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살거나 장기간 여행하다 보면,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고국에 대한 향수가 깊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때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반가운 인연은 없을 터. 낯선 이국땅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찰나에, 그가 아는 다른 한국인을 소개해 주겠다고 동석을 시킨다. 이렇게 여러 명의 한국인과 어울리는 가운데서 흥겨움은 가득하지만, 이런 즐거움은 이내 얼마 가지 못하고 만다. 동석한 한국인들이 본색을 드러내고는 납치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영화 <개: dog eat dog>는 이런 비극을 담고 있다. 필리핀 한인 납치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피해자가 당하는 비극을 극대화하진 않는다. 납치범들의 비열한 이해관계를 묘사하는 가운데서 피해자의 가족이 겪는 비극을 심리적으로 묘사한다. <개: dog eat dog>를 공동으로 만든 황욱, 박민우 감독을 만났다.

▲ <개: dog eat dog> 황욱, 박민우 감독 ⓒ어뮤즈
- 영화 <개: dog eat dog>는 필리핀 한인 납치사건을 소재로 다룬다. 필리핀 한인 납치사건이라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소재다.

황욱: “필리핀 한인 납치사건을 주도한 납치범들은 끈끈한 유대관계로 맺어진 인물들이 아니다. 본인들끼리도 납치사건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납치사건의 범인이 잡힌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된다. 영화는 실제 사건을 100% 옮겨놓은 건 아니다. 만들어진 인물과 납치단을 만들어서 그들이 잡히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에서 영화를 풀어간다.”

- <개: dog eat dog>는 가해자의 심리가 두드러지는 반면에 피해자가 고통당하는 장면은 순화하여 보여준다. 실제 한인 납치사건은 어느 정도였는가.

박민우: “영화는 납치당한 피해자가 밧줄로 묶이는 식으로 순화되어 표현되었다. 하지만 실제 범인들은 쇠로 만든 수갑을 이용해서 피해자의 손과 발을 묶었다고 한다. 실제 납치범들은 납치 대상자를 제압할 수 있는 총과 칼 같은 흉기를 준비하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납치된 피해자를 협박할 때는 납치범이 피해자의 입에 총을 집어넣고 협박하는 식으로 잔인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영화는 피해자가 고통당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가해자가 법망을 피해서 악독하게 피해자를 유린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 <개: dog eat dog>에서 영어 ‘dog eat dog’의 의미는?

▲ <개: dog eat dog> 황욱 감독 ⓒ어뮤즈
황욱: “영화를 보면 가해자들끼리 알력 다툼을 하는 가운데 진실을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다. 영어 제목은 가해자들끼리 알력 다툼을 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관용어구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의미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동족상잔이란 한국인을 납치하는 사람이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 때문에 시나리오 단계 때부터 영어 제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 한국인이 한국인을 납치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나.

박민우: “해외에서 한국인이 당하는 납치나 강도, 성폭행 등의 강력범죄들을 외교통상부의 DB를 조사했다. 해외 여행객이나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이 당하는 범죄가 해외에서 한 해에 4900건이 발생한다고 한다.”

황욱: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저지른 범죄 수치가 그만큼 많다는 건 아님을 밝힌다. 해외에서 한국인이 한국인 및 외국인에게 당한 전체 통계를 말한다.”

- 감독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 영화 찍을 때 역할 구분은 어떻게 했나.

황욱: “시나리오는 박 감독과 힘을 합쳐 만들었다. 집필은 제가 했지만 각색은 혼자 하지 않고 박 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터키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처음 터키에 가서 촬영할 때는 감독 두 명과 촬영감독 한 명, 배우 두 명 이렇게 다섯 명이 촬영했다.

다섯 명이 돈을 모아서 터키로 갔다. 제작과 분장, 소품을 힘을 합쳐서 소화해야 했기에 특별한 역할 분담 같은 건 따로 없었다. 장면 구성이나, 영화를 어떤 맥락으로 끌고 가자는 방향성에 있어서는 박 감독과 함께했다.”

- 영화에 등장하는 세 납치범 형신과 지훈, 두진은 어떤 관계인가.

박민우: “의리로 뭉쳐진 관계가 아니다. 이해관계로 움직인다. 납치단에서 서열 2-3위에 해당하는 형신과 지훈은 서로 호흡을 맞출 줄 안다. 그럼에도 형심과 지훈 역시 믿음이나 의리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본인들이 챙길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해외 납치단에서 가장 궂은일을 맡으면서, 해외 납치가 탄로 나면 가장 먼저 버려질 수 있는 존재가 두진이다.”

- 박민우 감독과는 친구 사이다. 어떻게 두 사람이 공동 감독을 맡았는가.

▲ <개: dog eat dog> 박민우 감독 ⓒ어뮤즈
황욱: “영화를 만들 때 같이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영화를 만들 때에는 놓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점을 든든한 친구와 함께 작업하면 충분히 메워가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박)민우가 필리핀 한인 납치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구와 공분(公憤)을 함께 이야기하고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만일 영화를 혼자 만들었다면 현장에서 부담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감독을 맡아서 끝까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 <개: dog eat dog>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박민우: “필리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필리핀 한인 납치사건과 비슷한 강력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외교통상부와 해외여행을 가시는 분들이 이 영화를 통해 경각심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 매일 새로운 사고가 터진다. 그래서 필리핀 한인 납치사건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수 있다. 피해자와 같은 비극이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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