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좀처럼 성공을 경험하지 못한 일본 영상물 리메이크가 다시 발표됐다. 이번에는 원작이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최근 일본 드라마의 강자 <노다메 칸타빌레>를 원작으로 하는 KBS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가 전혀 재미를 보지 못한 것의 학습이 조금도 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에서 온 그대>의 제작사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제작사가 손잡고 만들겠다 나섰으니 그럴듯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아니 우려나 걱정 정도가 아니라 반대하고픈 마음이 더 크다. <러브레터>는 20년 전 일본 영화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최근 한 타이어 광고에 사용될 정도로 한국 팬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명작이다. “잘 지내시나요? 오늘도...당신이 그립습니다.”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는 순백의 감성은 20년이 지나도 우리네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몇 년 전 너무도 충격적으로 망한 드라마 장근석과 윤아의 <사랑비>가 이미지로는 이 <러브레터>를 지향했지만 결국 시청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애국가 시청률 속에서 종영된 바 있다. 사실 당시의 인기로 봐서는 안될 수가 없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러브레터>나 <겨울연가>가 통할 수 없는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재벌 2세와 신데렐라 이야기만 하다가 갑작스런 90년대로의 회귀는 분명 무리였던 것이다.

물론 부정적인 부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tvN의 응사 시리즈에 이어 최근 <무한도전> 토토가까지 대중들이 90년대 정서와 추억에 아주 뜨겁게 반응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문에 1995년에 만들어진 <러브레터> 역시 그에 상응할 개연성은 매우 높다. 게다가 거의 유일하게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에 성공 경험을 가진 제작사가 뛰어들었다는 것도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응사에 이어 토토가까지 장르는 드라마와 예능이었지만 그 안의 공통된 소재는 당시의 노래와 가수들이었다. 90년대를 향한 복고 지향이 어떻게 보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아니 아직 90년대 노래와 가수 이외 제시된 복고 모델이 없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90년대에 노래와 가수만이 대중문화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러브레터>만이 아니라 많은 90년대 영화들이 최근 몇 년 새에 재개봉되어 짭짤한 재미를 본 적이 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리메이크였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원작의 아우라가 크고 그것을 기억하는 팬들의 향수를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것은 원작 그대로의 재개봉이었다는 것이다.

분명 현재의 문화 현상 속에는 90년대에 대한 강력한 향수가 존재한다. 그러나 너무 강력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드라마로 리메이크될 경우 그 강력한 향수로 인한 반발심만 생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한 편의 영화를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살을 붙여야 한다. 그렇게 늘어진 호흡이 <러브레터>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아련한 감성들을 헤치지 않을 거라 보기는 어렵다.

드라마 거의 그대로 옮겨오는 리메이크도 하는 족족 실패하는 마당에 짧은 영화를 엄청나게 늘려야 하는 드라마화는 어떤 작가와 감독이 이 리메이크를 맡는다 하더라도 무리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제작사들도 이런 부분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착수에 들어갔다는 것은 어떤 대안과 자신감이 있을 거라 짐작하지만 90년대 향수층의 오리지널에 대한 완고함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또한 만에 하나 성공한다 하더라도 기분은 썩 좋지 못할 것만 같다. 모두가 첫사랑을 그리워하지만 정작 다시 만나서는 실망하게 되는 것처럼 20년 전의 <러브레터>는 그것으로 너무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 버금가는 리메이크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역시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아니 혹시라도 그렇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만큼 <러브레터>는 그 자체로 너무도 소중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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