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MBC 다큐스페셜>은 한일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후지TV와 공동으로 제작한 글로벌 자급자족 프로젝트 '어디서든 살아보기‘를 방영했다. 그 첫 번째 편으로 우리나라 배우 정은표 가족이 일본 야마가타 현 긴잔 마을에서 일주일 동안 생활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글로벌 자급자족 프로젝트 <어디서든 살아보기>에서 출연자에게 제공되는 것은 야마가타 현 긴잔 마을까지의 교통비 뿐, 이후 생활은 오로지 가장 정은표와 아내 김하얀, 세 아이 지웅, 하은, 지훤이에게 달려있다. 온 가족이 함께 일본으로 여행 간다며 설레던 가족은 부푼 마음도 잠시, 눈이 산더미처럼 쌓인 마을 한 집에 도차하자마자 일주일을 온전히 가족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에 망연자실한다. 네 살배기 막내를 돌보아야 하는 엄마, 그리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 지웅이와 하은이. 결국 이 다섯 가족의 생계는 이제는 한류스타로 일본인들에게까지 알려진 정은표의 몫이다.

거리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잠시 한류스타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정은표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제작진이 마련한 온갖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각종 주류 배달부터 온천장 청소에 화장실 청소까지, 밤 열시까지 하루를 온전히 노동으로 소모한 가장 정은표가 벌어온 작은 돈에, 엄마 김하얀을 비롯한 온가족은 눈시울을 적신다. 다음 날 어제 벌어온 돈을 핑계로 일을 나가지 않은 아빠는 토끼 사냥을 나가보지만 허탕, 그 다음 날 역시 가족과 함께 빙어 낚시를 나가봐도 겨우 낚시꾼들에게 구걸하다시피 얻은 세 마리에 몇 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겨우 낚은 한 마리를 보탠 네 마리의 초라한 밥상, 이 가족의 일본에서 먹고 살기는 참 만만치가 않다.

▲ '어디서든 살아보기-일본편' ⓒMBC
심지어 토끼 사냥을 나가서 허탕 친 아빠가 사들고 온 단무지로 한 끼 식사를 때우는 정은표의 가족을 보면서, 문득 이 프로그램이 '리얼리티 예능'인가 반문하게 된다. 한 시간 남짓의 방영 시간 동안 다큐는 끊임없이 정은표의 각종 알바를 비롯하여, 아이들의 학교생활, 가족의 밥상까지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고심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보면서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타국에서의 생존기인지, 아니면 다른 문화에서 살아보기인지 반문하게 된다.

<꽃보다> 시리즈에 이은 <삼시세끼>가 인기를 끌면서 지상파 프로그램에서도 외국으로 나가거나, 오지에 떨구어 생존하게 되는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어디서든 살아보기> 역시 다큐의 외피를 썼지만, 프로그램의 내용은 지상파 어디선가 보여지던 혹한 리얼리티의 연장선에 놓인 듯이 보인다.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가 낯선 곳에서의 여유로운 쉼표에 방점이 찍힌 반면에, 그것을 본 딴 다수의 프로그램들은 낯선 곳에서의 미션으로 꾸역꾸역 프로그램을 채우느라 버겁다. 그러다 보니, 여유도 아니고 그저 낯선 곳에서 힘든 삶의 연속일 뿐이다.

정은표의 가족은 가족 모두의 일본 여행이라며 신이 나서 떠났지만, 제작진은 다짜고짜 눈 쌓인 일본 외진 마을에 가족을 던져놓고서는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벌어먹으며 살라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던져놓은 것도 아니다. 온천 마을인 이곳에 걸맞게 정은표에게 주어진 각종 알바들은 온천장의 온갖 허드렛일이다. 제작진이 미리 마련해 둔 것이다. 진짜 생존기라면,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일부터 구하는 것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생략된 채 제작진이 마련한 곳에서 정은표가 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상당 시간은 정은표가 일하는 과정이 세세히 보여진다. 뭔가 어정쩡하다. 생존기라지만 완벽한 생존기도 아닌, 생존하는 것처럼 보이기라는 생각이 든다.

▲ '어디서든 살아보기-일본편' ⓒMBC
차라리 한 가족이 아주 저렴하게 일본에 일주일간 머무는 게 더 현실적인 여행기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차라리 최소한의 비용으로 장을 보고, 아이들이 잠시나마 일본의 학교에 머무는 시간들이 더 신선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이 곧잘 바디 랭귀지로 곧 서로의 신호를 눈치 채고 친해지는 그 과정 말이다. 심지어 오빠는 일본에 가서도 여전히 짓궂게 구는데, 만난 지 얼마 안 된 일본의 친구들이 동생 하은이의 역성을 들어주는 모습에 잠시 여행지의 낯섦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단 며칠의 학교생활에서도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을 보며, 정은표의 볼멘소리가 새삼 다가온다. 어떻게 온 가족 여행인데 아빠는 내리 나가서 돈만 버느라 하루도 가족이랑 제대로 보낼 시간이 없느냐는 그 불평이, 애초 굳이 자급자족 생존기를 해야 하는가라는 반문으로 들린다. 한 달도 아니고 단 일주일 외국에서 머물며, 굳이 아빠는 한국에서처럼 나가서 돈 버느라 쩔쩔 매고, 엄마는 여전히 아이들 밥 해주고 건사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리는 그런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까. 화장실 변기까지 세세히 보여주었지만, 반면 눈 쌓인 야마가타 현을 한번 멀찍이 바라볼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아쉽다. 겨우 온천 마을을 한번 쭉 비추고만 화면은 내내 답답하게 정은표의 일거리에만 집중한다. 여행이 무언가.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일상의 삶조차 되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인데, 기껏 일주일 여행을 시키면서 아빠는 여전히 서울에서처럼 돈 벌고, 아이들은 학교 다니는 그런 시간이 정말 정은표 가족에게 행복한 일본 여행이 될 수 있을까란 의문이 자꾸 드는 것이다.

▲ '어디서든 살아보기-일본편' ⓒMBC
그까짓 돈이 뭐라고, 일본까지 가서 하다못해 허드렛일을 하며 가족을 벌어 먹여야 하는 밥벌이의 고달픔을 연장시키는 것인지. 겨우 일주일 여행에 다시 학교를 가야 하는 아이들은 또 어떻고, 여전히 엄마는 하루 세끼를 해내느라 버겁다. 과연, 이런 것을 자급자족 생존기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아쉽다. 심지어 온 가족이 빙어 낚시를 가서도 그저 뚫어 놓은 얼음 구멍 주변에만 모여 있을 뿐, 잠시 카메라 옆으로 스치는 하염없이 펼쳐진 설원은 아랑곳없다. 그저 빙어 몇 마리 더 낚는가가 이 가족의 절대 염원일 뿐이다. 굳이 일본까지 가서 추운데 얘들 고생, 아빠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한 가족이 일본의 산간 온천 마을에 일주일 동안 여행을 가게 된다면, 가장 보람찬 시간이 무엇이었을까? 그런 고민이 아쉽다. 그저 리얼리티의 시류에 따라, 자급자족 생존기에 애꿎은 정은표 가족만 고생한 게 아닌지. 딸린 식구가 없으면 저렇게 고생하지 안 해도 될 텐데 라는 엄마의 짠한 생각은 그저 엄마만의 생각이 아니다. 어디서든 살아보기 위해서 우선 그곳에서 먹고 살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시간만 보내다 정작 낯선 곳의 풍경 한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볼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면 낯선 곳에서 살아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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