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출범과 함께 등장한 여대야소 18대 국회의 첫 국감이 끝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는 50여개의 미디어·문화 관련 피감기관들의 1년 살림살이를 20여일 내에 모두 감사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사진기자들을 향해 “사진을 찍지 말라”며 막말을 하고 있다. ⓒYTN 화면 캡처
고질적인 ‘몰아치기’ 국감의 폐해 탓인지, 또 부실한 내용을 가리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이번 문방위 국감은 격렬한 호통과 파행을 거듭했고, 결국 국감 마지막날인 지난 24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찍지 마! XX’ 막말 사태를 끝으로 ‘막말 국감’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같은날 오후 국감이 끝나기도 전에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가 주최한 ‘국정감사 제도개선’세미나에서는 “실컷 질문해놓고 장관 답변을 못 듣는 행태가 반복된다”며 ‘정기국감 폐지와 상시 국감제 도입’ 등이 제기되기도 했다. 새삼스러운 주장은 아니지만, 그 와중에도 이번 국감을 통해 새로이 밝혀진 ‘뉴스’들은 있었다.

◇ 유인촌 장관의 ‘문화부 예산은 쌈짓돈’ =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지난 3월 취임 직후 ‘코드 인사’ 발언으로 설화를 겪은 뒤에도 자주 ‘말 트러블’을 일으켰다. 지난 8월 유 장관은 올림픽 선수단 청와대 만찬에서 문대성 선수의 IOC위원 선출과 관련해 축하 인사를 건네며 “대통령께서 만들어주신 거야”고 발언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국감에서 유 장관의 말이 ‘근거있는 덕담’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지난 10월 6일 문체부 국감에서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문대성 IOC 위원 선출과 관련해서 국가예산(국민체육기금 적립금)이 2억여원 들었다. 대통령이 직접 문대성 선수를 IOC위원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2억원 때문이냐”고 질문했고, 유인촌 장관은 “그렇다고 볼 수 있다”고 답해 파장이 커졌다.

문체부의 베이징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 지원도 논란의 대상에 올랐다. 이번에도 유 장관 재량권에 있는 스포츠토토 수익금 중 2억1189만3000원이 지출됐다. 이에 야당은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진행된 정연주 사장 해임안 처리, 경찰청의 촛불 강경 진압 등을 지적하며 “스포츠를 정치적 의도에 동원하려는 것이냐”는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공개한 문체부 자료에 의하면, 유인촌 장관의 지난 2월말 취임 후 8월까지 ‘장관 재량’으로 집행한 금액이 300억원 이상이었다.

◇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잦은 ‘호텔 출입’과 ‘언론(장악) 대책회의’ = 지난 6일 현안인 YTN 중징계 사태와 관련한 별도의 긴급 조사위를 꾸리자는 민주당에게, “증인들이 모두 참석하는 방통위 국감장에서 하면 된다”며 고흥길 위원장 등 한나라당이 강경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후 이어진 방통위 국감 등은 흡사 ‘구본홍 국감’이라 불릴 정도로 YTN 사태에 집중됐다.

▲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6층에서 열린 문방위 확정감사에 참석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곽상아
실제로 지난 9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정권이 YTN 사장 인선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들이 드러났다. 이날 증인 질의에서 구본홍씨는 사장 선임 이전에 최시중 방통위원장 및 박선규 청와대 비서관 등을 만나왔으며, 사장 선임 뒤에도 현 정권 주요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실 또한 확인됐다.

한편 민주당으로부터 고발당한 KBS 후임사장 논의 관련 ‘8·17 KBS 대책회의’가 단순히 밥먹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재천 KBS 이사장 등이 증언했고, 그 전날 이명박 대통령의 “KBS 후임사장으로 김인규는 안된다”는 발언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의혹도 민주당 최문순 의원을 통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측의 공식적인 해명은 아직까지 없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참석한 언론관련 대책회의가 이것 말고 더 있었던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지난 23일 방통위 확인감사에서 민주당은 김회선 국정원 2차장, 나경원 한나라당 문방위 간사,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최시중 방통위원장 등이 참한 해이른바 ‘8·11 언론 대책회의’가 열린 것에 대해 “5공시절 관계기관 대책회의 부활이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KBS 정연주 사장 해임 직후에 열린 이날 모임에 대해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과 최시중 위원장은 ‘일종의 당정회의를 겸한 조찬 모임’이라고 반박했다.

잦은 ‘밥 약속’ 때문인지, 최 위원장은 취임 후 6개월간 6천여만원의 판공비를 쓴 사실도 드러났다. 방통위 전신에 해당하는 구 방송위원회 위원장보다 3배가 넘는 액수였다. 지난 9일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최 위원장이 취임 후 6개월간 판공비로 6800만원을 사용했다. 내역을 보면 롯데호텔, 조선호텔 등 3분의 2가 호텔”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한 달에 1천만원 정도의 판공비는 많지 않다”며 “설립초기이기 때문에 기구 안정화와 통합을 위해 필요했던 돈”이라고 답했다.

▲ 한나라당 진성호 국회의원 ⓒ미디어스
한편 같은날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어, 최민희 전 방송위 부위원장이 총 19개월여간 업무추진비로 3460여만원(1개월당 약 184만원)을 사용했다고 ‘폭로’했으나,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판공비만 도드라지게 하는 역효과만 내고 말았다. 더구나 진 의원은 이 과정에서 언론노조를 ‘친노단체’라고 불렀다가 ‘설화’를 겪기도 했다.

◇ 국감장에 ‘경찰’ 등장 = 그러나 몇몇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야간 기싸움과 감정적 정쟁이 국감기간 내내 이어졌다. 이례적인 KBS 본사 진입으로 말썽이 됐던 경찰은 문방위 국감장에도 등장해 논란거리가 됐다. 지난 9일 오전 방통위의 국정감사장 주변에 배치된 전경에 대해 민주당 서갑원 의원 등은 “국정감사장 밖에 전경 4명이 배치돼 있다. 경찰을 동원하면서까지 국정감사를 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 이렇게 전경들이 감시하는 상황에서 국정감사를 이어갈 수 없다”며 “경찰력 투입 요청을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했는지,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했는지 밝히라”며 크게 반발했고, 감사가 중지됐다. 이날 중단된 국감은 6시간이 지나서야 재개됐다.

이날 경찰배치에 대해 고흥길 국회 문방위 위원장은 “(와이티엔 등) 노조의 항의시위가 있을 것 같아 국회 경위과에 요청해 제 주위에 경위 배치는 요청했으나, 다른 경찰 병력은 전달받은 게 없다”고 했고, 최시중 방통위원장도 “와이티엔 노조원 수십명이 와 있어 돌발상황이 있을지 몰라 종로경찰서에서 (전경) 4명이 나온 것 같다”며 “그러나 우리가 공식으로 요청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의 해명과 달리 같은 날 국회 행안위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이길범 경찰청 경비국장은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질문에 “방통위의 요청에 따라 KT 빌딩 국감장 앞에 경찰 4명을 배치했다가 오전 11시쯤 철수했다”고 답해,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위증 논란이 제기돼기도 했다.

한편 경찰은 16일 언론재단 등 6개 언론관련 단체에 대한 국정감사 날에도 나타났다. 이날 국감이 시작되기 전,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프레스센터 국정감사장에서 ‘언론노조는 친노단체’라는 주장을 했던 진성호 의원에게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국감장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신학림 전 위원장은 뒤따라온 사복차림의 형사와 함께 임의동행 형식으로 남대문경찰서에 출두, 조사를 받았다. 이날 경찰서 출두는 문방위원장인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의 지시(?)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다.

◇ 기상천외 ‘말말말’ = 이른바 ‘막말 국감’이라는 오명에 걸맞게 이번 문방위 국감에는 각종 ‘깜짝 발언’들이 상당수 쏟아져나와 논란에 휩싸였다.

▲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중재위원회, 한국방송광고공사, 신문발전위원회에 대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언론노조가 친노 노조라고 발언했던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에게 항의하다가 국감장을 나서고 있다. ⓒ여의도통신
국감기간 일부 피감기관에게 발송된 ‘청첩장’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은 “최민희 전 방송위 부위원장은 재임 시절 친노 시민단체인 민언련과 언론노조 간부들을 만나 방송정책과 방통융합 정책에 대해 긴밀히 논의했다”고 주장해 언론단체들에게 ‘친노 단체라는 근거를 대라’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한국기자협회 등 기자들에게 ‘언론자유 탄압’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YTN 사태와 관련,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은 지난 9일 “YTN노조의 구본홍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구성하고, 폭력행위 등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지난 23일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8.17 KBS 대책회의’ 등으로 물의를 빚은 최시중 방통위원장에게 “KBS 대책회의는 자연스러운 모임이라고 본다”면서 “위축되시지도 않겠지만, 당당하게 하셨으면 한다”며 “지난 정부에서 대책회의도 했을 거고 국정원이 참석도 했을 거고…. 자연스러운 대책회의는 앞으로도 많이 하십시오”라며 ‘대책회의’를 권장하는 발언을 했다.

여당 의원들의 격려 탓인지 문방위 피감기관장들의 답변 태도도 이색적이었다.

야당 의원들에게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답변을 주로 내놓던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지난 23일 사퇴할 의향이 없느냐는 천정배 의원의 질의에 “천 의원님, 사퇴병 또 도지셨느냐”며 국감장에서 농담(?)으로 응수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24일 국감장에서 팔짱을 끼고 답변하는 태도에 대해 민주당과 고흥길 위원장 등의 지적을 받고도, 오히려 국회의원들에게 “이 자세가 불편하냐”고 되묻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도 화제가 됐다.

▲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신재민 제2차관이 의원의 질의에 팔짱을 낀 채 답하고 있는 모습을 유인촌 장관이 지켜보고 있다. ⓒ여의도통신
피감기관장의 발언록 중 결정판은 같은 날 유인촌 장관이 기자들을 향해 “사진 찍지 마, XX 찍지마!”, “성질 뻗쳐서 정말, XX 찍지마”라고 말한 ‘욕설 논란’이다. 26일 유 장관은 ‘이명박의 휘하들, 졸개들’ 이라는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정권 비난 발언 등에 대해 화가 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사과했다.

먼저 발단이 된 것은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의 발언으로, 안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의 질의와 주장을 들으면, 정확한 인식과 판단을 가로막는 3가지 요인이 있다. 잘못된 정보, 지나친 자기확신, 피해의식이다. 국정원에 대한 피해의식을 이해한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어떤 기관만 나오면 ‘공작’ ‘음모’를 떠올리고…이번에 이 건(이른바 8·11대책회의)을 가지고도 ‘언론장악’이니 해서 국정조사를 하는 것은 소모적 행위다”라고 민주당 의원들을 자극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10년 전 IMF를 일으킨 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은 지 8개월만에 주가가 폭락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더니, 다시 10년 전으로 회귀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그 휘하들은 참회를 해야 한다. (이 자리에 있는) 장관, 차관, 공공기관 낙하산 대기자들은 이명박의 휘하이자 졸개들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민 사기극의 가해자”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민주당은 유인촌 장관의 사퇴를, 한나라당은 이종걸 의원이 원인을 제공했다며 국회 윤리위의 징계를 각각 요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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