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KBS2 <블러드>가 첫 선을 보였다. 뱀파이어가 영상물에 등장한 것은 이미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일찍이 뱀파이어를 잡는 뱀파이어를 그린 <블레이드>를 시작으로,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의 대립을 그린 <언더 월드> 시리즈를 경과하여 하이틴 로맨스물 <트와일라잇>까지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다종다양한 영화들이 있다. 미드도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뱀파이어들이 등장한 <트루 블러드>부터 역시나 로맨스물로 시즌을 거듭하고 있는 <뱀파이어 다이어리>까지 다양한 시리즈물이 명멸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게 바다 건너에서 인기를 끌던 뱀파이어는 2011년 tvN의 <뱀파이어 검사>를 통해 우리 드라마계까지 그 영역을 넓혀갔다.

서구 문화에 있어 뱀파이어는 이질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중세 이후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떠돌던 민담의 주인공이었으며, 브람 스토커가 1887년 발간한 [드라큐라]를 통해 그 캐릭터는 집대성되었다. 그렇게 역사적 전통을 가진 이 캐릭터는 '피'와 그 '피'를 지닌 여성에 대한 갈구로 오히려 많은 여성 독자들을 매료시켰으며, 서양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변주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게 서양의 전통적 캐릭터인 뱀파이어를 우리 영상 문화 속으로 진입시키기 위해, 서양 이야기를 그대로 본따올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민담에 귀신이나 도깨비는 있을지언정 남의 피, 그것도 여성의 피를 탐하는 뱀파이어의 존재는 들어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TV로 온 뱀파이어들은 <뱀파이어 검사>에서도 그렇고, 새로 시작한 <블러드>에서도 그렇고, 뱀파이어의 탄생을 불치병처럼, 기괴한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처리한다. 그들은 마치 태생이 뱀파이어인 종족과 마찬가지로 자신으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감염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뱀파이어가 되었고, 그것은 가족 내 전이로 유전적 요인으로까지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뱀파이어가 된 사람, 그리고 사람들의 편이 갈린다. 드라마 <블러드>에서 주인공 박지상(안재현 분)의 부모로 등장하는 박현서(류수영 분)와 한선영(박주미 분)은 뱀파이어임에도 자신의 능력을 나쁜 방향으로 쓰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그 감염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에 반해 다짜고짜 등장하여 박현서를 없애고 한선영과 그의 아들 박지상을 쫓는 이재상(지진희 분)은 아마도 뱀파이어의 능력을 나쁜 데 사용할 듯 보인다. 그러니 박현서를 없앨 밖에.

<블러드>의 첫 회는 이렇게 뱀파이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박지상의 전사를 비극적이면서도 운명적인 서사로 그려내고자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부모의 감염, 유전으로 이미 선택의 여지도 없이 뱀파이어가 된 아이, 아버지의 불행한 죽음 그리고 어머니와의 도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던 주인공은 자라면서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에 갑갑해 하다 조절되지 않는 '피'의 욕망에 좌절한다. 그렇게 한없이 모멸감을 느끼던 주인공이 뜻밖의 사건으로 한 소녀를 구하게 되고, 소년은 거기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구원'의 감정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그와 어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적에 의해 어머니마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미 <뱀파이어 검사>를 통해 한번 써먹은 감염이야 한국적 상황에 맞추려니 어쩔 수 없다 치지만, 그 이후 의로운 아버지의 죽음에 이은 어머니의 죽음의 전사는 뻔해도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심지어 이국의 병원에서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전사의 소개는, 박재범 작가의 전작 <굿닥터>의 기시감까지 느껴진다. 전작 <굿닥터>에서도 천재 외과의사 박시온을 설명하기 위해 장황한 어린 시절을 불러오더니, 이번에도 역시 기괴한 뱀파이어의 설정을 위해 어머니, 아버지까지 희생시킨 전사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굿닥터>에서는 어린 시온이 그렇게 자폐적 증상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전사가 그럴 듯했지만, 이번 <블러드>의 어린 시절은 어디선가 본 듯한 운명적 상황의 너무 뻔한 조합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국에도 뱀파이어가 있을 수 있어라고 접고 들어간다면 그에 어울리는 비극적 전사 정도야 눈감고 넘어가야 해라며 할 말은 없지만, 과연 공영방송 KBS에서 월화 미니시리즈로 뱀파이어까지 동원할 개연성은 부족해 보인다. 거기에 어머니의 당부와 단 한번 구한 소녀의 목숨으로, 가장 피를 두려워해야 할 뱀파이어가 의사란 직업을 택하는 아이러니는 또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이 역시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야 하는 또 한번의 딜레마가 되는 것일까?

<블러드>의 기괴한 설정은 얼마 전 종영한 <아이언 맨>을 떠올리게 한다. 멀쩡한 몸에서 돋는 칼날들을 지니게 된 <아이언맨>. 하지만 그 드라마에서 주홍빈의 등에서 돋는 칼은 뱀파이어의 바이러스 같은 막연한 판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성장주도의 건설입국 시절을 이기적으로 산 어른들에 의해 상처 입은 표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치유해야 할 상징으로 등장했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한 <블러드>는 과연 어떤 상징과 개연성으로 뱀파이어 의사를 그려낼 것인지. 혹시나 <트와일라잇>처럼 매혹적인 뱀파이어 의사로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라면 안이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우려된다. 과연 자폐 3급의 서번트증후군 외과의사로 훈훈한 휴머니즘을 그려냈던 전작 <굿닥터>처럼 반전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하지만 그런 기대를 품기에 첫 회는 너무도 뻔했다. 과연 이 뻔한 서사를 넘어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 낼 수 있을지, 그 몫은 온전히 박재범 작가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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