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탄생할 기세다.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를 정홍원 국무총리의 후임으로 내정했다. 그간 정치권에서 ‘차기 총리 1순위’로 불려왔던 이완구 원내대표였지만 늘 그렇듯 인사가 또 ‘깜짝발표’ 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 놀라움을 줬다. SNS 등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완구 원내대표의 국무총리 내정으로 박근혜 정권이 거둘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우선 짚어볼 수 있는 것은 현직 원내대표를 ‘징발’해 국무총리에 내정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의도’는 매우 노골적이다. 여당 원내대표를 국무총리에 내정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국회와의 원활한 소통이다. 그간 청와대는 국회와 소통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청와대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인사들은 있었지만 여야와 청와대의 입장을 조율해 정치적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점에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원내대표로서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와 소통과 협력을 이룰 수 있는 카드로 여겨진다. 이완구 원내대표를 통해 청와대와 국회의 소통이 가능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면’도 존재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도는 그야말로 ‘급전직하’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23일 발표한 정기여론조사에 따르면 1월 셋째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보다 5%포인트 하락한 30%를 기록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긍정평가의 2배인 60%를 기록했는데, 이는 박근혜 정권 들어 기록한 최악의 수치로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과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항명파동, 연말정산 대란 등 하나같이 청와대로서 악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사고가 속출한데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도 그다지 파격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수준에서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40%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동반하락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두 가지 측면을 시사한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최근까지의 악재들을 어떤 ‘정권’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개인 자질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특히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으로 측근인 정윤회 씨와 친인척인 박지만 EG회장이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이런 시각이 강화됐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청와대가 어찌됐건 새누리당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어도 새누리당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사람들은 청와대와 여당의 권력관계를 인식하고 청와대의 책임을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새누리당으로서는 당장 4월에 치러질 재보선과 2016년 총선이 급한 상황에서 대책 없이 있다 위기를 맞이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려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 정도로 하락한 상황이라면 정권과 일정한 정도의 ‘선긋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청와대 입장에서 여당에 대한 통제가 쉽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내기도 한다. 청와대가 여당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집권 3년차에 국정운영동력이 상실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조기 레임덕’으로 직결된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이런 상황을 뒤집고 여당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기 위한 카드로서 선택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의 여당 통제에 대해서는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이 또 하나 있다. 이완구 원내대표에 대한 ‘징발’로 새누리당은 조기에 원내대표 경선을 실시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대해서는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유승민 의원의 양강구도가 점쳐진다. 이주영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의 수습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행보를 보인바 있다. 이것이 2016년 총선에 이르는 과정까지 대중적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데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름대로의 신뢰를 표현한 바 있어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가 이주영 전 장관의 당선을 원할 것이라는 내용의 분석이 회자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의 경우 관계가 소원해졌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어쨌든 친박으로 분류된 바 있어 청와대로서도 크게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얼마 전 불거진 ‘문건 유출 배후’ 논란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게 문제다. 이 논란은 청와대 행정관이 술자리에서 “문건 유출 사건의 배후는 김무성과 유승민”이라고 발언했다는 것에서 시작됐는데 결국 이 행정관은 사표를 내야 했다. 이 사건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행정관이 청와대 내에서 ‘십상시’로 분류될 만큼 발언력이 컸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 행정관의 발언에 청와대나 친박계 인사들의 어떤 ‘의중’이 실려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할 수도 있다. 즉,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에 대한 일정한 ‘비토’가 확인된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나름 일리가 있는 얘기인 셈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보면 청와대로서는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주영 원내대표의 조합으로 비주류 출신에다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고 국정운영동력을 소실시키지 않는 형태로 최대한 당청관계를 끌고 가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당분간 유임됐다는 사실도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조율한 뒤에 거취를 정리하도록 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지가 강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을 수 있는 지점이다.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15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5년 정부업무보고:경제혁신 3개년 계획Ⅱ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김기춘 비서실장의 유임은 청와대 민정라인과 검찰 통제에 대한 측면에서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퇴에 대해 일부 언론 등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문건 유출 사태에 대한 대응에서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과 주로 소통해 결과적으로 김영한 수석이 업무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즉, 그만큼 김기춘 비서실장의 신임이 각별한 인사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민정수석으로 승진발탁됐다. 우병우 신임 수석이 검찰청 고검장급 인사보다도 기수가 낮은데다 대학 3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해 동기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인사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다가 우병우 민정수석은 검사 시절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이력까지 갖고 있다. 이로써 김기춘 비서실장, 우병우 민정수석, 김진태 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검찰 통제 라인이 더 강화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민정특보로 임명된 것에도 청와대의 ‘검찰 다잡기’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우병우 신임 수석이 충분히 검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선배’인 이명재 전 총장을 민정특보에 앉힌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이명재 전 총장은 김대중 정권 시절 대통령의 친인척을 수사해 구속시킨 경력을 갖고 있어 대통령의 측근 및 친인척 문제에 대한 일종의 ‘메시지’로도 작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결국 이번 신임 국무총리 지명과 청와대 조직개편은 여당과 검찰 등의 권력기관에 대한 정권의 통제 강화에 핵심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대통령의 지지율이 붕괴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공안정국의 강화와 대통령의 또 다른 ‘불통’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대통령이 해야 할 ‘소통’은 10분간의 티타임이나 여당과 권력기관에 대한 통제 강화가 아니라 실제로 대통령이 나서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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