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3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신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대통령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고 야당과 원만히 협조했고 국정의 정상운영에 기여해 왔다”며 “공직기강 확립과 소통의 적임자로 판단됐다”는 게 내정의 이유다. 지난해 문창극 전 후보자가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과거 발언 때문에 자진사퇴하고, 정홍원 총리가 계속 자리를 지켜온 상황에서 ‘새 총리’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높았다.

이완구 후보자는 특히 모처럼 나온 ‘정치인 출신 총리’라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청문회를 열기도 전에 이미 논문 표절, 땅 투기 의혹, 차남 병역면제, 장남과 차남의 재산 의혹 등 총리 자질과 도덕성에 관한 여러 가지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신문들이다. <한겨레>는 차남 병역비리 논란을 제기한 데 이어 29일 지면에 장인 장모를 활용해 10배의 차익을 본 것을 두고 후보자의 땅 투기 의혹을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타워팰리스 아파트를 샀다가 6개월 만에 되팔아 거액의 시세차액을 올렸고, 수천만원 상당의 양도소득세 탈루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뉴스는 초반부터 물밀듯이 나오고 있는 의혹 방어에 힘쓰고 있는 이완구 후보자의 해명을 보도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후보자의 자질 검증은커녕 의혹 제기라는 ‘발생뉴스’보다 이완구 후보자의 해명을 담는 보도에 가장 충실한 곳은 MBC <뉴스데스크>였다.

‘해명’, ‘반박’, ‘일축’, ‘법적 대응 검토’… 이완구 ‘말’만 가득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오늘부터 본격적인 인사청문회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몇 가지 제기된 의혹에 대해선 아예 기자회견까지 열고 적극적으로 해명했습니다” - 1월 24일

“차남의 병역 기피 의혹에 대해서는 무릎 십자인대 파열에 따른 것이며 이번 주 안에 공개 검증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장인의 경기도 분당 땅이 차남에게 증여돼 투기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서는, 적법한 절차였으며 증여세도 납부했다고 해명했습니다” - 1월 27일

“장가도 안 간 자식의 신체부위를 공개하면서까지…공직에 가기 위해서 비정한 아버지가 됐나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파요” - 1월 29일

▲ 24일자 MBC <뉴스데스크> 톱 보도

MBC <뉴스데스크>는 지상파 3사 중 이완구 후보자의 해명을 가장 자주 인용했다. 24일 톱 보도에서는 “이 후보자의 차남은 현역 판정을 받은 뒤 미국 유학으로 입영을 연기해오다 유학 시절 무릎인대가 파열돼 병역 면제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남이 외가로부터 공시지가 18억 원가량의 땅을 증여받았지만, 본인이 증여세를 해마다 나눠 내오고 있어 올해로 모두 납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는 해명 내용을 보도했다. 차남의 병역 의혹과 재산 의혹은 전날(23일) 보도되지 않았다. 후보자의 반박이 먼저 나간 셈이다.

이런 흐름은 계속됐다. 총리 후보자가 겪고 있는 논란은 웬만해서는 보도되지 않았다. <뉴스데스크>는 25일, 26일에도 후보자 검증 보도를 생략했고 27일에야 <이완구 인사청문회 다음 달 9-10일 실시…주요 쟁점은?>이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보도 구성과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완구 후보자의 해명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

이완구 후보자는 자신에게 제기된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답했다. 단국대 행정학과 박사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서는 ‘인용 표시 소홀’을 인정했으나 “20년이 넘은 것”이라며 과거 분위기는 현재와 달랐다는 점을 밝혔고, 장남 부부의 재산 신고 누락 의혹에 대해서는 “유학 기간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줘 재산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29일 취재진들 앞에서 펼쳐진 ‘이완구 차남 병원 공개검증’ 보도도 빠지지 않았다. 이명철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양쪽 대퇴골 견골에 터널이 뚫려 있고… 누가 봐도 확실한 전방십자인대 제거 수술을 받은 무릎이다 이렇게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29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

이밖에 “2003년 이 후보자가 타워팰리스를 다운계약서로 매매해 양도세를 탈루했다는 일부 언론의 의혹에 대해선 실거래가로 거래했고, 충청 지역구에서 고가주택 거주 등의 문제를 제기해 매도하면서 양도세 9천7백만 원도 모두 납부했다며 의혹제기에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는 또 다른 해명도 포함됐다.

하지만 <뉴스데스크>만 봐서는 이완구 후보자의 ‘어떤 부분’이 문제라는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없다. 기본적인 설명을 빠뜨린 채 보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후보자 본인의 단국대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면, 논문의 유사도는 얼마나 높았는지, 논문 작성 원칙을 어느 정도 위배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와야 하는데 <뉴스데스크>에서는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해명도 타 뉴스에 비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문제가 된 땅은 어디인지, ‘투기’ 의혹이 나왔다면 이 과정에서 이완구 후보자가 얻은 차익은 어느 정도인지, 땅의 소유권이 그동안 어떻게 이전되었는지 등은 SBS <8뉴스>에는 나왔지만 <뉴스데스크>엔 없었다.

취재를 통해 선제적인 검증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지상파 3사의 공통된 경향이다. 차남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첫 보도는 모두 이완구 후보자의 ‘해명’이었다. 이 중 KBS는 29일<이완구 ‘이상한 재산 신고’…9개월 만에 3억 차익>에서 이완구 후보자가 강남 아파트 매매 과정에 2차례에 걸쳐 기준과 다르게 공직자 재산신고를 했다는 점을 전하며 검증 보도에 나섰다. 그러나 교회 강연 동영상을 찾아내 문창극 후보자를 ‘날린’ 지난해 6월의 활약에 비해서는 부족한 상황이다.

▲ 29일자 KBS <뉴스9> 이완구 ‘이상한 재산 신고’…9개월 만에 3억 차익 보도

고위 공직자 임명 과정에서 자질과 도덕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각종 의혹에 대해 확인 취재 및 보도를 해야 하는 것은 언론이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다. 그런데 방송뉴스는 지속적으로, 또 유난히 이 ‘작업’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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