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1일 새롭게 선보인 SBS 수목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는 나름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흔히 이중인격하면 '지킬앤 하이드'처럼 선한 주인격과 그 주인격을 넘보는 악한 두 번째 인격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첫 선을 보인 <하이드 지킬, 나>는 정반대이다. 주인격인 원더랜드 상무 구서진(현빈 분)은 전형적인 싸가지 없는 재벌남이다. 수시로 자신의 심장 박동수를 체크하고, 요가를 하고 심호흡을 하며 혹시나 심장 박동수가 올라갈까 노심초사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난 5년간 나타나지 않았던 그의 또 다른 인격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혼자 살겠다고 장하나(한지민 분)를 밀치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지만, 순간 증폭하는 심장 박동 끝에 나타난 그의 또 다른 인격 '로빈'은 옥상으로 달려가 위기에 빠진 장하나의 목을 조르는 괴한을 물리치고 떨어지는 그녀를 구하고자 함께 물에 뛰어든다. 싸가지 없는 주인격과 전혀 다른 '의로운' 제 2의 인격이라니, 신선하다.
무엇보다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과 <킬미, 힐미>의 차도현, 두 사람 다 재벌가 인물이기에 캐릭터에서의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결국 둘 중 어떤 캐릭터가 더 화려한 변주를 선보이느냐가 관건이 되어버리고 마는 상황에서, 이미 앞선 작품이 화려하게 7 캐릭터의 변주를 예고하는 있는 가운데, 겨우 <지킬 앤 하이드>를 한번 비틀었다는 자부심만으로 <하이드 지킬, 나>로 관심을 끌어들이기엔 역부족처럼 보인다.
이 작품의 구서진이란 캐릭터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현빈은 이른바 '업계의 불문률'을 어기고, 동시간대 드라마 <킬미, 힐미>에 퇴짜 놓은 것을 기사로 흘려 문제가 된 바 있다. 그것이 현빈 측이건 제작사건 동시간대에 맞붙을 상대작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킬미, 힐미>는 캐스팅의 부담을 안고 시작해야만 했다. 현빈이 거부한 작품이란 꼬리표에, 7다중이란 부담으로 실제로 첫 방을 시작하기 얼마 전에야 겨우 지성이 주인공으로 결정되었고, 그런 우려 속에 <킬미, 힐미>는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심지어 <하이드 지킬, 나>는 <지킬앤 하이드>와 역전된 캐릭터로 승부수를 띠웠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겐 익숙한 현빈의 연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니 정확하게는 현빈이 아니라, 그가 입대 전 인기를 끌었던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역전된 캐릭터로 신선함을 선사하고 싶었지만, 정작 시청자들에게 그 역전된 캐릭터는 마치 '놀이공원'을 인수한 김주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제 아무리 연기자 본인이 다른 헤어스타일과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해도, 싸가지 없는 재벌 캐릭터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는 현빈이었기에 시청자들은 각인된 전작 캐릭터의 기억을 쉽게 놓을 수 없다.
남자 주인공만이 아니다. 생기발랄한 여주인공이란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킬미, 힐미>의 오리진 역의 황정음과 <하이드 지킬, 나> 한지민의 대결에서도 아쉽지만 <킬미, 힐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첫 회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섣부를지 모르겠으나, 고릴라를 조련하고 공중줄타기를 하며 고군분투하는 한지민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녀의 연기는 조금은 음을 높게 잡은 채 노래 부르는 듯 아직은 붕 떠있는 느낌이다. 반면 종종 발음이 분명하지 않고 떽떽거리는 소리는 귀가 아플 지경이지만, 이미 시트콤을 통해 단련된 황정음의 코믹 연기는 지성의 원맨쇼를 돋보이게 할 만큼 자연스럽다.
물론 아직 첫 회에 불과한 <하이드 지킬, 나>와 이미 물이 오르기 시작한 <킬미, 힐미>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얄궂게도 동시간대 시청자를 놓고 이중인격과 다중이가 경주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비교 대상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후속작이면서도 정신 장애를 가진 비슷한 재벌가 남자 주인공을 들고 돌아온 <하이드 지킬, 나>의 애꿎은 운명을 탓할 수밖에. 아니 진짜 안타까운 것은 수목요일 10시, 그저 이중인격 아니면 다중인격의 재벌남 자아 찾기 사이에서 골라잡을 수밖에 없는 시청자들의 선택폭 좁은 시청권이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