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사 간부의 비리가 드러날까봐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일까? ‘쌀 직불금 부당 수령 언론인’을 다루는 언론사의 얘기다.

지난 14일 감사원이 ‘2006년 쌀 소득보전 직접지불제 운용실태’를 발표함에 따라, 2006년도에 부당하게 직불금을 수령한 직업군에 회사원(9만9981명), 공무원(3만9971명), 금융계(8442명), 공기업 직원(6213명) 외에 언론계에서도 463명의 부당 직불금 수령자가 있음이 드러났다.

부당하게 직불금을 수령한 언론인들의 평균소득은 5696만원으로, 부당 수령 직업군 전체 평균소득(3880만원)의 2배에 해당한다. 게다가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을 모두 합친 인원이 2143명임을 감안할 때, 단일 직업군으로 463명의 언론인이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직불금을 중간에서 가로챘다는 것은 작금 언론계의 도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은 이를 호되게 비판하고, 부당 수령한 언론인 명단의 공개를 요구해야 함이 마땅하다.

▲ 경향신문 10월 16일 사설
하지만 대다수 신문들은 직불금 관련 보도에서 ‘부당 수령 언론인’과 관련된 부분을 완전히(!) 도려낸 채 공무원, 공기업 직원에 대해서만 칼날을 세우고 있다. 쌀 직불금 사태가 터진 지난 14일 이후 지면을 통해 직불금을 부당수령한 언론인을 비판하거나 이들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직접 요구한 언론사는 22일 현재까지 단 한 곳도 없다. 사실 ‘언론’의 ‘언’자도 찾기 힘들다. 촛불정국에서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진보성향의 <경향신문>과 <한겨레>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감사원 발표 다음날인 15일자 신문들의 보도만 살펴봐도 단적으로 확인된다. 모든 신문들이 감사원 발표를 전하며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의 모럴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해이)를 부각시킬 뿐, ‘언론인’ 부분은 전혀 전하지 않았다. 다음은 감사원 발표를 다룬 전국지들의 15일자 보도다.

경향신문 “서울·과천에 거주하는 공무원 520명과 공기업 임직원 177명이 2006년분 쌀 직불금을 수령한 것으로 확인됐다”(15일 1면톱 <서울·과천 520명 포함 모두 4만여명 받았다>)

국민일보 “서울·과천에 거주하는 2006년 직불금 수령자 4662명의 직업을 분석한 결과,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 외에 금융계 121명, 변호사 등 전문직 73명, 회사원이 1780명이 포함됐다”(15일 1면톱 <서울·과천 거주 공무원 520명 쌀직불금 받았다>)

동아일보 “17만명은 회사원(9만9981명), 공무원(3만9971명), 금융계(8442명), 공기업(6213명) 등 본인 또는 가족이 농업 이외의 직업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15일 1면 톱 <공무원 1만-가족 3만명 쌀 직불금 탔다>)

서울신문 “비료 구입이나 농협수매 실적이 없어 실경작자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28만명이고 이중 공무원, 기업체 임원, 의사, 변호사 등이 17만명이라고 밝혔다”(15일 1면 <공무원 4만명이 쌀 직불금 타내>)

세계일보 “2006년 쌀 직불금 수령자 중 직접 농사짓지 않는 ‘비경작자’에 공무원 3만9971명, 공기업 직원 6213명이 포함됐다”(15일 1면 <공직자 쌀직불금 부당수령 조사>)

조선일보 “감사원이 14일 2006년 ‘쌀소득 보전 직불금’을 받은 서울·과천 거주자 4662명의 직업을 조사한 결과, 공무원 520명, 공기업 임직원 177명이 포함됐다”(15일 1면 <농지 편법소유 공직자 ‘쌀 직불금 수령’ 조사>)

한겨레 “실경작자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가운데 직업이 확인된 사람이 전국적으로 17만3497명에 이르렀다. 이중 본인이나 가족이 공무원인 경우가 3만9971명(23%)으로, 회사원(9만9981명, 58%) 뒤를 이었다”(15일 1면 톱 <서울·과천 거주 공무원 520명 쌀 직불금 수령>)

한국일보 “본인이나 가족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쌀 직불금을 받은 공무원이 3만9971명, 공기업 직원이 6213명에 달했다”(15일 2면 머릿기사 <서울·과천 거주 공무원 520명 쌀 직불금 챙겨>)

보수신문인 중앙일보가 오히려 15일 1면 <공직자 4만여 명 농사도 안 짓고 쌀 직불금 타갔다>에서 “감사결과 2006년 농사를 짓지 않고 직불금을 받아 간 사람은 28만여명으로 이중 직업이 밝혀진 사람은 17만3497명으로 공무원 3만9971명, 공기업 직원 6213명, 금융계 8442명, 언론계 463명, 전문직 2143명, 회사원 9만9981명, 임대업 52명, 기타 1만6232명”이라며 ‘언론인’ 부분을 언급했다.

‘부당수령 언론인’에 대해 일제히 함구하는 것은 기사 외에 사설에서도 마찬가지다. 14일 이후 22일까지, 신문사설에서 부당 수령 언론인에 대한 비판이나 명단공개 요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야 정치공방과 공무원 비리에 대한 비판에 치중돼있을 뿐이다.

경향신문은 10월 16일 사설 <쌀 직불금 파문, 명단 공개가 우선이다>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관련 공무원들의 명단 공개가 우선”이라며 “관련 공무원들을 엄벌해 유사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부당직불금 수령자 중 고위 공직자만을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국민일보도 15일 사설 <쌀 직불금 부정은 예산 도둑질이다>에서 “국민 혈세로 월급을 받으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기는커녕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쌀 직불금까지 챙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2006년 무려 4만6600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고위 공무원이 100여명”이라며 “공직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이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니 기가 막힐 뿐이다. 탈법 공무원들은 엄벌하고, 그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 역시 17일 사설 <쌀 직불금 받은 고위 공직자 우선 정리하라>에서 “정부가 4만명에 가까운 공무원과 6200명에 이르는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위법 사실을 공평하게 밝힐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며 “지도층 인사들의 모럴 해저드를 감안, 공공기관 임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부터 조사해 불법 행위에 대한 징계와 함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일보는 15일 사설 <쌀 직불금 넘본 고위직, 엄중 문책해야>에서 쌀 소득 직불금 수령한 고위공직자에 대해 “공직 윤리를 저버려도 한참 저버렸다”며 “철저한 규명과 더불어 엄중 문책이 요구된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15일 사설 <부재지주의 눈먼 돈이 된 직불금>에서 “정부는 차제에 부당한 수령자가 나오지 않도록 직불금 지급방식을 바꾸기 바란다”며 “특히 공직자나 공공기관 임직원이 허위로 직불금을 타냈을 경우는 인사조치와 함께 형사처벌을 받도록 해 감히 국고에 손댈 엄두를 못내도록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22일 ‘빗나간 동업자 정신, 더이상 언론윤리를 짓밟지 말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각 언론사가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불법 수령 문제를 슬쩍 비켜가려한 보도 태도는 언론계에 만연한 ‘빗나간 동업자 정신’의 단면을 보여준다”며 “언론사들은 이번 쌀 직불금 불법 수령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한나라당에 편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취재, 보도해 모든 의혹과 비리를 밝혀내라”고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연루된 언론인은 언론노조 조합원 여부를 떠나 소속 언론사에 자진 신고하고 이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며 “이번 부정, 부패에 많은 언론인이 연루된 점에 대해 언론노조는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물론, 직불금 파문 후 언론이 기사와 사설을 통해 밝힌 공무원에 대한 도덕적 비판이나 엄벌 요구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와 동일한 선상에서 언론인의 모럴 해저드는 왜 애써 외면하는 것인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볼 때 언론인의 도덕적 해이가 가져오는 악영향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사회 비판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언론인이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외려 사회적 약자인 농민에게 가야 할 돈을 가로챘다면 ‘파렴치범’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언론은 파렴치범인 이들에 대한 명단 공개가 공무원 명단 공개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한겨레>가 23일치 6면에 <쌀 직불금 부정 수령자 명단에 언론인 명단 포함 ‘눈길’>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특히 언론인의 경우 의혹을 사고 있는 463명 가운데 상당수가 ‘불법 수령자’로 판명되면 해당 언론사는 물론 언론계 전체가 도덕적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고 보도했으나, 이 글을 쓴 이후였음을 밝힌다. 한겨레의 이 보도는 감사원 발표 9일 만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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