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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 잡지를 권합니다활동가가 만드는 잡지 ‘오늘보다’ 구준모 편집장 “은폐된 노동 드러낸다”
박장준 기자 | 승인 2015.02.16 08:26

기자들은 ‘얘기 되는 것’을 기사로 쓰지만 성역은 많다. 광고주 또는 스폰서를 다루기는 쉽지 않다. 혹여 다루더라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이상을 쓰기는 쉽지 않다. 기업 또한 기업 나름대로 ‘대응’하기 때문에 기사의 제목과 내용의 수준을 낮추는 ‘톤다운(tone down)’도 자주 일어난다. 데스크가 “뭐 새로운 이야기 없느냐”고 주문하면 기자들은 힘이 빠진다.

기자들은 경찰이 들이닥치고 대량해고가 벌어지는 날에 현장을 찾지만 그때만 지나면 관심은 수그러든다. 밀양이, 강정이 그랬다. 씨앤앰,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쌍용자동차,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이 ‘고공’에 오르기 전까지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마에 지폐 붙인 김무성 대표”는 포털 대문에 등장하지만, 고공에서 거리에서 설날을 준비하는 비정규직은 기사거리가 아니다. ‘장기투쟁사업장’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 없는 사업장’ 삼성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우연인지 몰라도 삼성의 1, 2차 하청에서도 노동조합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진보언론들은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와 삼성전자서비스 하도급업체 등 노동자에 주목했지만 ‘예외적’이었다. 코마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라이온스 이승엽 선수의 홈런에 ‘번쩍’ 눈을 떴다는 기사들을 경쟁적으로 포털에 송고하는 게 한국언론의 현 수준이다.

성의를 좀 더 보이는 언론은 이런 기사를 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으로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리고 해마다 영업이익률이 상승하고 있는 반면, 하청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하락하고 있다.’ 한 발 더 나가면 이렇게까지 쓴다. ‘삼성전자의 눈부신 성장에도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은 오히려 제자리걸음이다. 하청업체들은 원청 삼성전자가 쥐어짜는 탓에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파견이나 하청 등 간접고용을 늘리고 직접고용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딱 여기까지다. 그 다음 이야기는 언론에 나오지 않는다. 특근만 100시간이 넘고, 일주일에 하루 쉴 확률이 ‘로또’와 같은 공장 안 사람들은 기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취재원을 만나기 어려워 그렇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하청 노동자들 힘든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빽빽하게 숫자를 채운 기사보다 ‘이야기’를 원한다. 한겨레가 <나들>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시도했지만 1년 반 만에 포기한 이야기들이다.

언론이 포기한 이야기를 활동가들이 직접 쓰기 시작했다. 그것도 ‘기사’로 알리기 시작했다. 언론과 현장의 ‘협업’이 아니다. 사회운동단체인 사회진보연대가 만드는 월간지 <오늘보다> 이야기다. 쉽게 얘기하면 ‘현업 활동가들이 만드는 시사교양 월간지’다. 이 잡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석 달에 걸쳐 준비호를 발간했고, 2월 창간호를 냈다.

   
 

보통 투쟁현장을 소개하고, 선명한 입장을 강조하곤 하는 여느 사회운동단체의 기관지와 다르다. 운동권끼리 통용하는 사투리도 없다. 기성언론이 만드는 잡지 ‘디자인’에 시의성 있는 ‘주제’를 얹었다. 현장에서 현장을 깊이 있게 다루되 무겁지 않다. 지난 12일 서울 연남동에서 만난 구준모 편집장은 “운동권이 ‘문건’을 쓰는 식이 아니고, 운동권 사투리를 쓰지 않고, 컨셉과 야마(주제)를 가지고 짧고 분명한 기사를 담은, 오늘 꼭 봐야 하는 잡지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창간준비 3호 특집 ‘21세기 스마트폰 19세기 노동’에는 네 꼭지의 기사가 있는데, 전자산업을 개괄한 뒤 인천 산업단지 안에 있는 공장을 훑고, 그 안에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연을 담았다. 구준모 편집장은 “스마트폰 특집의 같은 경우, 활동가들에게 많은 정보가 있고, 그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보다>만의 독자성과 사회적 소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기사를 쓴 활동가들은 인천지역에서 스마트폰 노동자를 오랫동안 만나왔다.

구준모 편집장은 “서비스노동과 함께 21세기의 대표적인 노동과 상품이 있는 스마트폰 공장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들여다보면, 바로 이곳에서 노동이 어떻게 은폐되고 재벌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알 수 있다”며 “소비자에게는 스마트폰의 제조 과정을 알리고, 현장에 있는 노동자의 고민을 알려내기 위해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보다>는 노동이 은폐된 현장을 드러내고, 바로 그곳에서 ‘노조할 권리’가 무엇인지 밝히는 잡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 사회운동에 대한 대접은 좋지 않다. 사회운동은 힘을 잃었다. 발언력만 따지면 보수야당과 시민운동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다. 언론 또한 좌파나 사회운동의 주장을 ‘과격하거나 현실성 없는’ 것으로 다룬다. 사회운동 또한 실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프로파간다’만 강화하고 있다. 구준모 편집장은 “2000년대 들어 사회운동과 좌파의 이야기가 읽히지 않기 시작했다”며 “(사회운동진영은) 프로파간다를 공유하는 매체만 남았고 사회운동의 공론장이 되는 미디어는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언론과 협업을 강화하는 게 지름길 아닐까. 그러나 구준모 편집장은 “레디앙와 참세상 같은 진보매체가 사회운동의 쟁점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운동 과정에서 만든 성과와 고민들, 현장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를 담을 매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질의 정보와 입장을 담은 매체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사회운동조직으로서 선명한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정치적이고 논쟁적이고, 비정파적이고 공신력 있는 매체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운동권’의 글쓰기가 논문 흉내를 내며 ‘아는 척’을 했다면 이것으로는 대중적 파급력이 떨어진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현실은 어렵다. 각자 고립되고 있고, 활동은 위축되고, 패배감이 찌들어 있다. 그러나 희망연대노동조합이라든지 꿋꿋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숫자로 봐서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평판에서 위축돼 있고, 그만큼 발언권도 적어졌지만 사회운동 내에서부터 이야기를 하고 논쟁을 하면서 시너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 구준모 편집장

<오늘보다> 글은 대부분 활동가가 쓴다. 구준모 편집장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활동가들이 많다”며 “언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현장에서의 고민과 참조할 사례를 묶어내고 같은 지역에 사는 시민과 활동가에 던지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절한 현실이 있고, 또 그곳에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지만 막상 ‘힘들게 싸우고 있다’는 식으로만 소비되는 좌파적 콘텐츠를 대중적인 글쓰기로 담고 싶다”는 게 구준모 편집장 바람이다.

기자들에게 ‘과외’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창간 전 <오늘보다> 편집팀은 현직 기자들에게 발제와 취재 시스템, 글쓰기 노하우를 배웠다고 한다. SNS와 웹 등 기사 유통 플랫폼별로 가독성 높은 콘텐츠 포맷이 무엇인지도 분석했다고 한다. 구준모 편집장은 “아직 적용하고 있는 것은 몇 안 된다”고 전했다. 기성 언론의 시스템을 일부 ‘흡수’하면서도 어떻게 정체성을 살려나갈지 주목된다.

관심이 집중돼 있고 수백, 수천개 언론이 달려드는 이슈를 사회운동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알려내는 작업은 어렵다. 플랫폼의 한계도 있지만 핵심은 콘텐츠다. 구준모 편집장은 3월호 커버스토리는 ‘보육’이라고 전했다. 최근 일부 교사들의 학대로 논란이 되고 있고, 언론은 ‘끔찍한 장면’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이 같은 분위기에서는 보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구준모 편집장 생각이다.

그는 “기존 언론은 현상적이고 단기적인 이슈로 보육을 다룬다”며 “<오늘보다> 3월호에서는 이슈를 따라가되 ‘사회 재생산의 위기’라는 점에서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주목하고자 한다. 보육노동자의 현실도 짚고, ‘어린이집 교사 노동조합’을 만드는 어려운 과정도 소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회운동의 이념과 이론은 수년째 정체돼 있다. <오늘보다>는 노동조합 활동가를 주타깃으로 한 잡지인 만큼 ‘담론’에도 욕심을 내고 있다. 구준모 편집장은 “소득주도 성장, 경제민주화 담론의 한계를 정면으로 다루고 이를 대체할 담론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도 “담론의 공백을 다루는 것이 <오늘보다>의 과제이고, 사회운동진영이 다뤄야 할 문제를 논쟁적으로 제기하려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21세기 스마트폰 시대에 운동권 잡지가 팔릴까. 그는 “월간 <말>지 이후 시사교양월간지는 사라졌고, 소위 좌파의 발언력도 사라진 상황이지만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 손에 쥐어줄 게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장을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잡지를 권한다. 삼성 미래전략실과 삼성 노동자들이 스크랩해야 할 잡지가 하나 늘었다. 그리고 활동가들이 투고해야 할 매체가 생겼다.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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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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