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 간만에 온 가족이 모이면 이래저래 할 말도 많고 부칠 전도 많아 바쁘지만 한쪽 구석에서는 오묘한 눈빛들이 오고감과 동시에 군용 모포가 펼쳐지는 자리도 생기기 마련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명절 고스톱 판은 특히 설날 전야의 경우에는 내일 있을 세뱃돈 지출을 이 판에서 좀 메꿔 보겠다는 참가자들의 의기가 드높은 판이 펼쳐지곤 해 더욱 긴장감이 감돈다.

고스톱은 돈이 오고가는 도박적인 요소를 접어두고 본다면 매우 재미난 룰을 가진 카드 게임이다. 섯다, 포커 등 대표적인 도박성 카드게임들과 달리 고스톱은 판돈을 거는 베팅과 심리전의 재미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대신 패를 내고 먹는 과정에서 모은 카드들의 점수 합계를 내고, 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수의 배율을 키우는 이른바 <고 or 스톱>의 선택을 통한 게임 진행에 재미의 무게가 실린다.

베팅이 아닌 스코어링을 다루는 게임이기 때문에 <고스톱>은 화투를 이용한 다른 여러 게임보다도 온라인 게임에서 높은 인기를 얻는다. 온라인으로 <섯다>를 해본 사람들은 대개 맥이 빠지는 것이, 상대의 얼굴도 보이지 않고 대화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베팅과 블러핑, 심리전의 묘미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고스톱>, 그중에서도 특히 <맞고>는 온라인 보드게임 분야에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며 여러 게임회사들의 캐시카우로 아직까지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 오프라인 모임에서 <고스톱>은 일반적으로 ‘남자 셋이 모이면’이라는 수식어를 달 정도로 3인 이상 플레이의 대명사로 거론되는 반면, 온라인에서는 2인용 변형룰인 <맞고>가 대세라는 점이다.

▲ 영화 <타짜>의 한 장면. (사진=다음 영화)

온라인에서 <맞고>의 인기가 <고스톱>보다 좋은 이유는 우선 점수가 크게 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금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이버머니가 오고가는 판에서 2인 게임인 <맞고>는 3인 게임 <고스톱>에 비해 플레이어에게 들어오는 카드 수 자체가 많다. 들어오는 카드 수가 많으니 스코어링이 되는 조합도 보다 쉽게 이루어지고, 당연히 높은 점수가 나는 것이다. 게임의 ‘GO or STOP’을 결정하는 순간이 3인 <고스톱>은 3점 도달시, 2인 <맞고>는 7점 도달시인 룰부터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데, 베팅과 스코어링의 차이다. <포커>, <섯다> 등의 게임은 <고스톱>류에 비해 베팅의 비중이 스코어링보다 높다. 이른바 ‘족보’라고 부르는, 게임의 승패를 결정짓는 패 조합의 우열을 나타내는 순서를 기준으로 <섯다>와 <포커>는 상대와 족보상의 우위를 놓고 승패를 결정짓는데, <고스톱>에 비해 이 두 게임은 스코어링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정통 룰 <섯다>의 경우에는 아예 패 돌리는 상황에서 받은 두 장의 카드가 고정되어 있어 한 판의 점수가 불변이다. 물론 <섯다>는 단판이 아니므로 카드카운팅 등의 확률적인 계산도 가능하지만, 그래도 <섯다>의 묘미는 ‘38광땡’을 몇 번 잡느냐가 아니라 ‘9끗’으로도 ‘장땡’을 잡는 베팅과 블러핑에 있다.

반면 <고스톱>류는 판 안에서 점수의 변화가 다채롭고, 상대와의 승부가 베팅 심리전만이 아닌 룰에 대한 이해와 적응을 포함해 발생한다. 바닥에 깔린 패 하나가 나에겐 별 의미가 없다 해도, 상대가 그 패를 먹을 때 점수가 난다면 내가 먹어버리는 일이 필요한 게임이 <고스톱>이다.

<포커>는 내가 원 페어를 들고 있어도 적절한 카드노출과 베팅 심리전으로 투페어를 잡아낼 수 있지만, <고스톱>류는 내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황이 상대에게도 고스란히 보이고, 어쨌든 상대를 잡기 위해 점수를 내야만 하는 게임이다. <섯다>가 룰에 의해 결과는 정해졌지만 승부는 심리전으로 풀어내야 하는 반면 <고스톱>류는 룰에 의해 정해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마치 <바둑>이나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성격을 <섯다>보다는 강하게 띠는 것이다.

베팅중심의 도박게임에 비해 룰에 의해 승패가 강하게 지배받는 <고스톱>류는 그래서 온라인으로 들어올 경우 1:1 중심의 <맞고>가 더 재미있다. 1:1 게임의 대명사인 바둑을 비교해 보자. 흑백이 아닌 세 사람이 청홍백의 바둑돌로 바둑을 둔다면 어떨까? 생각해야 할 수는 더 많아지고 게임의 재미와 집중이 떨어질 것이다. 이럴 경우 설령 이기더라도 이긴 판을 내가 지배했다는 만족감은 1:1 대결보다 떨어지고, 승리확률도 1/2에서 1/3으로 낮아지며, 내가 아무리 내 실력을 십분 발휘하더라도 1:2의 구도가 나와 질 경우 오히려 화만 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판돈도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점수도 작게 나며 게임 전체에 대한 지배력 또한 1:1 게임의 1/2에서 1:1:1 게임의 1/3으로 줄어드는 3인 <고스톱>은 온라인에서는 2인 <맞고>에 비해 재미가 떨어진다. 오프라인에서는 고스톱 한 판이 게임에만 집중한다기보다는 친목, 소일거리 등 여러 다른 요소와 엮이기에 이 점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PC게임의 경우에는 게임 자체에 관련된 것 외의 요소는 모조리 배제된 영역에서 이루어지므로 그 차이가 강하게 드러난다.

넓은 의미에서 쓰이는, 도박과 승부, 베팅과 심리전을 모두 포괄하는 <게임>이라는 단어와 PC 등의 기기를 통해 복잡하고 번거로운 룰의 구현을 손쉽게 만들어 룰 안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재미를 이끌어내는 좁은 의미의 <게임>은 이 지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설날 가족들이 모여서 하는 <고스톱> 판과 식구들이 모두 떠난 뒤 PC 앞에서 모니터 너머의 낯모르는 누군가와 승부를 벌이는 온라인 <맞고>는 그런 의미에서라면 서로 다른 영역에 자리하는 놀이들일 것이다.

<Play the Game> 다시 보기

①편: 비욘드 어스, 인류는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가

②편: MMORPG의 장르적 특성과 워크래프트의 세계관 그리고 WOW

③편: 게임 속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④편: 게임에도 정당해산 따위는 없다

⑤편: 스타크래프트, 윙코맨더3...우주를 다룬 최고의 게임은?

⑥편: 상호작용의 매체, 게임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⑦편: 나의 삼국지는 그렇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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