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퇴설이 나왔다. <문화일보>는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기춘 비서실장이 이번 청와대 및 내각 개편을 자신의 마지막 임무로 여기고 마음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사의를 밝힌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지금까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일보>의 보도를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의 거취를 바로 판단할 수는 없다. 주위에서 어떤 말이 나오든 결국 김기춘 비서실장의 거취는 인사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소폭개각’ 문제와 엮여 예민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는 문제다.

21일 <경향신문>은 1면 보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 자리에서 “지금 공석으로 있는 해양수산부 장관 등 꼭 필요한 소폭 개각을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심기일전해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대폭 개각,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주요 인사 교체 등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여론과는 괴리감이 있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이날 6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과 소위 ‘문고리 권력 3인방’을 교체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마이웨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 경향신문 21일자 6면 기사.

하지만 다른 언론들의 경우 같은 사안을 보도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론하며 ‘원포인트 개각’이 아닌 ‘소폭 개각’을 언급한 것에 주목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동아일보>는 이날 4면에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시기가 언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시한부 유임’의사를 밝힌 이후, 김기춘 비서실장이 공무원연금 개혁과 같은 가시적 성과를 낸 뒤인 5월 물러날 것이라는 예측과 쇄신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이번에 물러날 수 있다는 말이 동시에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일보>의 보도는 결국 지지율 최저점을 찍은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기대가 커진다. 물론 <문화일보>의 기사 내용 자체는 별다른 내용이 아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 가능성은 주기적으로 언론을 통해 다뤄져왔고 특히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이후에는 시점이 문제일 뿐 교체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청와대가 <문화일보>의 보도대로 김기춘 비서실장을 교체하는 결단을 내린다면 그 과정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대체적으로는 결단 자체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상을 해본다면 가장 비판적인 입장은 “이제서야 여론을 반영한 청와대에 절망한다. 앞으로 잘 하기 바란다” 정도일 것이고 가장 호의적인 입장은 “이제 여론을 반영해 비서실장을 교체했으니 앞으로 정권이 잘 되도록 모두 응원해야 한다”정도가 될 것이다.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가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얼마나 반등시킬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보수언론이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겪고 있는 위기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50대와 대구경북에서의 지지율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떠받치는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렇게는 돼야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 동력을 최소화시키며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상기할 것은 김기춘 비서실장은 벌써 교체됐어야 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봐줘도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불분명한 발언을 했을 때 교체되어야 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발언해 혼란을 자초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 하에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온갖 사고가 다 난 이후에야 김기춘 비서실장을 교체하는 것인데, 이것을 두고 감지덕지하며 하해와 같은 성은에 감탄할 일이 아니다.

▲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의 21일자 1면.

21일자 주요 신문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티타임’을 하는 사진이 1면에 많이 실려있다. 지난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장관들과 대면해서 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계획한 자리라는 것이다. 이 티타임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최경환 부총리에게 연말정산 대란에 대한 기자회견은 잘 했느냐, 국민들에게 이해를 잘 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가 하면 담뱃값 인상 관련 부처 장관들에게 썰렁한 농담을 하면서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선 금단증상을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무회의 전 10여분 간 이어진 자리이니 대화의 알맹이를 추려 보자면 이게 전부일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청와대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 긍정적인 톤의 기사를 전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이 사건을 ‘소통이벤트’라고 규정했고 <조선일보>는 “이런 형식의 국무회의 전 티타임은 현 정부에서는 처음”이라며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를 강조했으며 <중앙일보> 역시 소통을 위해 대통령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도 대통령의 발상을 “소통 강화 행보”라 부르며 “취임 이후 처음 연출된 장면으로 청와대가 그만큼 ‘소통’에 신경을 쓴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그 티타임이라는 것은 역대 정부에서도 일상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헤럴드경제>는 이명박 정부에서 오랫동안 국무위원으로 활동한 인물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무회의 전 늘 티타임을 가졌으며 시간이 부족하면 회의를 마치고 집무실로 향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아닌 게 아니라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장관은 물론 수석비서관 등과도 티타임을 가질 수 있고 이는 전혀 특별한 사안이 아니다. 티타임을 위한 방이 따로 마련돼있을 정도다.

오히려 ‘소통이벤트’라는 그 티타임에서 오간 이야기가 썰렁한 농담과 일방적인 격려 정도밖에 없다고 하면 그것이 더 문제이다. 얼마 전 국회 운영위에 출석하지 않겠다며 사퇴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경우 7개월 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주장할 정도다. 수석비서관과도 이럴 정도니 국무위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맥락을 볼 때 박근혜 정권의 통치방식은 ‘철벽’이라는 한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론이 아무리 부정적인 이야기를 떠들어대도 버틸 때까지 버티다 조금만 하는 척 하면 그것을 언론이 다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래서야 마치 언론이 대통령을 칭찬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다. 언론은 본래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하는데, 하도 정권이 ‘철벽’과 같으니 그만 본분을 잃어버리고 만 것 같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본전도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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