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에서 강하늘이 연기한 장백기가 푸른빛의 코발트 같은 역할이라면, 연극 <해롤드 & 모드>에서 강하늘이 연기하는 해롤드는 ‘그린 라이트’처럼 화사한 녹색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 듯싶다. 드라마의 코발트 빛깔 연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 연극에서는 할머니 모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초록빛 새싹처럼 하나씩 알아가는 청년 해롤드를 연기하기 때문이다.

강하늘은 ‘불가사의한 연기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배우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다른 작업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드라마 출연 중에는 쪽잠을 자는 건 예사이고, 세수할 시간조차 없다. 그런데도 강하늘은 드라마를 촬영하면서도 연극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불가사의한 연기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두 탕 뛰기’가 아닐 수 없다.

▲ 배우 강하늘 ⓒ샘컴퍼니
- 드라마 <미생> 촬영도 힘들었을 텐데 <해롤드 & 모드> 연습까지 했으니 고생을 사서 한 게 아닌가.

“물리적인 시간만으로 보면 무리한 게 맞다. 하지만 꼭 해야만 했던 당연한 결정이었다. 맨 처음에 생각했던 연기가 있다. 그건 연기자들이 모여 의기투합하고 연기력이 쌓여 연기의 밀도가 높아진 가운데서 공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송은 연기자의 순발력을 필요로 한다. 카메라 앞에서 순발력을 발휘해 연기한 것이 녹화되면 평생 동안 바꿀 수 없는 영상이라는 기록물로 남는다.

내가 연기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빨리빨리 연기해야만 했다. 그런 중에 제 자신이 비어가는 걸 느꼈다. 시간만으로 보면 무리한 스케줄이었지만 앞으로 연기할 밑천을 쌓는 과정이라 드라마와 연극 연습을 병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 해롤드가 젊은 나이에 자살을 꿈꾸는 이유는?

“대본에는 왜 해롤드가 자살을 꿈꾸는가에 대한 이유가 없다. 그래서 해롤드가 자살을 꿈꾸는가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야만 했다. 해롤드는 아버지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생전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해롤드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해롤드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갖고 있다.

대본을 보면 해롤드가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학교에서 불이 나서 해롤드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가 쓰러진 적이 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가는 길을 보지 못한 해롤드는 어머니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해롤드는 어머니가 쓰러진 모습을 보고 어머니에게 쇼크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해롤드는 자살을 꿈꾼다기보다는 ‘자살 쇼’를 하는 거다. 자살 쇼를 계속 하는 이유는 어머니에게 쇼크를 주기 위해서다.”

- 대개 해롤드 또래의 남자는 동갑이나 어린 아가씨에게 관심을 가질 나이다. 그런데 해롤드는 많고 많은 여자 가운데서 모드라는 할머니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꽂힌다.

“해롤드는 자존감이 강하다. 남들이 뭐라 해도 나 자신이 우선이다. 자존감이 강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적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해롤드의 자존감과는 반대로 살던 사람이 모드였다. 그래서 모드에게 끌린 게 아닐까 생각한다.”

- 해롤드는 얼마만큼 소통에 목말라 했을까.

“해롤드가 소통에 목말라 했다기보다는 소통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롤드가 모드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사는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를 물 먹이는 식으로 나 잘난 맛에 살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모드를 만나면서 소통에 대해 알게 된다.”

▲ 연극 ‘해롤드 & 모드’ ⓒ샘컴퍼니
- 맞선녀 중 선샤인을 만날 때 해롤드는 할복하는 시늉을 한다.

“대본에는 해롤드가 할복 시늉을 할 때 배에서 피가 흐른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무대에서 피를 흐르게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피를 흐르게 하는 것보다는 코믹하게 다가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만약 피가 나는 설정으로 갔다면 그로테스크하게 보였을 것 같다.”

- ‘연기는 계산해서 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연기는 계산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연기를 표현할 때에는 계산된 게 보여서는 안 된다. 계산했지만, 그럼에도 계산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는 일상생활이 아니다. 일상생활이 연기가 될 수 없는 건 극적인 상황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인터뷰하는 걸 카메라만 들이댄다고 해서 영화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극적 상황이 없어서다. 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려면 연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연기에는 계산이 필요하다.”

- 인터뷰 답변을 듣고 보니 강하늘씨의 별명인 ‘애늙은이’가 저절로 떠오른다.

“(웃음) 고등학생 때부터 많이 듣던 별명이다. 고등학생 때 책을 많이 읽으며 저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볼 기회가 많았다. 혼자 생각할 기회가 많다 보니 친구들이 또래보다 원숙하다고 애늙은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 같다.”

- 내일 인터뷰 2에서 이어집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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