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것에 대해 영화인 단체들이 성명을 내고 “사퇴 종용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영화인은 물론 지역언론 또한 이 사건을 정치적 압박으로 해석하며 사퇴 종용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연합뉴스

앞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정부의 세월호 실종자 구조작업을 비판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부산시의 ‘상영 중단’ 요구에도 상영했고, 이후 감사원과 부산시는 영화제 사무국을 감사했다. 부산시는 24일 이용관 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직접 언급하며 사퇴 압박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이번 사퇴 종용은 서병수 부산시장의 의사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이를 ‘표현의 자유 길들이기’로 보면서 사퇴 종용을 철회하지 않으면 영화제를 보이콧하겠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26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전국영화산업노조 한국영화학회 등 영화인모임은 성명을 내고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이 위원장이 사퇴를 종용 당한 것은 부산시의 보복 조치인 것이 분명해보이며 이는 단순히 이용관 위원장 한 개인의 거취 문제가 아니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해치고 영화제를 검열하려는 숨은 의도는 결국 영화제의 독립성을 해치고 19년을 이어온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체성과 존립마저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화인모임은 <다이빙벨> 상영 중지 압박 파문에 대해 “부산시는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작품’이라는 이유를 들었으나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벨>을 예정대로 상영하여 영화제의 독립성을 지켜냈다. 이후 부산시는 12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의 감사를 단행하였다. 우리는 이번 이용관 위원장 사퇴 권고가 <다이빙벨>을 상영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영화인모임은 이어 “부산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이긴 하나 특정 영화를 틀거나 틀지 말라고 할 권리는 없다”면서 “정상적인 영화제라면 정치인이 작품 선정에 관여할 수 없다. 프로그래머들의 작품 선정 권한을 보장하는 것은 영화제가 존립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9년 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급성장한 것은 이런 원칙이 지켜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화인들은 “우리는 이런 상황을 초래한 부산시가 지금이라도 사퇴 종용을 철회하길 바란다”며 “만약 지금과 같은 사태가 계속된다면 부산시는 영화인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이 소식에 배우와 감독들도 영화제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역언론마저 사퇴 종용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일보는 26일자 사설 <부산시, BIFF 위원장 사퇴 종용 웬 말인가>에서 “시의 조치는 영화제에 대한 정치적 외압으로 해석될 소지가 매우 높다”며 “지난 2010년 이명박 정권 시절에 'BIFF가 좌파 영화제'라는 얼토당토않은 정치적 공세를 받을 때 당시 허남식 전 시장이 영화제 예산을 늘리며 적극 지원에 나서 바람막이 역할을 했던 것과는 참으로 대조되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부산일보는 “항용 ‘권력의 갑질’로 비칠까 몹시 우려된다”고 썼다.

부산일보는 이어 “BIFF는 시의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다. 문화도시와 창조도시의 자부심을 안겨 준 부산 시민들의 문화적 자산이며, 한국 영화가 국제 영화계에서 주목 받는 결정적 발판 역할을 해 온 국가적 자산”이라며 “물론 BIFF가 조직을 방만하고 오만하게 운영했다면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의 정치적 논란 뒤에 20년간 BIFF 성장의 핵심 역할을 해 온 이 위원장에게 하루아침에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외압에 맞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지켜 온 BIFF의 정신’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 파문은 해외 영화제로도 퍼지고 있다. 부산일보는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영화제는 BIFF 집행위원장 사퇴 요구 파문 사태를 파악한 뒤 부산시를 규탄하는 성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BIFF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 칸영화제나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등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다음은 영화인 모임이 26일 발표한 긴급성명 전문.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을 즉각 철회하라>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권고했다. 초유의 사태다. 지난 1월 23일 정경진 부산시 정무부시장과 김광희 부산시 문화관광국장은 이용관 위원장을 만나 ‘서병수 부산시장의 뜻’이라며 사퇴를 권고했다. 이어 KNN과의 통화에서 직접적 사퇴 언급이 없었다고 부인하던 부산시는 논란이 커지자 1월 24일 ‘부산국제영화제의 운영 개선과 개혁 추진 필요성에 대한 부산시의 입장’이라는 보도 자료를 통하여 “이용관 현집행위원장의 거취문제를 비롯한 인적 쇄신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 권고를 인정한 것이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당시 수석프로그래머였으며, 부집행위원장, 공동집행위원장을 거쳤고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의 뒤를 이어 2010년 집행위원장이 된 이용관위원장은 2013년 2월 총회에서 3년 임기의 집행위원장에 연임돼 임기가 내년 2월까지이다.

지난해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은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 취소를 요청한 바 있다. 부산시는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작품’이라는 이유를 들었으나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벨>을 예정대로 상영하여 영화제의 독립성을 지켜냈다. 이후 부산시는 12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의 감사를 단행하였다. 우리는 이번 이용관 위원장 사퇴 권고가 <다이빙벨>을 상영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부산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이긴 하나 특정 영화를 틀거나 틀지 말라고 할 권리는 없다. 정상적인 영화제라면 정치인이 작품 선정에 관여할 수 없다. 프로그래머들의 작품 선정 권한을 보장하는 것은 영화제가 존립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9년 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급성장한 것은 이런 원칙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이 위원장이 사퇴를 종용 당한 것은 부산시의 보복 조치인 것이 분명해보이며 이는 단순히 이용관 위원장 한 개인의 거취 문제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해치고 영화제를 검열하려는 숨은 의도는 결국 영화제의 독립성을 해치고 19년을 이어온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체성과 존립마저 흔들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초래한 부산시가 지금이라도 사퇴 종용을 철회하길 바란다. 만약 지금과 같은 사태가 계속된다면 부산시는 영화인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부산시민과 영화인과 국민이 함께 만들어온 부산국제영화제이다. 부산시장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한다.

우리는 부산시가 이용관 위원장에 대한 사퇴 종용을 즉각 철회하기를 거듭 촉구한다. 철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영화인은 연대하여 싸워나갈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상기구를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갈 것이다.

2015. 0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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