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수 부산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독립영화 지원 축소를 추진하고 사전검열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영화인단체와 영화제 등 74개 단체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련의 흐름들로 볼 때 정부가 영화제의 독립성은 물론 영화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려한다”는 게 영화인들 주장이다.

영화인단체들이 이렇게 한 목소리로 정부 정책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한미FTA 협상 당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요구 이후 처음이다. 영화인대책위는 부산시에 사퇴 종용에 대한 사실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영진위에 독립영화 축소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서병수 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13일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 영화인 대책위원회’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사태들은 영화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며 “나아가 영화예술발전의 근본인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고 우려했다. 영화인대책위는 “기자회견 이후에도 표현의 자유와 독립성 그리고 자율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훼손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가 잦아들지 않을 시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영화인 대책위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앞서 부산시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감사에 진행하고, 올해 1월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 영화계에서는 정부 비판 영화인 <다이빙벨> 상영한 것이 사퇴 종용 사태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은 당시 이 영화 상영을 반대했으나,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상영을 강행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김세훈 현 원장 취임 이후 ‘사전검열’ 관련 절차를 강화하고 독립영화 지원사업을 통폐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영진위는 “프로모션 목적의 영화 상영을 줄이기 위해” 영화상영등급분류면제추천제도 심사 실무를 강화하려고 추진 중인데, 영화계에서는 영화제에 대한 사전검열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한다. 실제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가 최근 연기되기도 했다.

또한 영진위는 기존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을 폐지하고 위원회가 사전에 심의, 결정한 26편을 상영하는 지역 멀티플렉스와 전용관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업방향을 틀었다. 보통 전용관은 일 년에 35~40편의 영화를 상영하는데, 영진위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전용관은 영진위 심사위원회가 정한 26편을 금요일과 토요일에 상영해야 기존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영화 제작에 있어 ‘자기검열’은 물론, 독립영화전용관의 편성권을 침해하고, 독립영화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병록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부산시의 BIFF 흔들기’에 대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최고영화제로 성장, 한국영화 관객을 늘리면서 관객에게 극장에서는 상영할 수 없는 영화를 보여주면서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고 창작의 저장 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며 “국제영화제 관객 세계 6위이고, 세계 10대 영화제로 꼽히는 부산국제영화제로 영화는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영화인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것을 영화도 모르는 비전문가들이 주무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병록 회장은 ‘영진위의 독립영화 정책 변경 추진’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문화융성과 콘텐츠산업 발전을 영화진흥위원회가 방해하고 있다”며 “프랑스의 경우, 20년 동안 단 한 편도 등급보류 판정을 내린 적이 없는데, 영진위가 정치적으로 눈치를 보고 있다. 영화에 대해서 모르면 가만히 있든지, 자신이 없으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 영화인대책위 공동위원장(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은 “영화가 표현의 자유를 잃으면 영화산업이 진흥할 수 없다”며 “표현의 자유는 예술인에게 생존과 같다. 짧은 시간에 거의 모든 영화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병호 공동위원장(전국영화산업노조 부위원장) 또한 “일련의 사태를 보면 저의가 분명하게 드러난다”며 “<다이빙벨> 문제에서 보듯 구미에 맞지 않는 영화는 상영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용관 집행위원장 건은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상영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며 “전용관 문제도 ‘왜 정부 보조금 받으면서 정부 비판 영화를 상영하느냐’는 정부 차원의 압박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여러 독립영화전용관들이 관할 경찰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윤철 감독조합 부대표는 “정부가 자율적이고 세계 최고인 영화제를 컨트롤하고, 독립영화 지원 편수를 26편으로 제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MB정부부터 지금까지 모두 교수 출신이 영화진흥위원회로 와서 영화계를 말아먹고 있다”며 “영화진흥위원회가 아닌 영화침체위원회가 되고 있다. 해체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부산시는 인사 문제로, 영진위는 제도 개편으로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며 “정권에 불편한 영화를 관객과 차단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일련의 퇴행적인 액션이 취해진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모습은 현 정권이 그만큼 국민의 정서와 멀어져 있고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을 반증한다”며 “문화융성을 꽃 피우려면 현장에 있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사무실 안에서 꼼수로 영화계를 쥐락펴락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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