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21일 또 한 명의 PD를 해고했다. 사측이 여러 이유를 공공연히 나열하며 그 당사자를 거듭 ‘모욕’하고 있지만, 결국 행위 목적은 예전과 같다. 불편한 구성원 ‘찍어내기’다. 지금 MBC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MBC에 남아 있긴 하지만 영혼의 거세를 강요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했듯이 누군가를 말소시키는 경영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간단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결은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하다. 당사자와 MBC노조는 재심을 청구한단 입장이지만, 승리할 가능성은 결국 ‘불가능’으로 수렴된다. 내부에선 ‘광기의 칼춤’이란 표현이 등장할 정도지만, 말의 허장성세에 비해 누구에게도 뚜렷한 방법이 없는 듯 보인다. MBC 밖에 있는 사람들 역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 외엔 돌파구가 없다고 자조한다. 거듭된 패배에 따른 냉소와 계속된 퇴행으로 축적된 자조만이 가득하다.

이명박 정권 이후 MBC를 어찌할 것이냐를 두고, 말은 숱하게 많았다. MBC노조는 방송 역사에 남을 파업도 벌였다. 언론의 공공성을 지켜내야 한단 진영에선 각각의 수준들에서 최선을 다한 해법을 셀 수도 없이 타진해봤다. 김재철이 물러나면 좀 나아질 것이라고도 했고, 권력이 정점을 지나면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점점 더 나빠졌고, 지날수록 더 바닥을 쳤다. MBC노조는 투쟁 불능의 상태가 될 정도로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더 싸움을 권하기가 겸연쩍을 정도로 위축됐다.

▲ 김재철 사장이 물러나면 나아진다고 했다. 하지만 안광한 사장 역시 다르지 않다. 해고는 계속된다.

그래서 아예 애초부터 질문이 잘 못 됐던 것이 아닐까, 문제의식의 틀을 아예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우리가 믿던 그리고 합의했던 MBC라는 실체적 형상은 이젠 없다. 환상 속의 망상이 된지 오래인데,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너무 선명하게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 가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지금, MBC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개념을 따져보자. MBC는 ‘공영’방송이라 불리기도 하고 ‘지상파’방송이라 불리기도 한다. 두산백과사전은 공영 방송을 ‘방송의 목적을 영리에 두지 않고, 시청자로부터 징수하는 수신료 등을 주재원(主財源)으로 하여 오직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행하는 방송’으로 규정한다. 지상파 방송은 ‘지상에 있는 방송 송출로 전파를 송출하는 방송. 국내는 KBS, MBC, SBS(지역민방), EBS 등이 있으며 지상파 DMB도 지상파 방송에 속한다’고 규정되고 ‘지상파 방송은 전파의 범위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선택된 방송사업자만이 방송을 할 수 있어 다른 방송에 비해 방송 자원의 희소성을 가져, 국가로부터 방송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민영방송사라 할지라도 다른 방송 방식이 상업성을 띄는 것과는 반대로 공공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정의된다.

▲ MBC가 국민 품으로 돌아온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그 애매한 짝사랑을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MBC가 공영방송이고 지상파 방송이란 믿음은 철썩 같았다. 그래서 ‘접근성’ 측면에서 모든 사람들이 시청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고, ‘보편성’ 측면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와 기호에 소구하고 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의견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렇지 못할 때는 비판해왔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떤 형태의 방송 구조를 갖고 있건 대체적으로 공영방송은 ‘프로그램의 질, 다양성, 상업적 영향력에서의 독립성, 시민적 커뮤니케이션,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윤리 준수’ 등에서 사회적 존재 의의를 찾고, MBC 역시 그 대의에 복무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MBC가 그러한가. 한때 그러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 않은지 꽤 되었나. 그럼 다시 그러할 가능성이 있는가. 끝도 없는 질문이 되겠지만 한 마디로 자르자면, ‘모르겠지만 희박하다’일 것이다. 여전히 공적 주체가 소유하고 있단 이유로 공영방송이라 부르지만 MBC의 경영 행위는 전혀 공공적이지 않다. 공론장에 대한 하버마스의 개념을 빌자면, 공영방송은 ‘같은 시대에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어떤 문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장’으로서 의미를 획득해야 하는데 MBC는 전혀 그러하지도 않고, 그러해야 한단 자기 검열조차 완전히 상실한지 오래다.

보수 정치 세력이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MBC 민영화론’을 에둘러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건 지금보다 MBC를 더 나쁘게 만들 최악의 선택이다. 그럴 순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앞서, 말했든 문제의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 MBC의 방송 목적은 이미 철저하게 ‘영리’이다. 공영방송을 규정할 수 있는 대전제는 오래 전에 깨졌다. 수신료를 받지 않기에 광고에 의해 재원을 조달해오면서도 ‘공영 방송’의 칭호를 받던 거북한 상황이 MBC의 특수성이긴 했지만, MBC는 이 특수성에 강제되던 최소한의 ‘염치’를 내팽개친 오래이다.

다만, MBC는 전파라는 희소한 자원을 국가로부터 부여 받아 사업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공공성을 유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KBS가 수신료를 받기에 방송이 보편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환경에 신경이라도 쓰는 반면, MBC는 그러한 노력도 전혀 하지 않는다. 사실상 케이블에 실려 방송이 전달되고 있다. 공영방송의 전제와 지상파 방송의 규정이 모두 박살나 있는 형편이다. 어떻게 해야겠는가.

▲ MBC를 상징하던 인물들, MBC의 역량에 반드시 필요한 인력들이 '반대자'란 이유만으로 속절 없이 잘려나갔다.

직격해야 한다. 이미 공영방송을 허울로 만들고, 지상파의 의미에서 일탈한 그 방송사가 점유하고 있는 전파의 회수를 요청해야 한다. 너무, 대책 없는 앞뒤 고려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상파 방송은 국가로부터 방송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은 제한적 주체일 뿐, 그 전파의 독점적 소유자가 아니다. MBC는 정부로부터 승인을 갱신해 가야 하는 사업자일 뿐이고, 그 사업권은 시민적 권리를 대의하는 정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MBC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걸로 MBC는 살려지지 않고 살릴 수도 없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MBC의 해체를 조직해야 한다. MBC는 2013년 12월 4년의 재허가를 받았다. 다음 재허가는 2017년에 있다. 아직 3년여의 시간이 남았다. 그 동안 MBC가 얼마나 더 망가질지는 아무도 모르고 계측되지도 않는다. 다만, 대선을 경유해야 한단 점을 감안하면 참혹하리만큼 끔찍해질 수 있다. MBC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지상파 방송을 중심으로 한 방송 공공성 담론은 이미 허물어진지 오래다. 지상파 방송들은 필요한 경우에만 존재하지도 않는 공영성의 진지임을 자처하고, 대부분의 경우 유료방송에 준하는 대우를 해달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MBC 해체론을 전면화하며, 한국 사회 언론계를 지배해 온 공영방송 중심 담론 체계 역시 획기적인 전환을 꾀해야 한다.

MBC가 존속되어야 하는 최소 조건을 정비하고, 이를 각 정치 세력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압박하며 선거의 ‘공약’이 될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 이는 지난 선거에서 약속됐던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선’과 같은 광의의 맥락이 아닌 매우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요구들의 목록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의 막연한 개선 가능성을 말하며 현상 유지 후 수정/보완을 말하는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지금 MBC의 꼴은 단순히 정권 교체가 된다고 개선될 수준이 아니며, 행여 정권 교체가 되어 인적 쇄신이 발발한들 그건 끝없는 내부 동요와 보복의 반복으로 이어질 뿐임을 직시해야 한다.

처음 MBC에 낙하산 사장이 떨어졌을 때, 저 사장만 지나가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했다. MBC노조가 파업을 벌였을 때, 이 파업에서만 승리하면 조금 괜찮아 질 것이라고 했다. MBC를 상징하던 인물들이 속절없이 잘려 나갈 때, 세상이 바뀌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도 했다. 다 틀렸다. MBC는 복구되지 않는다. PD 한 명이 잘려 나가는게 문제가 아니다. 공공성을 권력과의 간격으로 이해하고 있는 누군가들이 MBC를 지배하는 한, MBC의 저널리즘은 끝내 ‘괴벨스의 주둥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방송이라는 사회적 회로를 장악하려는 기도들은 더 빈번하고 야수적으로 발발할 것이다. 공영방송이건, 지상파 방송이건 민주사회의 기본 질서와 상식에 반하면 그 무엇이더라도 작별을 고할 수 있단 의지와 권능을 상암동의 저 괴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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