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6시께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6층. 고흥길 문화관광체육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위원장이 문화부 확인감사의 정회를 선언했다. 그 순간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서 고 위원장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위원장님 이게 뭡니까. 정말 너무합니다.”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사진기자들이 직업적 본능으로 유 장관을 향해 다가가며 셔터를 눌렀다. 다시 유 장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 찍지마” “이씨~ㅂ, 찍찌 마” “성질 뻗쳐, 으~” “이씨~ㅂ, 찍지마”….

이같은 유 장관의 행동에 대해 야당 의원들이 “왜 위원장한테까지 얼굴을 붉히면서 욕설에 버금가는 말을 하느냐” “장관은 개인의 자격으로 온 게 아니므로 국회를 모독한 부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회의는 4시간 넘게 속개되지 못했다.

▲ 24일 문화부 확인감사에 참석한 유인촌 문화부 장관(오른쪽) ⓒ여의도통신
밤 10시20분, 드디어 국회의원들과 문화부 관계자들이 다시 회의장으로 하나둘 들어섰다. 회의가 시작되자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유 장관의 행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유 장관은 “우리에게 최소한 인격적 존중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위원장한테 드렸는데 옆에서 사진을 찍어서 ‘찍지마’라고 말했을 뿐”이라며 “의원님들한테 말한 게 아니다. ‘에이씨’하긴 했으나 욕은 안했다. 순간적인 기분의 표현이니까 더이상 거론하지 말아달라. 나중에 사진기자한테 사과하겠다”고 해명했다.

유 장관은 “문화부 장관으로서 최선을 다해 국감을 받고 있는데, 이종걸 의원이 인격모독에 가까운 표현을 하는 것은 상당히 좀 그렇다. 나는 부모한테도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유 장관이 거친 언행을 드러낸 건 정회 전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했던 발언 때문이었다.

먼저 발단이 된 건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의 발언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의 질의와 주장을 들으면, 정확한 인식과 판단을 가로막는 3가지 요인이 있다. 잘못된 정보, 지나친 자기확신, 피해의식이다. 국정원에 대한 피해의식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어떤 기관만 나오면 ‘공작’ ‘음모’를 떠올리고…이번에 이 건(이른바 8·11대책회의)을 가지고도 ‘언론장악’이니 해서 국정조사를 하는 것은 소모적 행위다. 더이상 이런 과오를 저질러선 안 된다. 이런 경제위기에서 소모적 정치 논란을 벌여선 안 된다. 유력 해외언론에서 우리 경제를 부정적 입장에서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종걸 의원은 “10년 전 IMF를 일으킨 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은 지 8개월만에 주가가 폭락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더니, 다시 10년 전으로 회귀했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그 휘하들은 참회를 해야 한다. (이 자리에 있는) 장관, 차관, 공공기관 낙하산 대기자들은 이명박의 휘하이자 졸개들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민 사기극의 가해자”라고 쏘아붙였다.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비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아무리 야당의원들이고,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라 하더라도 대통령을 칭하면서 호칭 생략하고, 이명박 정권 출범에 참여한 사람들을 ‘휘하’ ‘졸개’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국민사기극’이란 단어까지 나왔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졸개는 ‘누군가에게 빌붙어서 하찮은 일을 하는 존재’라고 나와 있던데, 나는 내 딸에게 이명박 정부에 빌붙어서 하찮은 일을 하는 존재로 비쳐지게 됐다”며 “이 부분에 대해 이종걸 의원의 사과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정회를 요청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역시 “아무리 같은 당 출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통령을 폄훼하고, 상대방 의원들을 ‘졸개’ ‘휘하’라고 이렇게 말하다니 너무 심각하다. 더이상 회의를 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은 정회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이종걸 의원은 의견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졸개라고 표현한 것은 과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공공기관 낙하산 대기자들은 이명박의 휘하가 맞다. 거기서 뽑힌 정무직 차관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사태가 좀체 잦아들지 않자, 결국 고흥길 문방위원장은 “이종걸 의원의 발언록을 확인하고 다시 회의를 시작하자”며 오후 6시께 정회를 선포했다.

4시간 남짓 만에 회의가 속개된 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내 의사진행 발언 중에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거슬리는 표현이 있었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이 의원의 발언은 헌법파괴적이므로 이에 대해 윤리위 제소는 물론 여러가지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18대 대한민국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첫 국감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국감이 끝난 뒤에도 여-야 의원들 간의 고성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 시각 막말 공방의 중심에 놓인 이명박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에 있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