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이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이어 30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해 전화 조사원 인터뷰로 진행.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1%포인트 하락한 29%가 나왔다. 그간 하락한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쓴 수가 아무런 효용이 없었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한국갤럽은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전국 성인남녀 1009명을 상대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물었는데 20대에서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답변은 전체의 20% 이하에 불과했다. 반면 부정평가는 전체의 70%를 웃돈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조차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평가는 60% 아래로 떨어졌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의 부정평가는 61%에 달했고 대구·경북에서조차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7% 높은 현상이 벌어졌다. 이 정도면 ‘지지층 붕괴’라고 할만하다.

TK에서조차 부정평가 '지지층 붕괴', 원인은 하나 "잘못하고 있다"

원인은 간단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못하고 있고, 그 책임 역시 대통령이 져야 하는 게 명백하기 때문이다. 원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층은 대통령에게 크게 기대하는 것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에 속하는 상당수가 대통령의 캐릭터를 지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제민주화’ 등의 이슈로 중도층 공략에 성공한 게 2012년 대선 승리의 비결이다. 정치에 대한 냉소가 일반화된 사회 분위기는 더더욱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무디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굳이 바라는 게 있다면 이명박 정부 시절의 무능함과 좌충우돌만 보여주지 않았으면 할 뿐이었다. 이것을 잘 아는 정치평론가들은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율이 임기 말까지 4~50% 아래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동안 예측했다. 이제 40%도 아닌 30%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붕괴하면서 이러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콘크리트’ 붕괴의 시작은 익히 알려진대로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과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다.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이래로 품고 있었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논란’과는 결이 달랐다. 사람들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저 국가를 정상적 수준 정도로 운영해주기를 바랬다. 세월호 참사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층이 흩어지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일들을 일종의 ‘예외적인 것’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은 ‘전시’에 능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평시’에는 국가를 정상적으로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3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공무원상 및 국가시책 유공자 시상식에 참석, 동영상을 시청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비선실세 논란으로 촉발된 붕괴들, 박근혜 대통령 능력에 근본적 회의감 던져

그러나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이 암투를 벌이고, 이 암투가 취임 이전부터 진행돼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평시’에도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의문부호가 찍히게 됐다. ‘비선 실세’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일개 국·과장 인사까지 좌우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평시’마저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비선 실세’의 존재는 검찰 수사 결과가 어찌됐건 상당 부분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됐다. 그리고 이어진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퇴와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재신임은 ‘콘크리트’들에게는 모래처럼 흩어질 훌륭한 핑계가 됐다.

‘연말정산 대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어찌됐든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변화를 체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정부가 무책임으로 일관했다는 비난을 피할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변화의 정도에 있어서 명백히 차이가 나긴 하지만 부가가치세 도입 당시 실무담당자가 ‘과도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변화되는 세금 관련 정책의 홍보에 매진했음에도 부마항쟁에서(비록 정권에 대한 반대 의사 표현을 위해 제기된 것이라고는 해도) ‘부가가치세 도입 반대’ 구호가 나올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해보자. 또, 우리에게 여전히 ‘저축’과 ‘근검절약’을 공적 책무처럼 여기는 습성이 남아있는 것은 가난했던 박정희 정권의 경험도 물론 작용한 것이지만 ‘안정화’를 줄기차게 홍보했던 전두환 정권의 잔재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사례들을 돌아보면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대체한 2013년 세법개정안에 대한 홍보 역시 전면적으로 제기돼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그런 임무를 방기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정권이 국민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주는 일을 어떻게든 관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오직 권력 내부의 암투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쯤되면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으니 앞으로라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청와대 핵심들은 하지 않을 수 없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서 하는 일들도 모조리 헛발질로 이어지면서 사태는 더 심각하게 이어진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건강보험료 부과 기준 개편안을 사실상 백지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언론 보도와 전문가들의 발언을 보면 정권이 ‘연말정산 대란’에 대한 학습효과로 ‘세금폭탄에 이어 건강보험료 폭탄’이란 제목의 자극적 언론 보도가 이어질 것을 경계해 3년간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받아 모처럼 만들어 낸 개편안을 종잇장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애초에 ‘하후상박’식의 이러한 개편안을 정부가 환영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지역가입자가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현행 부과 기준을 고치는 것은 분명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을만한 일이다. 문제는 정권이 이렇게 했다고 해서 언론의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느냐,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은 일제히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비겁하고, 한심한 정권이라는 냉소적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마 이 개편안을 무력화시킨 장본인은 직장가입자 또는 그의 피부양자가 되지 못하는 지역가입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지 아마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준비된 총리 후보자' 이완구, 아껴둔 '카드' 일찍 던졌지만...

‘이완구 총리 후보자’는 정권이 나름대로 아껴둔 또 하나의 ‘카드’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듯 충청권 여론이 심상치 않고 안희정 충남도지사라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있는 상황에서 충청권을 방치하면 정권재창출에 심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완구 총리 카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국회와 소통하지 못한다는 오명도 벗고 ‘준비된 후보자’라는 측면에서 정국 운영에 상당한 안정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낼만한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계획한 대로 잘되는 듯 했다. 이완구 후보자는 50년된 엑스레이 사진을 꺼내들 만큼 잘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국사회를 열심히 산 기득권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부동산 투기 문제가 나오자 아무리 준비된 총리 후보자라도 한 번 휘청 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은 제1야당의 안이함과 무능함을 지적하며 선두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고 제1야당은 언론의 활약에 힘입어 여러 부담을 떨치고 뒤늦게 포문을 열 기세다. 이완구 총리 임명 동의안이 마지막에는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완구 카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이미 상당 부분 반감됐다. 이쯤에서 ‘머피의 법칙’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해도 악재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정치의 본질에 속하는 문제다. 정치는 지지율이 올라가는 선택과 내려가는 선택, 양자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선택’이 아니라 특단의 ‘대책’으로 민심을 진정시켜야 한다. 전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였던 개각은 아직도 안됐고 김기춘 비서실장은 여전히 정국을 컨트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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