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2월 5일,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항공기 내에서 자사 기내 승무원에게 이른바 ‘지도와 감독(이라 쓰고 갑질이라 읽음)’을 했고, 이에 따라 항공기의 이륙이 지연된 ‘땅콩회항’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 보도의 발단(發端)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후 관련 소식은 모든 뉴스들의 핵으로 부상했다. 지상파 3사 메인뉴스는 12월 8일(월), 처음으로 해당 뉴스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이.

▲ '땅콩 회항' 사건을 보도한 MBC뉴스 화면 캡처

2015년 12월 8일
KBS <뉴스9> 이륙 준비 항공기 되돌린 ‘회장님 딸’
MBC <뉴스데스크> “승무원 내려라” 비행기 돌려
SBS <8시 뉴스> 화났다고 비행기 돌린 ‘대한항공 3세’

이후 각 지상파 메인뉴스들은 ‘땅콩회항’ 관련 소식을 쏟아내며, 사건 발생 두 달이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까지 주목하고 있다. 지상파 뉴스들은 사건의 전모 및 검찰의 수사진행 양상을 전함과 동시에 상대적 약자에 해당하는 박창진 사무장을 인터뷰하여 그를 대변해 주는 ‘용자(라 쓰고 특종이라 읽음)’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상파 뉴스는 한 동안 약자의 대변인 ‘용자’를 자처했고, ‘땅콩회항’은 그들에게 좋은 ‘소재(라 쓰고 먹잇감이라 읽음)’였다. 필자의 의견에 비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상파 뉴스는 최소한 ‘땅콩회항’ 건에 있어서만큼은 할 일을 했다. 한 개인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으니 말이다.

지상파 뉴스에게 있어서 ‘유배툰’이란?

지난 1월 30일, MBC는 반복적 ‘해사행위(라 쓰고 애사행위라 읽음)’를 한 권성민 PD의 해고를 확정했다. 권 PD가 지난해 12월 비제작부서인 경인지사로 발령을 받은 뒤 그린 웹툰, 이른바 ‘유배툰’이 ‘지도와 감독’하는 경영진에게는 ‘해사행위(라 쓰고 용자의 표현의 자유로 읽음)’로 비춰졌나 보다. 필자는 식견이 부족하고 권 PD처럼 ‘용자’는 못되기에 해당 사건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대중에게 맡긴다. 다만 필자가 ‘유배툰’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땅콩회항’과 오버랩 되는 지상파 뉴스의 이중 잣대이다.

해당 사건이 이슈가 된지 10일이 넘어가지만, 지상파 뉴스들은 침묵하고 있다. 혹시 ‘땅콩회항’과 ‘유배툰’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필자만의 착각이지 않을까 싶어 검색을 해봤더니, 다행히 ‘땅콩회항’과 ‘유배툰’을 연결 지은 하나의 기사를 찾아냈다.

MBC 경영진의 ‘갑질 해고’(한국기자협회, 2015.01.28.)

‘우리가 해고라면 해고다’라는 MBC 경영진의 의사만큼은 분명히 느껴진다. 갑인 경영진의 결정을 을들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독선이다. 그런 면에서 ‘부사장이 수틀리면 떠난 항공기도 돌린다’는 ‘땅콩회항’사건과 닮아 있다.

MBC PD해고와 대한항공 ‘땅콩 회항.’ 과정은 비슷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결과가 정반대다. ‘땅콩 회항’ 사건은 기자들의 치열한 취재경쟁과 들끓는 여론으로 영원한 갑으로 여겨졌던 경영진의 구속재판까지 이어졌다. 미묘한 시기에 터졌던 ‘땅콩 회항’ 사건도 여론의 관심이 이토록 집중되지 않았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어갔을 것이고, 그 항공기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은 인사조치 되고 말았을 것이다.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는 “땅콩회항 사건도 여론의 관심이 이토록 집중되지 않았다면 단순히 해프닝으로 넘어갔을 것이다”말은 하나의 주장이고 가설이지만, 분명히 ‘땅콩회항’ 사건에서 지상파 뉴스는 상대적 약자의 편인 ‘용자’를 자처했다. 하지만 권 PD 해고와 관련해서 지상파 뉴스는 침묵하고 있다.

지상파 뉴스는 ‘땅콩회항’에서는 ‘용자’를, ‘유배툰’에서는 ‘침묵’을 선택했다. 과연 ‘땅콩회항’에서 보여준 지상파 뉴스는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용자’의 의미였을까?

박수철 _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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