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2의 개국으로 지상파 다채널 방송(이하 MMS)의 1막이 시작됐다. MMS는 지상파의 오랜 숙원과제였다. EBS2가 어떤 성과를 내느냐는 향후 지상파 방송 전체의 지형과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방통위는 EBS2의 시범서비스 결과를 토대로 ‘시청자의 시청행태’, ‘기술적 안정성’, ‘방송시장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2015년 중으로 법·제도를 정비해, MMS의 본방송 도입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시작하자마자 '잡음'도 흘러나오고 있다. 사업자 간의 갈등 구도도 그대로이다. 문제는 역시, ‘TV수신 환경'이다. 지상파 MMS는 직접수신율이 높지 않으면 유의미성도, 성공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지상파의 직접수신율은 6.8%이다.

▲ 11일 오후 3시, 서울 도곡동 EBS 본사에서 EBS 2TV 개국식이 열렸다. (사진=EBS)

EBS2의 개국…MMS는 무엇인가?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23일 EBS에 지상파 다채널방송(MMS) 시범서비스를 허용하겠다고 의결했다. LTE급 속도로 진행돼, 지난 11일부터 EBS는 지상파 다채널 방송 개국식을 열고 EBS2 10-2 채널이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상파 다채널방송(Multi-Mode Service, MMS)은 디지털영상 압축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서비스이다. 현재 1개의 지상파채널을 송출하는데 필요한 주파수는 6MHz폭이지만 압축기술의 발전으로 같은 주파수 폭에서 추가 채널 송출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현재 시청자들이 KBS1을 9번을 통해 보고 있다면 이제는 9-1을 통해 기존 채널을 보고 9-2, 9-3, 9-4채널을 더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MMS라고 하더라도 기술 활용방식(MPEG-2, MPEG-4)에 따라 추가 확보 채널수가 달라진다. 현재 EBS에 허용된 압축방식은 MPEG-2이다. MPEG-2 방식은 6MHz 주파수안에서 기존의 HD급 방송 외에 1HD+2SD 채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EBS2 역시 HD(고화질) 채널로 개국했다. MPEG-4 방식은 더 압축률이 향상된 기술로 1HD+3SD 채널까지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HD채널을 2개까지 더 전송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KBS가 추진하고 있는 ‘코리아뷰(Korea View)’는 MPEG-4 기술 활용방식을 활용한 MMS이다.

추가 확보되는 채널수만 본다면 MPEG-4 방식이 훨씬 유리해보이지만 약점도 있다. MPEG-4 방식은 호환의 문제로 인해 별도의 셋톱박스를 이용해야한다. 방통위가 MPEG-4 방식이 아닌 MPEG-2 방식으로 EBS에게 MMS를 허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BS는 10-2채널을 통해 △초·중학 교육, △영어 교육, △다문화 가정 프로그램 등을 하루 19시간 방송할 예정이다. EBS는 “지상파방송의 무료 콘텐츠 확대는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 경감 및 교육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무료 보편적 교육복지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EBS2의 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88.5%가 교육관련 내용이고 다큐 등 교양프로그램이 6.8%, 다문화·통일 등은 4.7% 등이다.

지상파 MMS 왜 하나?…벌써부터 유료방송 ‘간’ 다툼

그러나 EBS2 시작과 함께 ‘잡음’이 일고 있다. 직접수신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MMS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근본적 질문에 바로 부딪힌 것이다. 현재, 방송 ‘수신환경’에서 EBS2가 개국했다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은 ‘어디에서 봐야하는 것인가’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11일 EBS가 주최한 <EBS2 개국과 교육복지> 특별 대토론에서 한 패널 역시 “유료방송 IPTV를 통해 지상파를 보고 있는데, EBS2를 어떻게 시청할 수 있는 것이냐”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EBS 신동수 MMS 추진단장은 이 같은 물음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실내 안테나를 집어 들며 “이걸 사서 설치하시면 된다. 마트와 인터넷을 통해 구입가능하고 (저렴하게)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실내안테나는 1만5000~3만원 내외의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결국, ‘직접수신’ 문제이다. EBS2는 정확히 따지면, 디지털TV를 보유하고 있는 지상파 직접수신 가구에서만 추가 금액 없이 시청이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디지털TV 보유가구는 74.2%(방통위, 2014년 말)이다. 그 가운데 지상파를 유료방송 가입 없이 직접 수신하는 가구는 6.8%(미래부, 2014년 말)에 불과하다. 결국, MMS 시범방송인 EBS2 채널의 수혜 가구는 114만 가구밖에 안된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방통위가 이러한 지점에 대한 고려 없이 MMS 시범방송을 졸속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문제는 벌어졌다. EBS2 개국과 동시에 유료방송과 채널 배정을 놓고 실랑이가 시작됐다. 한국방송협회는 12일 <케이블SO는 EBS 다채널방송의 재송신 중단을 철회하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곧바로 반박했다.

지상파방송사들을 주요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방송협회의 주장은 이렇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지난달 말 방통위에 ‘기술적 오류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EBS2에 대해 아날로그 케이블에서 재송신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 후, 티브로드 계열 수원방송지역(수원·화성·오산 방송권)과 C&M 계열 강남방송(강남구 방송권)에서 10-2를 차단했다. 한국방송협회는 “케이블업계에서는 기술적 오류 발생 가능성을 내세웠지만 이미 수차례 실험방송을 통해 기술 검증을 완료한 바 있다”며 “억지주장”이라고 지적했다.

▲ DTV전환감시시청자연대 출범식에는 참가자들이 2만3천원의 안테나를 구입해 직접수신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현해 보여줬다ⓒ미디어스

한국방송협회는 케이블의 송출 차단은 ‘인위적인 신호변경’이라는 입장이다. 방송협회의 한 관계자는 “EBS2는 새로운 채널이 아니라 기존 채널에 들어가 있는 것”이라면서 “그래서 그것을 인위적으로 커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방송법> 제2조(용어의 정의)에서 ‘채널’은 “동일한 주파수 대역을 통해서 연속적인 흐름 또는 정보체계의 형태로 제공되어지는 텔레비전방송, 라디오방송 또는 데이터방송의 단위”로 규정돼 있다. 이에 따르면, EBS가 의무재송신이라면 EBS2 역시 같은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 한국방송협회의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들 중 디지털TV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EBS2를 볼 수 있는데, 신호를 잘라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케이블SO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를 주요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의 주장은 상반된다. 이들은 “EBS2는 현행법 상 의무재송신 채널이 아니기 때문에 케이블TV가 시청자에게 송출할 의무도 권리도 없다”고 주장한다. 케이블협회는 “EBS2 채널을 송출하려면 기본적으로 사업자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케이블협회의 한 관계자는 “지상파 재송신 분쟁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며 “EBS2를 임의 전송했을시, 재송신 분쟁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협의과정 없이 송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케이블 아날로그 가입자 중에서는 구형TV 가입자들이 꽤 많다”고 지적하며 “그런데, 구형TV에서 실험방송을 송출했을 때, 기술적 결함(화면정지 등 오작동)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어 시청자 민원이 발생할 수 있다. 정확한 기술검증 없이 정책이 마련됐으니, 그냥 따르라는 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EBS2 채널이 의무전송 채널인지에 대한 정확한 법해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왜 유료방송 ‘채널 배정’ 문제가 발생했나

얼핏, 사업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 같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MMS가 반드시 필요한 지상파의 숙원 사업이라고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신호는 유료방송을 통해 전송하려 했는가 하는 점이다. 방통위와 EBS는 EBS2 개국 전부터 “케이블TV와 IPTV 등 유료방송을 통해 시범서비스 채널을 송출할 수 있도록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논란의 발단은 바로 거기서부터였다. 저조한 직접수신율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기 위해 케이블을 경유했던 지상파의 과거 전략이 MMS에도 그대로 답습되어 있는 상황이다.

직접수신율 가구 6.8%만을 정책의 수혜자로 삼을 순 없으니, 방통위와 지상파는 ‘시청권 확보’를 명분으로 다시 유료방송에 기대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지상파와 유료방송플랫폼 사업자들과의 재송신 분쟁도 결국 근본적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유료방송을 통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지상파를 볼 수 없음에도, 권리는 지상파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는 셈이다.

한국방송협회는 성명을 통해 “지상파 다채널방송에 대한 케이블SO업계의 인위적 차단 조치로 인해 EBS의 다채널 방송을 시청할 수 없는 가구는 무려 4백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렇게 되면 초중등 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영어, 통일교육, 다문화 등 EBS MMS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그림의 떡으로 전락할 것이다. 결국, EBS 다채널 방송을 통한 사교육비 절감과 교육 격차 해소라는 박근혜 정부의 서민 정책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성명은 선후관계가 맞지 않다. 케이블의 인위적 차단 조치 여부와 관계없이, EBS 다채널 방송을 직접 시청할 수 없는 가구가 많다는 것은 지상파의 책임이다. MMS를 해도 유료방송을 경유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 되도록 만든건 1차적으로 방통위와 지상파의 문제라는 얘기다.

그동안 지상파에서는 MMS 도입을 요구하면서 ‘무료보편서비스의 확대’ 차원에서 ‘직접수신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지상파가 공익적인 다양한 채널을 가진 플랫폼 사업자로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시민사회 역시 MMS 도입을 요구했던 측면이 컸다. MMS도입으로 지상파가 다양한 채널을 송출하면 방송의 무료 보편성을 높이면서도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었다. 그러나 시범실시되고 있는 MMS 정책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직접수신율을 높이기 위한 견인책이 아닌 또 다시 유료방송에 그냥 기대 가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EBS2를 별도의 채널 하나 만든 것으로만 사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이럴 거면 뭣하러 MMS를 도입했냐, 그냥 EBS 계열 PP를 하다 더 만들지"라는 자조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을 정도이다. 직접수신율의 문제를 지상파가 해결하지 않는 한, 채널의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 뿐만 아니다. 6.8% 직접수신율은 지상파 관련 많은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700MHz 주파수를 둘러싼 통신업계와의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지상파가 해당 주파수를 통해 UHD방송 서비스를 상용화하더라도 그 수혜가 적다는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방통위와 지상파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되묻고 싶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추혜선 사무총장은 “EBS2 개국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타 지상파에서도 MMS가 도입 돼 시청자들이 보다 공익적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상파 MMS에 대해선 분명한 찬성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추 사무총장은 “방통위와 지상파가 MMS의 위상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채널 하나를 더 만들어 유료방송에 꽂는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EBS2의 개국이 자칫 그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단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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