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을 만들어 파는 사업자는 2001년 4월 19개사에서 2014년 10월 799개로 늘었다. 경쟁이 늘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같은 기간 전력설비가 2배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민간이 담당하는 영역이 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설비용량으로 볼 때 공공부문 비중이 78.3%이고 민간은 21.7%밖에 안 돼 전력산업의 지배적 사업자는 여전히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전자회사 5곳(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등 공공부문으로 볼 수 있지만, 문제는 5년 뒤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데 있다. 정부는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만들며 최초로 100% 민간에게만 복합화력을 허용했다.

사회공공연구원 송유나 연구위원은 15일 <재벌에게 불하된 전력산업, 국민에게 전가된 위기>라는 제목의 워킹페이퍼를 내고 “제 5~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하면 최소 10,000MW 이상의 석탄화력에 민간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된다”며 “대규모 민간석탄화력의 무분별한 허용에 따라 민간발전회사의 설비 비중은 최소 35,000MW를 넘어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규모는 원자력(현재 가동 중 20,000MW+건설 중 6,600MW+계획 중 8,400MW)과 딱 맞먹는 엄청난 규모”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한국의 발전시장은 원자력 vs 민간 vs 기타공기업으로 분류될 듯하다”고 전망했다.

송유나 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향후 5년 내 포스코(포스코에너지, 포스파워 포함)의 발전 설비용량은 현재 6,500MW에 추가 설비까지 총 9,000~10,000MW가 된다. GS는 2,600MW 수준에서 6,000MW로 늘고, SK는 2,000MW에서 최대 9,000MW까지 늘어난다. 이밖에도 MPC 삼성물산 동부하슬라 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삼천리는 총 2,700MW 수준에서 11,000MW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주요 민간 회사의 발전설비 현황. 송유나 연구위원 워킹페이퍼에서 갈무리.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5~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아니더라도 포스코 GS SK ‘에너지 삼총사’ 등 민간기업은 전력시장에서 ‘특혜’를 누리고 있고 막대한 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 LNG 복합화력 발전이다. SK E&S의 설비용량은 한국수력원자력의 26분의 1뿐이고, 발전자회사의 9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이 회사의 2014년 상반기 순이익은 무려 2547억 원이다. 포스코의 경우, 대부분 1960년대 건설한 노후발전기라 매출 1조2322억 원에도 2014년 상반기 순이익은 350억 원뿐이지만 기존 설비용량에 달하는 발전기를 2014년 하반기에 가동한 탓에 수익 전망이 긍정적이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1,000~2,000MW 정도의 복합화력만을 소유하고도 막대한 수익을 눌렸던 민간 발전회사들의 눈부신 성과는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며 “그런데 향후 석탄화력을 위시하여 다양한 에너지원을 MIX한 발전회사로 거듭 성장하게 된다면, 과연 그 수익은 어떠한 수준일까. 포스코와 SK는 발전자회사인 공기업 1개보다 크거나 비슷한 규모가 된다”고 내다봤다.

민간에게 전력산업은 그야말로 금싸라기다. 5개 발전자회사는 2013년 최소 807억에서 최대 1350억 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정부의 요금규제 핵심인 연료원별 ‘정산조정계수’를 통과한 것으로, 자회사의 수익 일부를 한전으로 환원한 결과다. 만약 인위적인 매출 조정이 없었다면 각 발전자회사의 매출은 1.5배에서 2.5배가 된다.

▲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성봉 선임연구위원이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구조개편과 민영화’라는 연구보고서에서 도식화한 전력산업 구조개편 단계별 시나리오. 조성봉 연구위원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추진되어온 전력산업 구조개편 모형을 참고하여 송전망을 제외한 발전․배전․판매사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총 4단계에 이르는 구조개편 단계를 설명했다. 그는 “우선 단기적으로는 2002년까지 발전부문을 수개의 발전자회사로 분할하여 경쟁을 도입하고 분할된 발전회사의 단계적인 민영화로 효율성 증진을 통한 발전원가의 절감을 도모한다”며 “장기적으로는 2009년까지 배전 및 판매부문도 수개의 회사로 나누어 전력의 도·소매부문에 본격적인 경쟁을 도입한다. 이와 함께 송·배전망을 개방하여 민간업체도 송·배전망을 자유로이 이용토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산조정계수는 한전이 50%를 초과해 지분을 소유한 사업자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민간발전회사 수익 추정치는 상상 그 이상이라는 게 송유나 연구위원 분석이다. 정부 계획대로 한전 등 민간기업의 설비가 2배 이상 늘고, 그만큼 공공부문의 영역이 줄어든다면 민간부문의 매출은 2배 이상, 순이익도 수배 이상이 된다. 포스코 SK GS 삼성 현대 등에게 전력산업은 매달 꼬박꼬박 현금이 들어오고, 매년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수천억 원의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사업이 된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정부는 “에너지 다소비 대기업의 자가용 설비 확장 및 도매판매”를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민간기업들이 올해 중반으로 미뤄진 제7차전력수급기본계획 내용을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지금 같은 정부 정책기조라면, 원자력은 확대되고 민간 설비는 확장돼 설비도 과잉이고 비용도 많이 드는, 위험과 비용 모두가 증가하는 시장을 창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민간에 ‘퍼줄’ 생각만 하고 있지는 않다. 정부는 ‘장기거래’를 바탕으로 전력거래시장을 재편할 게획을 최근 발표했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그 동안 과다수익은 민간에게, 리스크는 공공에게 부가됐던 시장이 일정하게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낮아지는 게 시장경제 원리이지만 전력산업에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표준단가 책정 등에서 민간에 유리한 입지 – 변동성의 고려, 원가, 가동률, 적정투자보수율 등 제반 측면에서 – 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며 “또한 전력거래 ‘시장’이 존재하는 한, 그 폐해는 한전이나 공기업들이 떠안게 되는 구조 역시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결국 ‘민영화’로 가는 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전력판매 시장의 부분적 개방, 우회적 민영화 정책이 도입될 가능성도 크다”며 “특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요관리 시장과 연동하여, ‘덜 쓴 전기’를 한전에 되파는 식의 판매사업자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업은 ‘자가용 설비’를 늘리고 ‘남는 전기’를 한전에 되팔게 되는데 이 같은 사업자를 포함해 민간부문이 전력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대편에서 발전자회사 통폐합 논의가 진행 중인 것도 ‘민영화’ 시나리오를 가능하게 한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정부와 새누리당은 기존 5사 체제를 3사 체제로 통폐합하는 발전부문 구조개편 방안을 논의해 왔다. 발전자회사의 설비가 대부분 노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효율성의 논리’로 민간 영역을 확대할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기업에게 투자를 유도해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자’며 시작한 전력산업 민간 개방은 이제 ‘효율성이 떨어져 적자가 예상되는 부분을 민간에 넘기자’는 구조개편으로 흐르고 있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공기업의 지배력 때문에 신규 진입하는 민간기업이 불이익을 얻는다는 경제학 교과서의 주장은 에너지시장 현실에 적합하지 않게 됐다”며 “시장은 이미 민간기업에게 유리하게 바뀐지 오래다. 굳이 소유권 방식의 민영화인가의 문제로 논란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 시장의 확대는 자연스럽게 공공영역을 축소하고 민간영역을 확장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시장경쟁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민간기업에게 유리하도록 법과 제도를 변경, 완화해줬다”며 “민간의 수익이 확대된ㄴ 동안, 리스크는 공기업이 떠안아 국민 부담으로 이전된 것이 바로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한국 민영화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은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될 것이고 그 수혜는 다시 민간기업에게 이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