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기자였던 소설가 김훈은 “언론의 부자유가 언론의 자유다”라고 말했다. “부자유는 가혹한 자기검열에서 온다”고도 썼다. 한국 사회 언론이 위기라면, 이 말을 한번쯤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언론은 자유로운가, 그 자유는 부자유의 자기검열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검열 없는 자유로움이 언론을 부자유스럽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여곡절 많던 ‘김영란 법’이 또 돌발 변수에 흔들리고 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언론의 자유’에 제동이 걸렸다. ‘부정청탁과 금품 등의 수수 금지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에 수정이 필요하단 의견이 부랴부랴 추가됐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의 입장이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일회 100만 원, 연간 300만 원을 넘어선 금품과 향응 접대를 받은 언론인을 처벌하게 되면,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단 견해를, ‘김영란 법’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어렵게 통과한 이후에 말하고 있다.

▲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김영란 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언론인을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미처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됐을 수도 있다. 김영란 법안 논의가 정부안이 제출된 2013년 8월 이후 매 회기 때마다 쟁점이었던 상황에서, 정말 그럴까 싶을 수 있지만 그럴 수도 있다. 애초 KBS와 EBS 등 공영방송 직원한테만 적용하기로 했었지만, 입법 과정에서 모든 언론사 직원들이 포함됐단 점을 감안해 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사람의 인식이란 것이 그냥 시시각각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발언의 뉘앙스가 너무 묘하고 뻔하다. 이 원내대표는 야당과 2월 임시국회 소집을 협의하며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있어 이 부분을 좀 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뭘 더 합의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예 노골적 삭제 압박이다. 여의도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는 매체들은 벌써부터 2월 임시국회 합의에 김영란 법에 언론인 적용 여부가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고 쓰고 있다. 김영란 법에 언론인을 포함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의 여부가 여차하면 국회 개원을 가르는 쟁점이 될 모양새다.

몇 가지 측면에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여야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이완구 원내대표가 ‘김영란 법’을 재료로 쓰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관련해 이 원내대표는 “제안에 야당이 소극적”이라며 “추후에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즉, 자신의 제안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면 다른 것을 연계해 얘기하잔 말이다. 두 번째는 정말, 이 원내대표가 ‘김영란 법’에 언론인이 포함되는 것이 심각한 언론의 자유 침해라는 인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다. 세번째는 아닌 줄 알면서 그냥 밀어 붙이고 있을 수도 있다.

이완구 원내대표가 협상의 카드로 ‘김영란 법’을 흔들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정치 전략적 차원에서 못할 짓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며 콘크리트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 연말정산 논란이 터지고 어린이집 학대 논란까지 마주하고 있는 여당이다. 설 명절을 불과 한 달여 남기고 ‘이보다 더 불리할 순 없다’고 해도 무방한 위기 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과 언죽번죽하게 국회 일정을 합의하는 게 ‘끌려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원내대표라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담스런 정세적 요구와 야당의 주장을 쳐내기 위해 다른 쟁점을 부러 부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런 정치적 계산과 술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실제 이완구 원내대표가 ‘김영란 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그의 삶의 태도 자체를 회의해 보거나 새누리당이 생각하는 언론의 자유가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보편타당 한 인식에 근거한 발화가 아닐 수 있단 점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에두를 것 없이 단박에 말해보자. 회당 100만원이 넘거나 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과 향응의 접대를 언론인이 받는 것과 언론의 자유가 대체 무슨 상관인가.

일회 100만원이 넘게 접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상상 가능한 방법으로 가정 해보자. 물론, 현금을 받거나 상품권을 받으면 일회 100만원은 아무런 강제력이 없다. 가장 고급스럽다는 신라호텔의 한 레스토랑 디너 정식이 세금과 봉사료 포함 30만원이다. 아마도 서울시내에서 가장 비싼 밥에 해당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상상가능한 밥을 먹어서는 일회에 100만원을 넘길 수 없다. 어떤 기자가 신라호텔의 디너 정식을 누군가로부터 1년에 10번 얻어 먹어야, 연간 300만원이 된다. 이 관계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관계를 의심하는 것이 취재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인가.

쓸데없는 얘기일 것이다. 일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이 위협받을 수 있는 일상적 접대가 무엇인지 웬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다. 양주를 먹는 곳에 가거나, 골프를 치는 것이다. 룸살롱에 가서 어울리거나, 분수에 안 맞게 볼치며 노는 것이다. 아니라고. 이완구 원내대표는 그렇다면 회당 100만원, 연간 300만원 이상의 기준이 위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취재 권리의 제한이 어떤 경우인지 말해주어야 한다. 지금도 그런 일이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할텐데, 과거 언론인들은 국회의원 방을 돌면서 ‘촌지’를 받았다. 1진이냐 아니냐, 중앙지냐 지방지냐에 따라 들어있는 액수가 달랐다고 한다. 물론, 받아든 봉투에 따라 기사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 원내대표가 그런 시절의 관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언론의 자유가 위협을 받는 것인지도 정확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차라리 솔직한 건 새누리당 일각에서 말해지고 있다는 이른바 ‘내수 몰락론’이다. ‘김영란 법’이 통과되면 음식점, 주점, 골프장이 다 망할 것이니 언론 핑계를 좀 대서라도 막아야 한단 얘기다. 이것도 완화된 버전의 발화이고, 결국 강남에 그 많은 룸살롱을 어떻게 하느냐는 하소연이다. 이미 존재하는 자영업자들인데, 그들을 다 망하게 할 것이냐는 겁박이다. 현실은 이처럼 비루하고 음습하며 허무할 정도로 맹랑하다.

한국 사회는 고급 위스키의 압도적 1위 소비국이다. 2010년 기준으로 1조 2천억 원 규모다. 2위는 중국이고 3위는 미국인데 인구수 대비를 해보면 아찔할 정도로 많이 마신다. 2011년 기준, 국세청에 신고된 전체 기업의 접대비가 8조 3,533억원 규모다. 신고되지 않은 접대비 규모를 감안하면 전체 접대비 시장을 20조원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누가 그렇게 위스키를 마시는지, 어디서 접대를 받는지 역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휘황찬란한 저 유흥의 간판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 부끄런 진실이다.

‘김영란 법’의 진짜 취지는 만연화된 음성적 거래의 고리를 끊어내자는 것에 있을 것이다. 이 법을 만들어 몰락할 내수라면 몰락하는 게 차라리 건강하고, 이 법 때문에 실력 발휘를 못할 언론이라면 역시 들어내는 편이 건전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평성이나 적용에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순 있다. 그래서 여야는 ‘김영란 법’의 이해충돌 방지 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쟁해왔고, 이제 정무위를 통과했으니 법사위에서 다시 또 논의하면 된다.

그러니 제발 언론인 핑계를 대며, 언론의 자유를 운운하며 이 법에 딴죽을 거는 일만은 말아 달라. 그걸 어느 언론들이 부탁한 것이라면 차라리 그 언론을 밝혀라. 그럴 수도 없다면, 기만 떨지 말고 매번 룸살롱가서 어떻게 제 돈 내고 술을 먹느냐고 하소연하라. 마흔이 넘어 권력질 좀 할 수 있게 됐을 때, 늦게 시작한 골프를 어떻게 제 돈 내고 치느냐고 위악적이더라도 제대로 말하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언론의 부자유가 바로 언론의 자유다’ 회당 100만원 이상, 연간 300만원 넘게 자유롭게 대접받을 수 있는 자유야말로 언론 부자유의 검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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