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회고록이 언론을 통해 먼저 공개되면서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9일 일부 일간지들이 각각 이 회고록의 내용을 다뤘는데, 서로 중점을 둔 부분은 상이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1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전문을 입수해 보도했다. <경향신문>이 주목한 부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재임시기 사업들을 자화자찬하고 비판들 받는 점들은 남에게 책임을 떠넘겼다는 것이었다. <경향신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한국이 세계 금융위기를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들보다 빨리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면서 “한국수자원공사의 부채 누적과 22조원의 천문학적 예산 투자 등 4대강 사업을 둘러싼 ‘혈세 낭비’ 비판에 대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투자’로 반박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또 “이 전 대통령은 특히 회고록의 상당 부분을 외교 사안에 할애하면서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반면, 4대강 사업, 자원외교, 광우병 파동 등 재임 중 ‘내치 실패’에 대해선 대부분 대부분 야당과 당시 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의 책임으로 돌려 파장이 예상된다”고도 썼다.

▲ 경향신문 29일 1면 기사.

<경향신문>은 3면과 4면에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을 다뤘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대해 사업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감사원의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위장 건설 사업이라는 감사 결과에 대해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고 하는가 하면 자원외교와 관련해서는 총괄지휘를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가 하기로 했고 노무현 정부 보다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회수율이 높다는 주장을 회고록을 통해 내놨다.

<경향신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주장한 내용을 두고 책 절반이 한미관계나 ‘아덴만의 여명’ 작전 같은 ‘외치’와 관련한 부분으로 돼있는데 국내정치 관련은 4개 장에 불과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자원외교에 대한 부분은 5페이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때문에 따른 촛불시위 사태에 대해선 노무현 정권 책임론을 제기했고 자원외교와 첫 방중 성과 등에 대한 사실은 주관적 관점에서 사실과 다르게 써놨다. 2010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날치기 통과된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선 “노동후진국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됐다”고 썼다.

▲ 경향신문 29일자 4면.

<경향신문>의 보도대로라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정치적 변명거리와 알리바이의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으로 안 쓰느니만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통령을 지낸 인사의 회고록은 당시의 정치적 환경 때문에 밝히지 못한 사실들이나 어떤 정책의 결정 배경 등을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적 가치가 있는 내용으로 구성돼야 이상적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본인의 치적을 강조하는데 그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치적 강조를 넘어 현재 법적 정치적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을 망라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돼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수언론의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의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는 앞서 밝힌 ‘당시의 정치적 환경 때문에 밝히지 못한 사실’, ‘정책의 결정 배경’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 회고록에서 굳이 찾아 발췌해 보도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표적인 것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부분이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 1면에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중국 지도자들을 통하는 방식 등으로 다섯 차례 이상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해왔다는 내용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실렸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이라는 챕터에 등장하는 것으로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찾아온 김기남 당시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나 김양건 비서, 그리고 북한의 부탁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 등이 반복해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을 주장하면서 대신 북한에 쌀과 비료 등 상당량의 경제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했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2면과 3면에 걸쳐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중 남북관계비사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다뤘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관련해 거의 같은 내용의 기사를 이날 지면에서 소개했다.

▲ 29일 1면 기사.

보수언론이 특히 주목한 남북관계 비사 보도는 몇 가지 측면에서 이후 국면에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해당 보도가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입장을 강화시켜준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의 남북정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박근혜 정권의 출범 시기에 좀 더 유연한 남북관계에 대한 주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보도를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지 못한 이유를 어떤 ‘원칙’의 문제로 설명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정치적 성과를 위해 원칙에 맞지 않는 ‘경제적 지원’을 할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이는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나름의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은 오늘날에 와서는 반대로 뒤집어 말할 수도 있다. 박근혜 정권의 경우 이명박 정권 시절보다 나아진 남북관계를 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반복해서 밝혀왔다. 그렇지만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남북관계는 나아지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통해 이제 국민들은 ‘겉으로는 어려워 보이지만 뒤로는 무언가 진행되는 게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비공개에 속하는 어떤 교류가 오고가는 상황일 수도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제나 남북관계 개선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는 직관적 통찰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보도가 가져올 세 번째 영향은 북한 측 입장에 대한 것이다. 북한은 그간 우리 측 언론 보도에 대한 다양한 불만들을 제기하며 이를 남북관계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이런 전례를 비추어보면 대화 국면에서 자신들이 불리해질 경우 뜬금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이에 대한 보도 내용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는 직관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면 박근혜 정권의 남북정책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보수언론은 남북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 결론내릴 수도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나름대로 현명한 처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언론으로서 집중해야 할 포인트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화자찬 중 가장 보도할만한 것을 건져내도록 하자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퇴임 3년차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내게 된 배경과 나름의 ‘노림수’를 분석하는 것이 훨씬 언론다운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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