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2TV 채널의 송출을 놓고 EBS와 유료방송 사이에 갈등을 빚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논점 자체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다채널방송 서비스(MMS)로 개국한 EBS2TV가 의무재송신 채널이냐 아니냐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핵심이다. EBS와 한국방송협회는 물론,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까지 나서 케이블이 EBS2TV를 송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시청권 보장이 명분이다. 반면, 케이블방송협회는 법적으로 의무재송신 채널이 아니므로 송출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 11일 오후 3시, 서울 도곡동 EBS 본사에서 EBS 2TV 개국식이 열렸다. (사진=EBS)
주장의 시비와 양측의 유불리를 따지기 전에 MMS가 무엇인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MMS는 지상파다채널 서비스로 유료방송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무료보편적 방송서비스인 지상파의 직접수신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측면이 크다. 90%가 넘는 국민들이 케이블과 위성, IPTV 등 유료방송 가입자인 기형적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다. 시청자들의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도 다양한 채널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서비스가 바로 MMS인 것이다.

지금 EBS 노사와 방송협회는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다. 당장 많은 시청자들이 볼 수 없다는 이유로 MMS를 도입한 애초의 취지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료방송 의존율을 낮추겠다는 명분으로 허가를 받아 서비스를 시작해놓고 이제는 유료방송의 협조 없으면 방송을 못 하겠다고 몽니를 부리는 꼴이다. 근시안적일 뿐 아니라 편협하고 옹졸하기까지 하다.

논쟁은 지지부진하게 계속되고 있는 재송신료 분쟁과는 무관하다. 유불리가 아니라 본질과 명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상파를 재송신함으로써 얻는 유료방송의 이익을 당사자끼리 나누는 것은 협상이든 법정 싸움이든 그것대로 하면 된다. 보다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돈을 내지 않고도 여러 채널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MMS를 이해관계의 틈바구니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지상파 스스로 파는 무덤이 될 것이다. 의무재송신 채널이냐 아니냐 따지는 것 자체가 꼴사납고 구차한 행위다.

이 문제를 다루는 여러 미디어지의 보도 또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MMS의 기본 도입취지를 따져보거나 직접수신 방식을 안내하는 기사는 찾기 힘들고 갈등의 양상만 중계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상파=공익=선=지원 / 유료방송=사익추구=악=견제의 프레임을 벗지 못해 EBS에 쓴소리를 못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굳이 공익을 따진다고 해도 EBS2TV는 유료방송에서 재송신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시청자를 확보한다고 해도 그건 속빈 강정일 뿐이다. 2TV 직접수신 안내와 함께 유료방송을 통해서도 송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EBS의 사고(社告)를 보고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의무재송신을 주장할 시간과 에너지로 국민들에게 직접수신의 이로움을 더 많은 홍보하는 편이 낫다. 장기적으로는 많은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낄 콘텐츠로 2TV를 채워야 함은 물론이다.

필자는 지상파가 권력과 자본에 영향을 덜 받고 공익성과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접수신율이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핵심수단이 MMS이며 첫단추인 EBS2TV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시청자 중 한 명이다. 그런데 그 성공의 기준은 유료방송의 힘을 빌려 당장에 2천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TV 수신료 외에도 매달 수천원을 추가로 부담해 가며 저질 프로그램들까지 억지로 봐야 하는 시청자들에게 지상파만으로도 품격 있고 즐거운 방송을 누릴 수 있게 해야 진짜 성공이다. 지금의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KBS 등 다른 지상파방송이 MMS 채널을 운용하겠다고 했을 때 용인할 수 있는 시청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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