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선 끼니때가 되면 자연스레 리모컨을 찾는다. 리모컨이 반찬이나 밥이 아닐진대 마치 그것이 없으면 밥을 먹을 수 없는 듯 온 식구가 수저를 들지 않고 리모컨을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 리모컨을 찾으면 제 1순위 채널은 올리브TV이다. 그리곤 <오늘 뭐 먹지?>가 하는지 확인하고 이 프로그램이 방영하고 있으면 그것을 반찬 삼아 마치 성시경, 신동엽과 함께 식사를 하듯 그들의 어설픈 요리와 요리를 넘어서는 입담에 그 나물에 그 밥인 우리 밥상을 잊는다. 예전에는 밥상을 마주하고 TV를 켜면 당연히 채널은 그날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로 고정되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뉴스를 보다보면 밥이 목구멍으로 제대로 넘어가기 힘들었다. 그때부터 우리 식구는 TV속 요리 프로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EBS의 <오늘의 요리>는 TV 속 요리 프로그램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요리가 문화로 대접받기 시작하고 아프리카 TV 등에서 먹방이 인기를 끌면서 TV 속 요리 프로그램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우선은 MC와 게스트들이 맛집을 찾아 순례하기 시작했다. 매일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음식명은 그날 각종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음식들이기 십상이다. 정준하는 예전의 그 먹성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 여러 식당들을 순회하고 있고 <테이스티 로드>의 여성 MC 교체를 둘러싸고 프로그램 열성팬들의 설전이 게시판을 메우는 건 여전히 이런 맛집 순회 프로그램들의 건재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이다.

맛집 순회 프로그램이 몇 개의 대표적 프로그램으로 정리되면서 올리브 TV에서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살려 전국 각지 요리의 진검승부를 가린 <한식 대첩>과 요리 버라이어티 <올리브 쇼>를 만들었다. <한식 대첩>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요리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예능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고 <올리브 쇼>는 셰프들이 그저 요리만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주인이 되어 끌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 내고 있는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올리브TV는 정재형, 성시경, 신동엽까지 트렌디한 연예인들을 주방으로 끌어들여 <프랑스 가정식>, <오늘 뭐 먹지?> 등 각 인물의 특성에 맞는 요리의 예능화를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올리브 TV가 먹방의 인기에 힘입어 요리 전문 채널을 넘어 예능으로 안착하면서 케이블과 종편에서도 앞다투어 새로운 요리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슬로우 라이프를 표방한 tvn의 <삼시세끼>나 <꽃보다>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나 먹방이다. <삼시 세끼>의 경우 프로그램의 미션이 하루 세끼를 해먹는 것 단 하나이다. <삼시세끼-정선편>에서는 정선 시골 마을의 텃밭과 장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어촌편은 만재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아궁이에 불을 붙여 밥상을 마련하는 그 과정이 온전히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꽃보다> 시리즈에서도 여행을 간 연예인들이 하는 건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의 맛난 먹거리를 먹는 것이다.

최근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은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게스트의 냉장고를 스튜디오로 옮겨와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로 게스트가 손쉽게 할 수 있는 요리를 세프 군단이 대결을 통해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대표적으로 만화가 김풍과 전문 셰프 샘 킴의 대결에서 보여지듯이 그간 요리 프로그램의 정석을 살짝 비껴간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여타 요리 프로그램과 차별이 된다. 분명 전문 셰프인 샘 킴과 김풍은 요리의 내공으로는 비교를 할 수 없고 김풍은 오랜 자취 생활의 내공으로 이른바 야매 요리를 추구하는 요리계의 아웃사이더인데 이 두 사람이 게스트의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게스트의 간택을 받는데 있어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격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이미 올리브 TV를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요리의 영역이 조금씩 등장했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 <냉장고를 부탁해>가 되는 것이다.

현실적인 요리가 멋들어진 요리 문화 속에 자신의 지분을 얻어가고 있다. 마치 몸에 좋은 요리만 찾다가 라면을 먹고 속시원하게 트림을 하듯 현실의 요리 세계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나선다. 거기에 고명을 얹는 건 셰프와 아마츄어의 대결을 흥미진진한 게임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김성주와 정형돈의 만담에 가까운 진행이다. 각자 자신만의 입맛이 뚜렷한 MC진이 객관적 위치를 넘어 사심에 가까운 진행을 통해 먹고 싶은 프로그램의 실감을 살려낸다.

이렇게 굽고 지지고 볶고 TV 화면 속 그림의 떡임에도 보는 이의 식욕을 한껏 돋우는 각종 요리 프로그램들이 앞다투어 방영되고 있는 가운데 tvn의 <수요 미식회>는 새로운 모험을 시도한다. 비록 자료 영상으로 각종 맛집의 풍성한 음식들이 보여지기는 하지만 스튜디오에 앉은 MC와 패널들은 오로지 토크만으로 그날의 음식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오로지 그들이 맛본 음식에 대한 현란한 소개만으로도 스튜디오에서 지지고 볶는 요리만큼이나 아니 때로는 그 이상 먹방의 갈증을 불러일으킨다. 패널들이 말로써 먹는 그 과정이 먹방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맛집을 언젠가는 가보리라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종다양한 요리 프로그램들은 결국 누가 더 맛있게 먹고, 누가 더 잘 요리하며, 어디가 더 맛있게 하는가를 서로 경주한다. 몸에 더 좋은 것을 견주더니 이젠 몸에 좋은 것도 좋지만 결국은 내 입에 맞는 게 최고라며 인스턴트와 조미료를 양지로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수요 미식회>에서 황교익 요리 평론가의 '언제부터 마블링이 고기맛을 좌우하게 되었나?'라던가 '칼국수를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촌철살인이 새삼 더 맛있는 것에 탐닉하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쯤에 진짜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먹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그 시점이다. 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먹방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당장 우리집만 해도 밥상머리에 앉아 대화 한 마디 하지 않는 서먹한 분위기를 메우기 위해 허겁지겁 먹방을 찾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아니 그보다도 풍성한 재료와 배가 터지도록 되풀이 되는 맛집 순례의 저편에서 하루 3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라면을 얼마나 먹었는지 세기 힘들 정도로 하루를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망각해 가고 있다. 삶의 고단함, 고달픔과 반비례하는 먹방, 그 흐드러진 잔치가 끝나고 나도 어쩐지 마음의 허기는 여간해서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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