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공익성 그런 것을 추구하기 위해 있는 것 아닙니까?"

지난 18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방송위원회 국감에선 강동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의 '녹취록 파문'이 때아닌(?) 쟁점이 됐다. 포문을 연 것은 윤원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었다. "방송위원의 역할이 무엇이냐, 방송법을 알고는 있느냐"는 날선 질문에 강 위원은 "머리가 나빠 방송법을 다 외우지 못한다"고 응수하더니 '공공성과 공익성을 추구하는 것'을 방송위원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옳은 말이다. 방송위원은 방송의 공공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위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추천을 받아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활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강 위원은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여의도 한 일식집에서의 술자리 대화 내용이 지난 4월 언론에 공개되면서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시민단체와 언론계에서는 "방송위원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망각한 발언"이라며 공분했지만 그는 '사적 자리의 사적 대화'였고 '사적인 생각과 공적인 업무는 별개'라며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방송위원에게도 '사적'인 영역이 분명 존재하고,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것 또한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그렇지만 한 개인이 평소에 갖고 있는 자유로운 생각이 공적 업무와 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강 위원이 공적 업무를 맡고 있는 이상, 말 따로 행동 따로이거나 겉과 속이 다르다면 신뢰하기 힘든 법이다.

"정권을 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 새로 그려야 된다" "당에서도 해달라고 하면 우리도 그걸 받아서 해야 하고, 우리 애로점이 있으면 당에서 지원도 해줘야 한다" "우익시민단체에 (방송) 모니터하는 팀이 있어야 한다"는 발언들이 단지 '사적 대화'로 넘겨버릴 만한 성격이라면 우리나라 방송정책 전반을 담당하는 방송위원들에게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그러나 18일 국감에서 강 위원은 한치의 물러섬이 없었고, 사과는 커녕 입에 발린 유감 표현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피의자처럼 취급하지 말라"면서 "사석에서 도청해 (녹취록을) 유포한 것이 문제다. 왜 국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나는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이광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공인은 사적 장소에서도 공적인 임무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자 "옳은 말씀"이라고 수긍하면서도 "인격이 부족해서 그런 부분까지 안된다"고 받아쳤다.

▲ 지난 4월 11일 언론단체들이 방송회관 1층에서 진행한 강동순 방송위원 사퇴 촉구 피켓팅 ⓒ언론연대
그동안의 발언을 살펴보면, 강 위원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강 위원은 '녹취록 파문'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지난 4월 5일 미디어오늘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녹취록 발언 내용이 방송위원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게 아니냐'고 묻자 "일리가 있다"고 수긍했다. 방송위원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는 발언을 했고, 공인은 사적 장소에서도 공적인 내용을 담보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강 위원은 그 정도의 '인격 부족'은 방송위원을 물러날 만큼의 잘못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시민사회의 사퇴 촉구 여론은 잠잠해졌고 정치권에서도 변죽만 울리고 있으니 두려울 것도 눈치볼 것도 없을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18일 강 위원의 자질을 질타하며 그를 추천한 한나라당에 화살을 돌렸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강 위원이 자신의 '입장'을 항변할 수는 답변 기회를 제공하는 데 충실했다.

방송의 공적 책임과 방송위원의 정치적 중립 논란을 일으킨 강동순 위원이 문제라면서도 이러한 사람을 방송위원으로 추천한 국회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강 위원과 날선 대립각을 세웠던 윤원호 의원은 18일 국감에서 보인 강 위원의 답변 태도를 문제삼아 국회 모욕죄로 고발할 것을 요청했지만 정작 모욕을 당한 것은 국회가 아니다. 변죽만 울리는 정치 공방, 아무도 반성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태도야말로 국민을 모욕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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