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다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을 점령한 PPL(간접광고) 때문이다. PPL이 가끔 슬쩍슬쩍 나오던 시대는 지났다. PPL은 이제 프로그램의 중심이다. <우결>의 광희·한선화 커플은 CONVERSE(컨버스)에서 ‘원하는 그림을 넣어 운동화를 직접 제작해주는 이벤트’에 참여했고, 한 회가 몽땅 해당 내용으로 채워졌다. 윤한·이소연 커플은 ‘프리메라’가 진행 중인 ‘자신만의 화장품 뚜껑 만들기’ 이벤트를 더 노골적일 수 없는 방법으로 참여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물론 방통심의위를 통해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프로그램이 제재를 받지 않는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제품의 특장점 등을 ‘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B씨는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B씨가 알고 있는 장소가 TV에 등장했는데 건물과 간판은 사뭇 달랐다. ‘OOO’이 TV에는 ‘△△△’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2013년 KBS <비밀>에서 ‘조태근 내과’라는 간판이 화제가 됐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버스정류장에 쓰여 있던 ‘조태근 내과’라는 광고판은 조민혁(지성 분)+곽태근(지성 본명)의 합성어로 제작진이 깨알 재미를 위해 CG로 가상으로 넣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CG가 재미가 아닌 광고로 채워질 수 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존 스포츠 경기에만 허용돼 있던 가상광고가 이제는 교양·예능, 스포츠보도까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드라마까지는 아니지만 언제 풀릴지 모를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건강증진을 이유로 담배가격을 기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렸다. C씨는 ‘100% 세수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믿진 않지만, 그래도 어쨋든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열심히 담배를 외면했다. 그런데 TV에 버젓이 ‘KT&G 협찬’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동안 KT&G는 TV광고가 금지된 품목인 담배를 제조·판매하기 때문에 협찬을 하더라도 ‘공익성 캠페인’이 아닌 이상 TV를 통한 ‘고지’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제는 KT&G에서 ‘담배’와 같이 생산되는 ‘홍삼’ 협찬할 경우 고지가 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다. 기존 공익성 캠페인 협찬할 때에만 가능하던 협찬고지 또한 이제는 ‘공익성 제고라는 목적의 유사성’만 가지면 고지가 가능하다. TV에 KT&G 문구는 더 많이 나온다.

TV에 ‘광고’가 그야말로 범람한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는 지난해 말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간접광고와 가상광고, 협찬 등 모든 광고 분야의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 앞선 사례는 아직 ‘의결’된 사항은 아니지만, 입법예고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한다면 A, B, C씨의 상황은 곧 우리의 미래가 된다.

▲ MBC '우리 결혼했어요' 화면 캡처

‘예측’조차 되지 않는 광고규제 완화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간접광고의 ‘시현’ 허용 및 시간 확대, △가상광고의 교양·예능·스포츠 뉴스 장르 확대, △협찬고지 금지 완화 및 종류 확대, △신유형 방송광고 제도화, △방송광고 금지품목 규제 개선, △방송프로그램 편성시간당 총량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방송광고제도 개선(안)>을 입법예고했다. 방송광고 역사상 가장 대폭적인 ‘규제완화’안이다. 앞으로 광고가 프로그램에 어느 정도 침투하고 잠식할 것인지 예측조차 되지 않는다.

방통위가 추진하고 있는 <방송법 시행령> 중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총량제이다. 기존 방송광고가 ‘토막광고’, ‘자막광고’, ‘시보광고’ 등으로 규제돼 있던 것을 프로그램 편성시간 당 총량제로 바꾸는 내용이다. 현행 <방송법 시행령> 제59조(방송광고)에 따라, 지상파의 광고 체계는 방송프로그램광고(시간당 6분), 토막광고(3분), 자막광고(40초), 시보광고(20초)로 구분돼 있었다.

하지만 ‘광고총량제’가 도입되면 방송프로그램광고, 중간광고, 토막광고, 자막광고 및 시보광고를 포함해 “전체 광고시간은 매 방송프로그램 편성시간 당 평균 15/100분 이내(시간당 9분)”로 바뀐다. “매 방송프로그램 편성시간의 최대 18/100분(10분48초)을 초과할 수 없다”고 상한이 있긴 하지만 대폭적으로 증가하는 셈이다. 반면, 유료방송은 방송프로그램 편성시간당 ‘평균 17/100분 이내(10분 12초)’ 및 ‘20/100분 내 자율(12분)’로 바꾼다. 광고별로 구분돼 있을 때보다는 편성이 획기적으로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지상파와 유료방송 쪽 모두 광고가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간접광고’의 경우, 방통위는 “시청흐름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과장과 허위가 아니라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내에서 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시현이 가능하도록 한다. ‘간접광고’ 허용시간 은 지상파는 해당 방송프로그램시간의 5/100분, 유료방송은 7/100분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추상성’이 논란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46조(광고효과)는 “상품 등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능”만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과장과 허위가 아닌 이상 제품의 특장점 시현을 전면 허용한다는 입장이다. 해석에 따라 충돌의 여지가 다분하다.

▲ SBS '다섯손가락'에서 삼성 캘럭시노트 간접광고

예컨대 스마트폰의 경우, 현행 방송프로그램에서 보편적인 기능인 ‘전화’와 ‘문자’, ‘인터넷 검색’ 기능 등의 시현은 허용된다. 그렇지만 특정 스마트폰에만 탑재된 기능 시현은 금지돼 왔다. 하지만 방통위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허위와 과장’이 아니면 제품의 특장점 모두 시현이 가능해진다. 삼성 캘럭시노트의 경우, 터치펜으로 ‘#이름’을 쓰면 전화가 걸리는 장면 등 구체적인 상품 소개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모두 가능해지는 셈이다. 방통심의위 입장에서는 이제 해당 제품의 광고가 ‘허위’인지 ‘과장’인지 따져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다.

▲ 프로야구 중계 중 가상광고. 두산 경기 중. 가상 광고로 삼성의 디지털TV 화면이 나감.

또한 방통위는 현행 스포츠 경기에만 가능했던 가상광고를 교양·예능 프로그램, 스포츠 보도로 확대,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가운데, 가상광고 규제 조항은 △어린이를 주 시청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보도·시사·논평·토론 등 객관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방송프로그램의 경우 금지, 방송프로그램의 내용이나 구성에 영향을 미치거나 방송사업자의 편성의 독립성 저해 금지, △가상광고 내 상품을 언급하거나 구매·이용 권유 내용 금지, △프로그램 흐름 및 시청자의 시청흐름 방해 금지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광고가 풀릴 경우, 시청권 훼손의 정도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 프로야구 중계 중 가상광고. SK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한대 피우고 싶으시죠?'라는 희화화시킨 가상광고가 나가 논란이 됨.

현재, 시청자들이 인지하는 가상광고의 기본은 스포츠 경기에 등장하는 ‘광고판’이다. 실제는 아무런 내용이 쓰여 있지 않지만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특정 상표를 보는 방식이다.가상광고의 범위가 늘었나면, 간단히 말해 프로야구 경기에 나오는 다양한 가상광고가 모든 거실TV 프로그램을 점령하게 된다.

먹는샘물·결혼중개업·전문의약품 허용…2015년에는?

방통위의 방송광고 규제완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중 △방송광고 금지품목 규제 개선, △신유형 방송광고 제도화도 주목해야 한다.

‘방송광고 금지품목 규제완화’는 이명박 정부 이후 꾸준히 논란이 됐던 내용이다. 2010년 방통위는 ‘종편’ 출범을 앞두고 대대적인 방송광고 금지품목 규제완화에 나선 바 있다. 이로 인해 ‘먹는 샘물’과 ‘전문의약품’, ‘결혼중개업’ 등의 방송광고가 대폭 허용됐다. ‘국민건강보다는 방송의 먹거리가 우선이냐’는 비판이 컸지만,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묵인되었다.

▲ 2011년 주승용 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국민건강마저 종편에 팔아넘기나!' 긴급토론회 모습ⓒ권순택

방통위가 2015년 다시 ‘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과 ‘기업의 부담 완화’라는 이유를 달아 방송광고 금지품목을 추가 완화하겠다는 입장으로 “방송사와 학계, 업계 대표 등과 TF를 구성해 주무부처와 협의해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현행 <방송광고에 관한 규정> 제43조(방송광고의 금지)는 ‘단란주점영업 및 유흥주점영업’, ‘사설비밀조사업 및 사설탐정’, ‘혼인매개 및 이성교제 소개업(국내결혼중개업 제외)’, ‘점술·심령술·사주·관상 등의 감정 및 미신과 관련된 내용’, ‘무기·폭약류 등’, ‘담배 및 흡연과 관련된 광고’, ‘조제분유·조제우유·젖병·젖꼭지제품’, ‘음란 간행물 등’, ‘인·허가 받지 않은 금융업’, ‘안마시술소’, ‘17도 이상의 주류’ 등에 대해 TV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추가로 어떤 내용이 완화될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010년에 논란으로 제외된 조제분유와 의료 부분이 먼저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이란 의견이 많다.

이밖에도 방통위는 <방송법> 개정해 “신유형 방송광고의 근거 규정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법적으로 광고유형을 7가지로 정해놓고 있어 “컴퓨터 기술 등을 활용한 광고 기법을 방송광고에 적용하기 어려웠다”는 게 방통위의 입장이지만, 이 또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우려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신유형’ 방송광고가 등장할 경우, 이를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지 가늠 조차 안된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기획국장은 “방통위에서 내세우는 것은 ‘방송광고 활성화’, ‘재원마련’ 차원”이라면서 “그런데, 광고규제가 이렇게 대폭 완화됐을 때 시청자나 방송의 상업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합의가 없었던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동찬 기획국장은 <방송광고규제완화(안)>에 대해 “방송과 광고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며 “그런데, 방통위 안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드라마나 예능, 교양이 아닌 광고를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방송의 홈쇼핑화라는 말이 맞는 말”이라며 심각한 시청권 훼손 문제를 지적했다. 김 국장은 “교양이나 스포츠뉴스에 가상광고를 가져온 것은 문제다. 특히, 보도의 경우 객관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가상’광고를 어떻게 구현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하며 “방통위가 방송사업자들의 요구만 받아들여 추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KBS '비밀' 드라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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