 비교하면 다소 썰렁한 모양새다. 일부 언론은 ‘개문발차’라는 표현을 내놓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취임 2년 만에 확 달라진 박근혜 대통령의 위상이다.

▲ 한국일보 25일자 사설.

취임 2주년, 그러니까 3년차의 시작인 25일 이와 관련한 사설을 쓴 언론은 단 두 개였다. 첫 번째는 <한국일보>다. <한국일보>는 <박 정부 3년 차, 열린 자세로 공감 끌어내는 게 관건>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시중에는 아직 취임 2년 밖에 안 지났느냐는 빈정거림도 상당하다. 임기 반환점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벌써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피로도가 심상치 않다는 뜻”이라면서 “박 대통령이 보다 열린 자세로 국민의 공감과 신뢰를 얻어 임기 3년 차를 힘있게 시작하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한국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때 제시했던 국정과제 대부분이 표류하고 있고, ‘정치권의 비협조’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여당 내 비주류나 야당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국정 운영 과정에서의 투명성 부족과 밀실인사로 인한 실패를 거듭했다는 점 등을 들어 지난 2년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 한겨레 25일자 사설.

<한겨레>의 평가는 좀 더 박하다. <한겨레>는 이날 <국민을 불쌍하게 만든 ‘박 대통령 2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박 대통령이 지닌 많은 문제점 중에서도 핵심을 꼽으라면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없이 언제나 핑계와 남 탓으로 일관하는 행태가 아닌가 싶다”면서 “이런 태도는 정권은 물론 나라 전체의 변화와 발전을 막는 최대의 걸림돌로 작용해왔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어터진 국수론’을 언급하며 “불어터진 것으로 따지자면 국수가 아니라 이 정권이 보여온 갖가지 행태다. 케케묵은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에, 역사의 시곗바늘을 뒤로 도리는 반민주적 악습의 부활, 여기에다 ‘불어터진’이라는 말로는 모자라는 ‘태곳적’ 인물들이 전면에 재등장해 권력을 휘둘러온 게 현실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외에도 <한겨레>는 박근혜 정권 2년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외의 신문들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년에 대한 어떤 기대나 비판을 내놓기를 사실상 포기했다. 아마도 이유는 첫째, 지금까지 나름의 기획기사와 사설을 통해 비판과 전망을 이미 많이 내놓았기 때문일 것이고 둘째,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과 정부의 상층 일반이 이미 ‘김이 샌’ 분위기라는 것을 스스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김기춘 비서실장을 둘러싼 상황은 이를 정확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를 사실상 퇴임‘시켜야’ 할 정도로 민심이반이 급속하게 진행됐지만 후임은 쉽게 찾을 수 없는 황당한 국면이다. 그러니 늘 하던 비판을 다시 하거나 굳이 취임 2주년을 상기시키는 공격적 지면 편집 등은 하지 않는 게 답인 것이다.

애초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기대는 우리 경제를 개발연대 시절의 호황기로 돌려달라거나 사회적 발전을 획기적으로 이뤄달라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이전 정권에서 강조됐던 기득권들의 권력에 대한 사유화와 국정농단에서 벗어나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만 해달라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일반적 기대였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본은 해달라’는 요구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년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실망스러운 정국의 연속이었다. 대선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는 정권 초기 하는 시늉만 하다가 6개월도 안 돼 사실상 폐기됐다. 뒤를 이은 박근혜 정권 경제정책의 메시지는 이명박 정권의 ‘비지니스 프렌들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야심차게 내놓았던 ‘창조경제’의 비전은 이제 그게 무엇이었는지 신경쓰는 사람조차 없게 됐고 오로지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과 대기업 위주의 산업단지 조성만 남아있는 상태다.

물론 앞서 강조했듯 경제정책에서의 이런 문제들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어찌됐건 이건 ‘정책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박근혜 정권의 이와 같은 행태는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됐다. 국민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안긴 이 참사에 대해 박근혜 정권은 그저 안이하게 대응하면서 어떻게든 책임을 모면해보려는 자기 변명으로 일관했다.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뒷받침했어야 할 새누리당과 그 내부의 대통령 친위대(?)들은 오히려 온갖 망언을 일삼으며 상황을 혼란으로 몰고 갔다.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에 대한 수사는 마치 블랙코미디 영화처럼 끝나버렸고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던 세월호 특별법은 거의 누더기가 돼 국회를 가까스로 통과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 누구도 위험에 빠진 삶을 국가가 책임져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여기까지도 소위 ‘콘크리트’이라 불렸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층은 참을 수 있었다. ‘야당’과 ‘외부세력’이라고 하는 존재들에 책임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의 음모와 생떼 때문에 위기가 심화됐다고 생각하는 흐름까지 생겨났다. 여기에는 ‘종편’ 역시 혁혁한 역할을 했다. 임기 2년 중 거의 반년을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낸 박근혜 정권은 이렇게 위기를 넘기고 기사회생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마지막 보루인 ‘콘크리트’도 무너졌다. 청와대 내부의 기강 붕괴,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의 권력다툼,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 운영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재앙을 김기춘 비서실장 및 ‘문고리 권력 3인방’의 경질을 통한 국면전환으로 빠져나가야 한다는 훈수를 거의 모든 언론이 제기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은 잘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면서도 남의 말 역시 듣지않는 완고한 불통의 모습이 온전히 대통령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드러나는 것으로 귀결된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은 25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청와대 직원 조회에 참석, 행사장에 입장하며 직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외면’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국면을 지배하는 극단적인 냉소와 좌절로부터 정권의 성공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정부의 구성원들도 자유롭지 않다. 보수언론 등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와 각 장관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함으로써 정부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지만, 사실 핵심은 내각의 자율권 등이 아니다. 정권의 핵심부에서부터 이미 패배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2017년의 정권재창출은 이미 기대할 수 없게 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공직사회를 뒤덮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퇴임 준비를 하면서 검찰에 대한 청와대의 장악력을 강화하려 한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즉, 이대로 있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빨빠진 호랑이가 될 수밖에 없고 대통령이 무엇을 말하든 정부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어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레임덕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식물정권’을 걱정할 판이다. 단 2년 만에 이렇게 됐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다만, 그렇다하더라도 살아있는 권력의 힘은 언제라도 부활할 수 있는 것이기에 앞으로라도 잘해보자는 다짐 또한 해볼 수 있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부터 변화된 모습을 보이며 패배주의를 버리고 과감한 행보를 해야 한다. 지금은 무엇을 해도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가만히 앉아서 팔다리가 마비돼버리는 것보다는 낫다. 최소한 그 정도의 정치감각은 발휘해야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 국정운영동력을 다시 확보하기 위한 모든 정무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여전히 한가해보인다. 이쯤되면 무엇을 위해 대통령이 된 것인지를 묻고 싶을 정도다. 슬픔과 좌절, 절망을 딛고 대통령이 하루 빨리 ‘각성’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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