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이하 시리자)의 집권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부터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소위 남유럽 재정위기의 방아쇠가 된 그리스 문제가 결국 급진좌파의 집권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니 사실은 어디로 튈지 명백한 문제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로써 남유럽국가들에 대한 구제금융을 고삐로 해 긴축을 강요해온 독일 등 유로존 중심국가들의 입장이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커졌다.

유로존 국가들과 소위 ‘트로이카’가 그리스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1997년 외환위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에 우리나라도 IMF가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를 받아들이며 국민적 고통을 겪어여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27일 일간지들 역시 시리자의 집권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 한겨레 27일자 1면.

<한겨레>는 27일 1면에 <신자유주의 거부한 ‘그리스의 선택’>이란 제목의 기사로 시리자의 집권 소식을 다루고 있다. <한겨레>는 시리자의 그리스 총선 압승에 대해 “유럽의 기존 정치 질서와 신자유주의 경제에 균열을 일으킬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시리자가 집권하게 된 것은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적 처방을 거부하고 정치적으로는 기존 정치세력과 질서를 거부하는 세력이 유럽 정치의 한 축으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면서 “시리자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반대하는 이들의 정치세력화를 상징한다”고 해설했다.

<한겨레>는 4면 이어지는 기사에서 시리자가 소속 의원 전원 월급의 20%를 모아 새 경제모델의 단초를 만드는 시민운동 등에 기부하며 대안적 경제모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보여왔고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확산을 막을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겨레>는 같은 면에서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과 긴축을 둘러싸고 유로존의 주축인 독일과 그리스의 한판대결이 시작됐다고도 보도하고 있는데 이 협상의 과정과 결과가 다른 유럽의 ‘반긴축 정당’들의 성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스페인의 새로운 좌파정당인 포데모스 대표 파블로 이글레시아는 선거 마지막 날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당수의 마무리 연설에 참가해 연대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 한겨레 27일자 사설.

<한겨레>는 이날 국제면에서도 그리스의 경제상황과 시리자 등 급진좌파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지지 논리 등을 소개했고 사설에서는 “많은 유권자가 기득권층 중심으로 완고하게 돌아가는 그리스와 유럽연합의 기존 질서를 거부한 것”이라면서 “시리자의 승리는 고통스러운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새 길을 찾으려는 유권자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겨레>는 “이번 선거를 ‘신자유주의 종언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면서 “국제 경제 질서는 냉혹하지만 구성원의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 질서 자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이번 그리스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이는 우리나라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고도 지적했다.

▲ 조선일보 27일자 팔면봉.

그러나 같은 사안에 대한 보수언론의 반응을 보면 <한겨레>와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모습을 찾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 ‘팔면봉’ 코너에서 이번 그리스 총선 결과를 두고 “긴축 결사 반대 40세 급진좌파, 그리스 정권 쟁취. 2400억유로 지원받고 벼랑 끝에서 오리발”이라는 평을 내놨다. 보수언론이 시리자와 그들의 부채탕감 요구를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가 명백히 드러나는 한 줄이다. 그 외의 면에서 <조선일보>는 그리스의 상황을 비교적 중립적으로 보도하먼서도 시리자의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아들의 이름을 ‘체 게바라’를 따서 지었다느니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남의 아내를 빼앗는 것만 제외하고는 뭐든 할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느니 하면서 은근히 깎아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래도 적당히 ‘잽’을 날리는 수준의 <조선일보>는 양반이다. <중앙일보>는 이날 <이대로 가면 그리스처럼 국가파산 처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중앙일보>는 이 사설에서 “시리자의 승리는 2012년 집권한 신민당의 개혁 드라이브에 국민이 피로감을 느낀 게 큰 요인”이라고 짚었다. 지표상으로는 신민당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 해외 투자 유치, 관광산업 육성 등의 개혁정책이 가시적 성과를 보인 것이 분명하지만 국민의 체감경기는 지난해 실업률이 26.6%로 치솟고 청년 실업률은 60%에 가까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국내총생산(GDP)의 174%에 달하는 공공부채를 줄이기 위한 긴축재정과 세수 확충으로 허리띠를 계속 조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고통이 재협상과 부채 탕감을 외치는 시리자의 집권을 낳았다”면서 “개혁정책이 중단·후퇴하게 되면 기업들의 투자의지를 약화시켜 경제회복세를 둔화시키거나 하락세로 반전시킬 수 있다. 그리스 국민의 고통이 더욱 크고 오래갈 수밖에 없다는 건 설명이 필요 없다”고 짚었다. 시리자의 집권으로 그리스의 위기가 심화될 거라는 전망이다. <중앙일보>는 “구조개혁 없는 미봉적 경제 운용,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 등 포퓰리즘적 정책이 초래한 치명적 결과에서 빠져 나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 주는 사례”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 중앙일보 27일자 사설.

<동아일보> 역시 이날 국제면에서 그리스 총선 결과를 전하면서 <“긴축에 지친 그리스 국민, 도박같은 선택”>이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다. 시리자 집권에 대한 부정적 전제를 기본적인 관점으로 갖고 있는 선택이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사설을 통해 그리스가 과도한 복지지출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이 파탄났지만 정부가 구조개혁에 나서기 보다는 부정부패, 탈세, 포퓰리즘 정책을 서슴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개혁을 포기한 채 증세와 복지 축소로 국민에게 더 큰 고통을 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아일보>는 “빈곤율과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자 그리스 국민은 긴축 철회, 빈곤층을 위한 패키지 지출을 약속한 급진좌파 포퓰리즘 정당인 시리자에 몰리고 말았다”면서 “유럽의 중도적 정치질서를 뒤흔들어 포퓰리즘 정당의 발호를 예고한 민주주의의 패배가 아닐 수 없다”고까지 지적했다.

<동아일보>등 보수언론은 최근 연말정산 대란 등을 무상복지정책에 대한 공격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시리자의 집권을 보면서도 황당하게 반복됐다. <동아일보>는 “그리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도 최근 급속한 복지 확대로 재정 적자가 불어나고 있다”면서 “정부와 정치권은 인기 영합적인 정치 논리로 구조개혁을 미루다 경제를 파탄 내고 국제사회의 골칫덩어리가 된 그리스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27일 사설.

<동아일보>의 이런 진단은 그리스 위기가 과도한 복지와 포퓰리즘으로 비롯됐다는 보수언론의 전형적 관점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리스의 재정위기에 대해서는 유로존의 화폐는 통합됐지만 시장은 통합되지 않은데 따른 경상수지 불균형 및 화폐통합으로 인한 환율 통제권 상실, 그리스의 세습정치가문들의 독특한 정치문화 및 세습정치가문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무분별한 공직 확대와 이로 인해 재생산된 관료사회의 부정부패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 역시 주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런 지점들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가 시리자의 집권을 보며 교훈을 얻어야 할 부분은 무상복지 정책이나 포퓰리즘의 폐해가 아니라 ‘관피아 문제’와 주요 직책에 대한 정실주의, 폐쇄적 국정운영방식 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측면은 외면한 채 복지 축소와 서민들에 고통을 전가하는 ‘개혁’에 대한 지지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에서도 시리자의 집권과 같은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수언론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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