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역거부자다. 2009년에 용산참사와 쌍용차 파업진압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손’ 운운해도 너무나 여실히 보이는 몽둥이는 어떻게든 문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내게 날아온 입영통지서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이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병역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잊고 살다가도 새삼스레 병역거부자라는 정체성을 인식할 때가 있다. 공무원 신분이 보장되는 채용은 애초에 들여다보지도 않지만, 스스로를 병역거부자로서 인식하는 계기는 그보다 더 일상적이다.

한번은 운전면허 교습을 받던 중에 심심했던 강사 아저씨가 뜬금없이 “군대는 다녀왔어요?”라고 물었다. 나도 모르게 “병특업체에서 일했어요”라고 답했다. 짧은 교습시간 동안에 내 병역거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군대 다녀왔다고 하면 그 뒤에 하위질문들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의 애인은 친구들과 만나 새로 만난 남자친구가 병역거부자라고 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한 친구는 병역거부자는 싫다며 결혼해도 가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나는 언니 결혼식에 꼭 갈래”라고 답했는데, 그 뒤에 덧붙인 말이 가관이었다. “평생 가난하게 살 건데 내가 가서 축의금이라도 던져주고 와야지.” 이렇듯 병역거부자로 살면서 불편함도 느낀다. 하지만 병역을 거부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다.

병역을 거부하자 비로소 자신의 군대 경험을 들려준 친구

내 고등학교 친구들은 여느 또래들처럼 스무 살을 갓 넘기자 바로 입대했다. 대부분 지방 전문대를 다녔기에 연기할 길이 딱히 없기도 했다. 모두 전역을 한 뒤에 술을 마실 때면 다들 자기가 얼마나 군대에서 잘 적응해서 재밌게 살았는지 이야기했다. 군사주의니 하면서 병역을 괜히 문제로 생각하는 건 나 같은 먹물들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다녀온 뒤에도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이야기꺼리가 떨어지면 군대 에피소드를 꺼내서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따로 술을 마시다가 자기가 사실은 “관심병사 같은 거”였다며 자기 군 생활 경험을 털어놓아주었다. 내가 병역거부를 했으니까 말을 할 수 있다며….

사정은 이랬다. 그 친구가 처음에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저 위에 고참 둘이 엄청 드센 사람들이었다. 나름 자존심이 센 친구라 그랬는지 그 고참들이 괜히 시비를 걸었다. 그래도 그 둘만 전역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꾸역꾸역 지냈는데, 위에서 그러니 새로 들어오는 후임들도 본인을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축구도 잘하고 놀기도 잘 놀아서 고등학교 때도 나름 잘나간다는 소리도 들었던 친구였다. 자기는 왕따라는 걸 군대 가서 당할 줄은 몰랐다며 창피해했다. 전역한 예비역 친구들 사이에서는 말할 수 없었지만, 병역거부자이기에 내겐 말할 수 있었다.

친구는 그렇다고 군대 경험이 아주 나쁘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근데, 내가 어디 가서 서울대 연고대 애들한테 지시를 해보겠냐. 걔네들은 어디 가서 늘 그런 일을 하겠지만….” 그렇게 고약한 경험을 했어도 ‘리더십’을 배울 기회는 얻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친구에게 군대는 사회에서 겪지 못했던 폭력과 함께 사회에서는 주지 않을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는 장소였다.

내가 병역을 거부했기에 역설적으로 내 친구는 무용담이 아닌 군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다. 친구 사이에도 왠지 꺼내기 어려운 트라우마 같은 게 군대 경험에는 있다. 대학에서 만난 한 후배는 입대한 뒤 내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자신이 후임들을 때리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걸린다고 호소했다. 위에서는 자신을 쪼아대고, 기간 내에 끝내야 할 과업은 정해져있으니 때릴 수밖에 없지만 양심에 너무나 찔린다고 말했다. 다만 나는 적절한 답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건네는 조언은 너무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병역을 거부하자 비로소 전역자들 사이에서는 이야기할 수 없었던 병영생활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군대는 학벌과 관계없이 리더십을 훈련시켜줄 공간이기도 했다는 말도 들었다. 본인이 가해자였든 피해자였든 폭력의 트라우마를 남기는 곳, 그러나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평등함을 느끼게 만들어주기도 했던 그곳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구체적인 대담, 저항하는 평화

국방부의 입장에 서있는 매체들은 군대가 원래 좋은 곳이라고 선을 긋는다. 다만, 병영에서 벌어지는 폭력 문제들은 사회에서 유입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례로 육군 장성 출신인 김일생 전 병무청장은 <군사저널> 기고문에서 GOP 총기사건, 괴롭힘과 구타·폭행 등 병영 내 폭력들을 바람에 날아오는 잡초 씨앗으로 비유했다. 학교와 사회의 악습이 청정지역인 군대로 매일 매일 유입된다는 것이다. 군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국방 당국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간 군사주의를 비판하는 책들이 출간되면서 이러한 국방 당국의 단순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군대다>나 <페미니즘의 도전> 등의 군사주의 비판은 폭력이 군대로부터 사회로 유입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폭력의 흐름은 국방 당국의 인식과 정반대의 방향이다.

그러나 ‘군사주의’ 역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한다. 청년층 다수가 불안정 노동에 내몰리고, 세월호 사건 이후에 이 땅의 주민들이 국가의 부재를 느끼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군대는 과연 무엇으로 경험되고 있을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온 사회를 불안하게 휩쓸고 있는 지금, 병역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저항하는 평화>는 이처럼 첨예해져가는 우리시대의 군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이 책은 군사주의가 구체적인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있으며, 특히 군대를 매개로 하여 사회에 어떻게 뿌리내리는지를 설명한다. 예컨대 문화학자 엄기호는 군대가 의리의 공간으로 미화되는 까닭을 사회가 망해서 심지어 사회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찾는다. 군대가 좋아져서가 아니다. 사회가 전쟁터나 다름없어서 누구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장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사주의를 평화의 원칙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엄기호는 이와 같은 가짜 평화가 안전을 전혀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자각을 통해 전혀 다른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약자들을 보듬으며 진정 우리 삶을 지킬 수 있는 평화 말이다.

이처럼 <저항하는 평화>는 군사주의라는 추상적인 말로 비판을 눙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청년’ ‘종교’ ‘젠더’ 등 여덟 개의 키워드를 통해 사회 곳곳에서 작동하는 군사주의의 양태를 살펴본다. 각각의 주제에 따라 각계의 지식인들이 평화운동가들과 대담을 벌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병역거부운동을 통해 얻은 경험에서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활동가들이 각계의 전문가들을 찾아가 대담을 진행한 것이다. 평화운동가들이 들려준 경험이 구체적인 만큼 대담을 통해 오간 대응 방법 역시 구체적이다.

이러한 구성은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남겼다. 첫째, 여태까지의 평화운동이 대화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군사전문가가 대담자로 등장했다. 평화연구자 임재성이 대담자로 선택한 <디펜스21+>의 김종대 편집장의 경우가 그렇다. 임재성은 대담 후기를 통해 지금까지의 평화운동이 원칙만 있고 구체적인 개입방법을 고민하지 못했다며 반성했다. 실제로 김종대가 한국의 군대 개혁 방법으로 제안한 ‘안보 전략과 평화 전략의 균형’은 그간의 평화운동이 벼려온 평화주의 언어와 다소 긴장을 만드는 해법이다.

둘째, 대담이 구체적인 경험에 기초해서 진행되다보니 그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대담자들 사이에 몇몇 논쟁점들이 나타났다. 동성애자로서 병역을 거부했던 샤샤는 ‘젠더’에 대한 대담에서 병역거부자들이 자신들의 신념과 양심을 언어화해서 세상을 설득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여성학자 정희진은 언어로 설명하고 상대에게 질문하는 일이 인간 존재의 모든 것이라며 반론한다. 그냥 싫어서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반대자들에게 “왜 좋아야 하지? 그걸 왜 해야 하는 거야?”라고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저항을 통해 평화의 길로

<저항하는 평화>는 구체적인 경험들을 통해 진행된 대담이라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개별 대담 속에서 뿐만 아니라 각각의 대담들끼리도 적잖은 논쟁점들을 남기고 있다. 각계의 지식인들이 모두 더 폭넓은 ‘평화상태’에 관해 고민해야만 한다고 조언하고 있지만, 무엇이 평화이며 평화 상태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를 두고 내부 논점들이 남는다. 이 책의 대담자들은 유야무야 좋은 소리로 넘어가지 않고 서로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이러한 논점들은 병역거부운동을 포함한 평화운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개입할 여지를 보여준다.

이 책이 그 내부에서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듯이, 대담자로 참가한 평화운동가들은 자신들의 평화가 단순히 조용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들에 따르면 오히려 갈등이 있는 곳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약함을 보호하는 저항이야말로 평화의 길이다. 반면에 어두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지닌 존엄과 고상함을 군복 속에 몰아넣고 있기 때문에 군대에서는 트라우마가 항상 발생한다. 군인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성의 잔여가 증상으로 느닷없이 되돌아오는 것이다.

상처 입은 개인들이 배출된 사회 또한 건강할 리가 없다. 인간 존재가 당연히 지녔을 약함을 긍정하고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할 때 비로소 우리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이처럼 무용담이 아니라 진실한 군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 평화로운 사회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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