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인터넷과 IPTV를 설치, 수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지 1년 여가 됐으나 ‘무단협’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14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아직도 체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두 재벌 대기업의 협력사 협의회는 한국경영자총협회에 교섭을 맡겼는데, 경총이 서로 교섭 상황을 공유하고 핑퐁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동조합은 지난해 가을부터 서울 을지로 SK 본사와 여의도 LG그룹 빌딩 앞에서 노숙농성 중이다.

SK와 LG 모두 임금체계 문제부터 풀리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노동자성이 인정된 만큼 ‘고정급 비중이 높은 월급제’를 요구하고 있으나, 사용자 측은 고정급보다 변동급 비중을 늘리자고 맞서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은 다단계 하도급을 금지하고, 하도급업체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사용자 측은 기존 재하도급 업체와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 업체 직접고용 시기가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22일 서울시내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한 SK브로드밴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모습.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 교섭이 상대적으로 더 꼬인 측면이 있다. 노동자성을 인정한다면 기존의 속칭 ‘건바이’ 실적급을 고정급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으나, 고정급과 변동급의 비율 문제에서부터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협력사협의회 교섭을 대리하는 경총 노사대책본부 황용연 노사대책2팀장은 3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개통기사의 경우, 정규직 전환시 임금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도 “사측도 일정부분 인상하는 만큼 노측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황용연 팀장은 ‘AS기사 임금체계’ 문제에 대해서는 “노측은 고정급 월급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사측은 동기부여 차원에서 성과급 변동제를 도입하자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다단계하도급 금지’ 쟁점에 대해서도 “재하도급 업무를 언제 회수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은 3개월 이내 회수를 하라는 입장이고 우리는 계약기간을 고려해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는 입장으로 갈린다”고 전했다.

SK브로드밴드는 임금 체계 등에서는 어느 정도 접근을 이뤘으나, 금액과 복지 관련 쟁점을 두고 시간을 끌고 있다. 경총 노사대책본부 장정우 노사대책1팀장은 “회사는 현장기사에 대해 인상안을 제시했고, 이 틀 내에서 세부내용들을 다시 얘기해봐야 한다”면서 “그러나 (파업 장기화로 인한) 조합원 격려금, 복지기금, 단체협약 적용시점 등이 첨예한 쟁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교섭 체결 시점부터 적용하자고 하지만 노동조합은 2014년 교섭이기 때문에 이를 체결하고, 2015년 교섭을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박재범 정책국장은 “SK와 LG 모두 다단계 하도급 근절을 위한 고용안정 문제에 대한 안을 내놓고 있지 않고,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범 국장은 “고정급은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하고 실적급(변동급)을 늘리자는 데 사측 희망인데, 노동조합의 요구에 대해 적용하기 힘들다고만 얘기하면서 정작 원청이 내려보내는 총 비용과 지급 능력에 대해서는 설명을 한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박재범 국장은 “교섭을 대리하는 경총은 결정권한이 전혀 없다”며 “지금 교섭은 경총이 원청과 협력사와 이야기하고 확인을 받아와야 하는 구조인데, 지난 1년 동안 교섭 자리에서 진척된 사안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원청과 협력사가 경총을 통해 시간을 끌면서 조합원들이 지치기만을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 조합 내부 관측”이라고 말했다.

두 교섭을 중재하고, 원청에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의 이원정 총괄팀장은 “원청과 만나면 협력업체 핑계를 대면서 원청은 해결의지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 교섭 진행 과정에서는 두 회사의 노무관리 정책이 비슷한 정황이 포착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총 내부에서 정보를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사업장 이야기를 하며 핑퐁게임으로 시간을 끄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간접고용 문제에서 재벌 대기업들은 ‘사회적 책임’과 ‘도의적 해결’을 말하지만, 실상은 경총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다산콜센터의 위탁업체들도 경총에 교섭을 맡겼다. 여러 현장을 동시에 관리하고, 이중 사용자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가 나온 현장을 선례로 다른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어내는 모델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파리목숨’ 노동자들의 고용이 오히려 더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끌기’를 두고 진짜사장인 원청과 그 경영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만, 원청은 여전히 “하청 노사문제”라며 선을 긋고 있다. 을지로위원회 이원정 총괄팀장은 “원청의 사업부서와 노무관리라인이 엇박자를 내며 핵심 쟁점을 처리하고 못 하는 상황인데, 이 사태를 오래 끄는 목적은 노조 약화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2일 SK그룹과 LG그룹 본사 앞, 그리고 총수 일가 자택 주변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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