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유승민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면서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은 사실상 양강구도가 확정됐다. 이로써 새누리당의 계파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 새누리당의 원내대표 경선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선거전도 연일 민감한 주제를 건드리며 진행돼 관심거리지만 대중적 ‘흥행몰이’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일간지들은 유승민 의원의 출마 선언을 보도하면서 각기 다른 포인트에 주목했다. 대부분의 기사는 유승민 의원이 “당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서야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발언의 상대는 청와대이다. 즉, 당청관계에서 그간 종속적이었던 당의 역할을 주도적인 것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유승민 의원의 발언을 이주영 의원의 “당청소통을 강화하고 당내 계파갈등을 치유하겠다”는 발언과 엮어서 보도하고 있는데 결국 유승민 의원과 이주영 의원의 입장이 각각 당내 비박과 친박의 그것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서야 한다"며 차기 원내대표직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의원이 이외에도 대통령이 부담스러워할만한 발언을 쏟아냈다는 것 역시 당내의 이런 구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경향신문>은 유승민 의원의 “증세없는 복지는 거짓말”이라는 발언에 주목했고 <조선일보>는 “이대로는 내년 총선에 패배한다”는 발언에 초점을 맞췄다. 두 가지 발언 모두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이다. ‘증세없는 복지’는 대통령이 직접 약속한 것이다. 최근 연말정산 대란 국면에서도 이 기조의 유지가 확실해졌다. ‘총선 패배’는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에 다름 아니다.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 대한 논의가 흘러나오는 것에도 위에서 서술한 양강구도를 뒷받침해주는 부분이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이주영 의원은 홍문종 의원을, 유승민 의원은 원유철 의원을 정책위의장 후보로 각각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를 지면에 배치했는데 홍문종 의원은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이며 원유철 의원은 과거 비주류로 분류됐다.

김무성 대표의 행보 역시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김무성 대표는 27일 박근혜 대통령에 ‘쓴소리’를 해온 이재오 의원을 거론하며 “잘 하라고 몇 마디 한 것을 가지고 만날 불평만 한다며 소아병적 생각과 사고를 하기 때문에 지금 어려운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재오 의원의 계속돼온 발언에 친박계 인사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비박 성향 정치인들에 대한 ‘지원사격’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원내대표 출마 기자회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이런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는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당의 목소리를 강화하며 차기를 준비하는 수순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청와대의 지지(?)를 받은 이주영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동력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나서는 결과가 될지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변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저조한 국정수행지지도이다. <한국일보>는 이날 리얼미터가 지난 27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도했는데 긍정적인 답변을 한 비율은 29.7%로 심리적 마지노선인 30%도 붕괴돼버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보통 선거를 앞두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총선에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현역의원들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게 되고 당은 청와대를 들이받기 시작한다. 이번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그간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던 새누리당의 정당지지율에 있어서도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차이가 좁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러한 위기감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유승민 의원의 “이대로 가면 총선 망한다”는 말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대세가 될 경우 정권 중심부에서의 원심력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여당의 원내대표 선거가 이렇게 향후 정국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제1야당의 당 대표 선거전은 다소 힘이 빠지는 모양새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애초에 이번 당 대표 선거전에서의 고전적 계파 구도 자체가 별로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작된 탓이 크기도 하지만 과정에 있어서도 공천 방식 등 당내에서 민감한 문제 외의 쟁점이 크게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도 있다.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문재인 의원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문재인 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실시된 몇몇 여론조사에서 다른 후보보다 일단 우위에 서있다는 점이 수차례 확인됐다. 이 여세를 몰아 문재인 의원은 당내 문제에서 과도하게 쟁점을 형성하기 보다는 당 외를 향한 아젠다 제시를 병행하는 방식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7일 문재인 의원이 ‘긴급 경제회견’을 자처한 것은 이러한 행보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민에 대한 사과,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증세 증단, 청와대 및 내각 경제팀 전면 교체 등을 요구했다. 또, 문재인 의원은 자신이 당대표가 될 경우 ‘국가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국민이 원하는 조세개혁안을 만들겠다고도 주장했다. 문재인 의원의 이러한 입장은 다목적 포석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를 통해 첫 번째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권주자로서의 존재감을 상기하고, 두 번째로 자신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일반 국민의 관심을 제고하며, 세 번째로 상대인 박지원 의원 등이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는 당권-대권 분리론 등을 비켜가는 효과 등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27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서울특별시당 당대표·최고위원 및 서울시당위원장 후보 합동간담회에서 문재인 당대표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여전히 ‘타이밍’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워 위와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시기가 좀 더 빨랐어야 했다. 연말정산 논란이 한참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기나 박근혜 대통령이 이완구 총리 후보자를 내정한 직후 등의 시기였다면 더 큰 효과를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 애매한 타이밍에 기자회견이 진행됐기 때문에 일각에서 ‘호남총리론’에 대한 진화의 성격으로 진행된 것 아니냐는 둥의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정무 감각’의 부족은 지난 대선 시기부터 지적돼오던 것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는 문재인 의원 스스로 주변 인사들의 정리를 포함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이에 대한 불안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문재인 의원으로서는 이번에 당대표로 당선돼 늪에 빠진 제1야당에서의 개혁을 이끌고 성공한 당대표로서 이름을 남겨 이를 동력으로 다시 대권에 도전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안고 경선에 나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문재인 의원으로서는 성공적인 당대표가 되는 것 자체가 2012년에 비해 ‘업데이트’된 대권주자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된다는 걸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속된 말로 좀 ‘기스’가 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하게 치고 나갈 필요가 있다. 국민의 이목을 모으고 여론의 바람을 일으켜야 안정적으로 당 대표가 될 수 있고 또 이후에 추진해야 할 개혁에 대한 동력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그것 역시 위기의 신호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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