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그 이전에 낙마한 총리 후보자는 2명이었다. 안대희 후보자는 대법관까지 지냈지만, 대법관 이후 전관예우로 벌어들인 ‘재산’ 논란에 휩싸이며 낙마했다. 문창극 후보자는 언론사 주필을 지냈지만 ‘역사인식’이 문제가 되어 지루하게 버티다 퇴장했다. 그리고 10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정홍원 정규직 총리’라는 비아냥까지 견디며 고르고 골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그가 지명됐다.

준비된 총리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뽑아들 수 있는 최선의 카드라고도 했다. 야당의 협조 역시 무난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불과, 일주일 전쯤의 말들이다. 하지만 상황은 급박하다 못해 상상도 못할 지경으로 꺾어졌다. 한겨레가 야당을 향해 ‘왜 검증 의지조차 보이지 않느냐’고 질책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그 후보자를 그냥 ‘만신창李’라고 부르고 있다. 그의 운명에 끝내 ‘만인지상’의 재수가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고 한들 그는 끝끝내 ‘일인지하’의 지위는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미 다 무너졌다.

위태롭다. 여의도 일각에선 “벌써 사퇴했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지만, 인사청문회는 아직 남았고 표결까지는 첩첩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지옥의 문은 이제 열렸을 뿐, 아직 끝난 게 아니다. 11일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은 “아직 녹취록을 다 공개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이미 그로기 상태지만, 아직 꺼내들지 않은 카드가 더 있단 얘기다. ‘카운트 펀치’는 아직 작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청문회 첫날, 야당 위원들이 ‘언론모독’ 발언을 감춰두고, 이 후보자를 몰아세우며 잔매를 치다가 결국 ‘발언 번복’의 완벽한 한 방을 이끌어냈다. 준비된 총리가 여기까지 허물어진 과정을 보면, 이 후보자의 목덜미에 또 뭐가 날아와 꽂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더 버틸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다. 제 아무리 되어야 하는 인물, 될 수밖에 없는 카드였다고 한들, 어떤 ‘장사’도 계속된 ‘몰매’에 굴복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이 후보자는 이미 청문회 첫날, “혼미하다”는 자기 고백을 했다. 미리 준비됐던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후보자가 스스로 자처해 몰매를 맞고 있는 상황이라 대처도 어렵다. 악몽이 되어버린 김치찌개 회동, 앞뒤 가리지 않고 떠들었던 1시간 30분 간의 대화에 이 후보자는 꼼짝없이 갇혀 있다.

애초, 그를 둘러싼 의혹은 두 가지처럼 보였다. 우선, 제기됐던 것은 ‘병역 논란’이었고 이어 제기된 것은 ‘부동산 투기’ 의혹이었다. ‘준비된 총리’가 작동한 것은 병역 논란까지였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의 주도로 제기된 부동산 투기 의혹에서 이 후보자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그의 인생은 전국의 부동산 애호가들이 전율 할 만한 갈아타기 신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78년도에 잠실 주공에 입성, 6개월 만에 신반포로 갈아탄 것을 시작으로 그의 거주지 이전 ‘감각’은 단연 발군이었다. 그가 거쳐 갔던 잠실 주공과 신반포 아파트는 70년대 말, 80년 대 초 강남 부동산 개발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단지들이다. 당시의 부동산 지표를 측정하는 대표적 아파트들이었다. 응암동에 살던 이 후보자가 이 두 단지를 6개월 시차로 직격했단 점은 부동산에 대한 그의 ‘촉’과 ‘열정’ 남달랐다는 것 외엔 별다르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후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신반포에서 평수를 넓혔다가 93년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들어가고 이후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아크로빌로 이어지는 그의 강남 이주사는 한국 사회 아파트 투기사의 가장 완벽한 행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중간에 끼어있는 토지 매입 사례 역시 부동산 투자의 전문가가 아니면 흉내 내기 힘든 탁월한 입지 선택이었다. 그의 부동산 투자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이것들이 단순히 이사를 하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됐다고 보기 어렵단 점이다. 그의 이사는 때마다 차남의 학교 입학과 맞물린다. 차남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신반포로 갔고 중학교 입학할 무렵 압구정 현대로 이사했다. 차남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압구정을 떠나 도곡동에 집을 샀다. 생애주기에 맞춰 매우 꼼꼼하게 강남을 배회해 온 것이다.

물론, 부동산 의혹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될 것이란 기류가 강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한 인사는 “이완구는 워낙에 센 카드라 웬만한 흠집이 있더라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편적 상식의 눈높이에선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이해를 하려 든다면, 그 시대 그 나이 때의 가장들이 재산을 증식하겠단 목표를 세우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에 ‘올인’해온 과정의 한 예일 뿐이라고, 옳지 않지만 부정만 할 수는 없는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항변이었다.

하지만 이후 기자들을 만나 그가 정열적으로 내뱉었단 말들은 그런 연민을 바탕으로 한 이해의 감상을 무참히 박살내는 폭거였다. 어떤 이들은 그의 말을 ‘허풍’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허세’라고도 한다. 절반쯤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이해는 그의 생에 걸쳐 갈아타온 부동산과 맞물려 그의 삻??총체적으로 부도덕하지 않았는가로 보는 것일 테다. 그가 정치부의 젊은 기자들과 밥 먹으며 속 시원하게 쏟아낸 말들은 그가 살아온 방식과 인생을 꾸려온 세계관이 얼마나 비릿하고 또 부적절한 것이었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기자들과 적당히 부대끼며 그들의 출세를 도와주고 그렇게 문제를 덮고, 그래도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보도가 나오면 곧장 윗선에 보복을 요청할 것이란 그의 퇴행적 사고관이 문제다. 정치인으로서 언론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려하기 보다는 언론과의 음습한 뒷거래로 기생하려는 반민주적 사고방식이 또 문제다. 자신을 취재하는 기자를 손아래 후배로 여기며 해야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구별조차 하지 못하는 그 가치 판단 체계가 그 자체로 그의 부적격 사유다. 김영란 법을 직접 거론하며 언론인 전체를 욕보이는 그의 그 오만함은 왜 그가 총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웅변한다.

언론과 권력이 긴장의 간격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불완전한 민주사회의 불행이고,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 사회가 맞고 있는 근원적 후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언론이 권력과 한 몸이 되어 뒹굴 때 세상이 얼마나 탁해질 수 있는 가는 지난 7년간 너무 자주 그리고 명명백백하게 목도된 풍경이었다. 이완구 후보자는 말하자면 그 세상의 탁함이 어떻게 시작되는 가를 제 몸을 불살라 드러낸 악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완구 후보자가 총리에 오른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성은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악당임이 드러난 사내가, 권력의 필요에 따라서 총리가 되고 만다면 한국 사회는 총체적인 ‘위장 사회’, 완벽한 ‘기만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늦지 않았다. 되돌려야 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뒹군 언론 역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사과’나 ‘사고’가 아닌 그가 총리가 되어서는 안 됨을 똑똑하게 말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완구의 발언을 제대로 보도하고 정확하게 해설하는 것은 언론 윤리의 문제나 인사 검증의 차원을 넘어서는 한국 사회 언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자기 기술이다. 이완구는 안대희만큼 재산 증식의 과정이 나쁘고, 인식의 후진성은 문창극과 견줘야 할 만큼 형편없다. 정치의 문법과 언론의 문화는 분명 달라야 한다는 걸, 언론이 이 후보자의 낙마를 통해 입증해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경계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이완구와 같은 ‘언론 모독자’들이 계속 득세하고 말 것이다. 권력자에게 조롱당하는 것이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언론이 기술하는 세상은 결단코, 살아볼만 한 세상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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