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협력사협의회는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에 교섭을 위임했다. 그러나 교섭은 지지부진하고 노조 결성 1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 기업 노사는 ‘무단협’ 상태다. 경총은 결국 원·하청의 승인을 얻어야 단체교섭안과 관련한 숫자와 조건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타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핵심쟁점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까닭에 희망연대노동조합은 ‘전원 연행’을 감수하고 원청 SK와 LG 사옥에 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경총을 배제한 직접교섭”과 “원청의 책임있는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하도급업체들을 비롯해, 다산콜센터 위탁업체도 경총에 교섭을 위임한다. 한 노조 관계자는 6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재벌 대기업들이 경총을 통해 업계 표준 최저모델을 만들어 이를 다른 사업장에도 관철하려는 것”이라며 “기업들이 경총을 통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공동대응하고 있고 ‘노조 깨기’에 나서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총 노사대책본부는 노동조합과 만나는 자리에서 상황이 좋지 않은 다른 사업장의 사례를 거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총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그만큼 선명한 입장으로 교섭에 임해야 한다. 또 성과를 내야 한다. 그래야 '재계의 대표'라는 상징성을 유지하고 또 다른 교섭을 수주할 수 있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간접고용 노동조합과 교섭에서도 경총이 ‘시간 끌기-노조 압박’ 전략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다.

▲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월4일부터 사흘 동안 진행한 <제38회 전국최고경영자 연찬회> 행사 관련 홍보물을 미디어스가 갈무리.

경총은 사용자를 위해 실적변동급을 강조하고, 어떤 복지기금 지출도 절대 불가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임금 인상안을 내놓고는 있지만, 4대보험료를 노동자에 전가하는 방안이 포함돼있어 사실상 임금 인하가 예상된다. 경총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조차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는 다단계하도급 구조도 즉각 고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게 일 년 가까이 교섭을 타결하지 못한 이유다. 노동조합이 고용불안을 야기할 경총의 ‘꼼수’ 임금인상안을 수용할 확률은 제로다.

회사 쪽에서는 “시간을 끌어 상반기를 넘기면 노조는 무너지게 돼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간접고용 노동자 둘이 6일 새벽 고공농성을 시작한 것도 회사의 ‘시간끌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오전 10시께 노동조합의 보도자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회사와 경총은 단호하게 맞섰다. 오후 5시에 있던 SK 노사교섭이 논의를 시작도 못한 채 끝난 것도 이 때문이다.

오전 10시 이후, 경총은 ‘여론전’을 준비했다. 경총 홍보팀은 이날 낮 3시께 출입기자들에게 [경총, 포지션 페이퍼] ‘희망연대노조의 과도한 요구와 불법행위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보도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A4용지 5쪽짜리인 이 자료에서 경총은 쟁의행위 상황은 물론 노사 양측의 임단협 교섭안도 자세히 소개했다. 경총은 ‘희망연대노조의 주요 불법행위’를 표로 정리했고, 엄정한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자료에는 경총이 교섭에 임하는 태도와 실력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경총은 “희망연대노조는 교섭 초기 관리자 해고 요구 등 단체교섭과 무관한 사항을 주장해 교섭의 실질적인 진행을 어렵게 하는 등 단체교섭을 파업으로 가기 위한 형식적 절차로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섭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문제적 관리자에 대한 징계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또, 건당 수수료로 먹고 사는 ‘근로자영자’에게 무노동무임금은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들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위해 교섭을 해태했다는 주장은 그래서 ‘몰상식’이다.

▲ 경총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 중 일부.

경총은 “희망연대노조는 협력업체가 재정상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임금 및 기금 요구안을 제시하며 사측이 요구안을 수용치 않을 경우 교섭타결이 어렵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회사에 간도 쓸개도 다 내주는 어용노조라면 모를까,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조합이라면 당연히 ‘보다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게 맞다. 교섭은 협상의 과정이고, 노사 사이 입장차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왜곡과 허위사실이 돋보이는 부분은 “특히 희망연대노조는 노조가 경비원조의 부당노동행위 가능성이 농후한 사회공헌기금 등 각종 기금 제공(SK브로드밴드협력사 25억/LG유플러스협력사 27억)을 핵심요구로 내세우며 기금 출연이 없을 경우 임단협 타결은 불가하다는 입장 고수”라는 대목이다. 노동법 박사가 즐비한 경총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상 부당노동행위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근로자의 후생자금 또는 경제상의 불행 기타 재액의 방지와 구제등을 위한 기금의 기부와 최소한의 규모의 노동조합사무소의 제공”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다.

흑색선전도 있다. 경총은 “희망연대노조는 추가적인 임금인상, 기금 제공, 노사화합격려금 지급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SK그룹본사 불법 점거, LG그룹 회장 자택 앞 노숙농성, 고공농성 등 원청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다수의 불법행위”를 전개했다고 주장했다. ‘원청이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하라’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구호는 이렇게 ‘생떼’로 왜곡됐다.

또한 경총은 민주노총 강경파가 희망연대노조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민주노총은 상반기 ‘비정규직투쟁’의 주요 동력으로 희망연대노조를 활용한다는 계획으로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협력업체 노사관계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며 “(한상균 위원장 등) 투쟁 성향의 인물 위주로 구성된 민주노총’이 희망연대노조 파업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측도 사측도 교섭을 우선 타결해 월급을 받고 업무를 정상화하는 게 우선인 상황에서 경총은 이 싸움은 총자본 대 총노동의 싸움이라는 식의 과잉해석을 했다.

▲ 경총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 중 일부.

경총은 참고자료의 맨뒤에 희망연대노동조합에 대한 사법처리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경총은 “정부는 희망연대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엄정히 대처해 법치주의를 확립”해서 “불법투쟁 확산 방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총은 “희망연대노조의 ‘기금 출연’, ‘파업기간 중 임금 지급’ 등 과도한 요구와 불법점거 등 극심한 불법행위가 매번 반복·확대되고 있는 바, 정부의 엄정한 법집행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청노조에 원청이 떨고 있다’는 식의 보수언론의 논조보다 한 발 더 나가 경찰의 진압을 유도하는 내용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경총의 비난 대상인 희망연대노동조합의 박재범 정책국장은 “경총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확산을 막으려는 여론 플레이”로 봤다. 박재범 국장은 “불법적인 고용형태와 노동조건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교섭하기보다는 노동조합이 비도덕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경총 주장을 반박했다.

복지기금과 파업기간 임금 지금이 불법이라는 것은 노동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다는 게 박재범 국장 지적이다. 그는 “경총이 허위사실을 유포해 노동조합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식의 여론 플레이는 경총이 노동조합을 교섭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는 태도를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경총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이지만, 최근 들어 '노조파괴 브로커'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노사관계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경총이 이와 같은 흑색선전까지 감수하는 것은 그만큼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조합운동에 힘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물론 이 노동자들은 가진 게 몸뚱이뿐이라 전광판에 기어오르고 길거리에서 노숙하고, 거리에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게 싸움의 전부다.

경총의 기술과 실력은 아예 밑바닥이다. 경총의 논리는 너무 옛스럽고 무식해 보인다. 현대차노조 파업이 한국경제를 흔들고, 화물연대 파업이 한국을 멈춘다는 선동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날이 갈수록 세련되게 변모하고 있는 자본을 대변하면서 국내 굴지의 언론사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경총이라면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경총이 벌거벗었다. 누가 좀 컨설팅해달라.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 및 임원진. (자료=한국경영자총협회 누리집.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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