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세월호 참사 여파로 2014년 대중문화는 의도치 않았던 소강기를 맞기도 했고, 뭔가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는게 염치없는 행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작년 한 해 동안 어떤 것들은 속절 없이 '소멸'되었고, 또 어떤 것들은 난데 없이 '호명'되는 계측하기 힘든 문화적 흐름이 교차했다. 물론, 이 종잡을 수 없는 표면의 변화는 지상파 방송이라고 하는 가장 거대한 집단의 위상이 '몰락'하고 있는 심층의 파동에 기인한 '현상'이라고 해야할지 모른다. 다사다난이란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2014년이 떠나간지 벌써 보름여가 지났지만, 이제야 펼쳐 놓는다. 이종임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와 이승한 대중문화평론가에게 물었다. 대중은 그때 왜 그랬을까요?

▲ 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편

미디어스(이하 미) : 우선 90년대 열풍을 불러일으킨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이야기부터 해 보자. 흥행몰이 중인 영화 <국제시장>과 <토토가>를 연결해 특집기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요즘 ‘회고’의 정서가 전체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읽히고 있다. 이런 경향을 어떻게 보는지.

이종임(이하 이) : <국제시장>은 안 봤고 앞으로도 안 볼 예정이다. (웃음) <무도>는 저는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시작한 게 노래방 가서 박명수와 정준하가 예전 노래를 부르며 회상하지 않나. 그러면서 울컥하고. 우리가 이렇게 중년이 되기까지 달려오기만 했는데 사실은 과거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하고 돌아보는… 박명수 씨가 원래 자기 감정을 잘 노출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런 모습에서 진정성을 봤다. 아이디어 회의에서부터 (<토토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 보여줬다. 그게 김태호 PD가 의도했던 것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러티브’가 구성이 되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 기획이 상업성을 지향하고 시청률을 겨냥해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제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과정과 <무도> 멤버들의 감정이 노출됐던 것이 재미있었다.

이후 가수들 섭외과정도 재미있었다. TV에 등장하지 않아 사라졌던 존재처럼 느껴졌던 사람들이 나왔다. 냉동인간, 옛날사람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거의 지금 트렌드와 멀어져 있는 공간에 있는 사람처럼 묘사된 김현정 씨, 립스틱 한 번 잘못 발라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던 김건모 씨 등등. 위축되어 있었던 옛 스타들을 불러와서 ‘아 내가 이렇게 대스타였었는데’ 하는 느낌을 주고, 그 사람들을 탈출시켜준 것 같은 느낌이 <무도>를 통해 나타났다. 과거와 지금 모습 돌아보는 것도 굉장히 감격스러웠고.

<토토가>라는 텍스트는 무척 재미있게 봤는데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이 부분이다. <토토가>에 출연했던 사람들 얘기가 사회화되는 과정이 매우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 어느 카페주인이 90년대 노래를 틀면 옛날 노래 듣는다고 무시했던 종업원 이야기를 했는데, <토토가> 이후에는 그 종업원이 오히려 90년대 노래를 듣고 즐거워 한다는 내용이었다. 90년대에 실제로 그런 문화를 즐겼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대들이 <토토가>로 파생된 것들을 좋아하는 건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궁금하다.

이승한(이하 승) : <토토가> 이후 5~6살 어린 대학후배와 함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친구는 그 당시(90년대)에 어렸고 음악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 모르는 음악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모르는 음악’도 즐길 수는 있다. 그런데 <토토가>는 음악뿐 아니라 자막까지 그 시대 스타일로 고스란히 재현하고, 모든 걸 당대 모습 그대로 뚝 잘라서 붙인 것처럼 만들어 냈다. 어떤 맥락을 갖고 요즘 세대들에게 풀어서 설명하려는 모습이 없어서, 그 친구는 자기가 ‘초대받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저는 <토토가>를 매우 재밌게 봤다. 끝나고 노래방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보니 <토토가>는 출연진들이 왜 TV에서 밀려났는지, 90년대는 어떤 시대였는지 평가하지 않았다는 게 보였다. 김정남 씨는 소속사에서 나온 다음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S.E.S. 슈 씨는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서 그렇게 됐다 등 개인사적인 층위에서는 나오는데 왜 밀려났는지에 대한 시대적인 코멘트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의 ‘그 당시’가 오늘날 어떤 맥락으로 이어져 있는가를 침묵한다. 한 마디로 당대를 ‘유원지화’했다. <토토가>를 보면서 90년대 테마파크라는 느낌이 들었다.

<토토가>는 이전까지의 90년대 회고와 달랐다. <건축학개론>은 9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의 후일담이었고 그 당시 선택이 지금 삶에 어떤 영향 미쳤는지 암시가 나온다. <응답하라 1997>도 캐릭터의 성장을 다 그렸고, <응답하라 1994> 역시 명문대 출신의 ‘살아남은’ 40대 중산층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보이는데 <토토가>는 그 맥락이 안 보인다. 이는 <국제시장>도 비슷하다. 주인공 덕수가 현대사의 여러 사건들을 겪었는데도 좌절하지 않고 헌신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전하는데, 이 영화에도 ‘사관’이 없다.

때마침 파독광부를 모집하고 월남전 파병을 해서 덕수가 다 거기에 참여하는데 영화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체 이주노동을 가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고, 왜 남의 나라 전쟁에 나가야 하는지도 묻지 않는다. 차라리 좌든 우든 가치판단을 한쪽으로 내렸으면 논쟁이 더 깔끔했을 텐데, 혹시나 그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 중 어느 한 편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까봐 그 모든 맥락을 제거해 버리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주요 현대사 사건들이 개인사적인 스펙터클을 전시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다.

▲ 이종임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강사 (사진=미디어스)
: 90년대는 아직 회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시기적 간격을 갖고 있다. <토토가>에 나온 출연진 절반이 현역인 것만 봐도 그렇다. 김종국 씨는 매주 TV에서 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런데 왜 지금, 90년대에 대한 호명이 발생하고 있을까.

: 90년대가 가장 재현할 수 있는 거리가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80년대는 88올림픽과 민주화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90년대는 음악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이 풍성했고… 그런데 저는 <토토가>뿐 아니라 <응답하라> 시리즈도 다분히 개인사적인 이야기였다고 본다. <응답하라 1997>은 IMF 사태가 터졌던 시기인데도 청춘멜로물에 가까웠고 <응답하라 1994>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사 중심의 재현방식은 당대를 늘 낭만화시켜 버린다. 이런 흐름은 <국제시장>과 다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국제시장>이란 영화가 갑자기 등장했다기 보다는 이런 식으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와중에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 (90년대를 회고하는 것은) 산업화 세대가 쌓아온 경제성장과 민주화 세대가 원했던 자유에 대한 희구가 모두 구현됐던, 대한민국이 호황 누리던 시절이 90년대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희망이 없어질수록 이 경향은 더 커지리라 본다. IMF 터지고 난 이후에도 정말 많이 힘들어했지만 얘기 들어보면 요즘이 더 힘들다고 한다. 당시 저는 10대였는데 그래도 그 시대에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바이코리아 주식을 사면 성장할 수 있고, 금 모아서 위기를 극복하고, 가수들은 <하나되어> 부르고. 수평적 정권교체가 되고, 남북관계가 호전되고, 우리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다는… 오히려 전 사회적인 ‘우울증’이 번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고 나서다. 과거에는 40대만 되도 안정적인 위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제가 올해 32살인데 주변에 아직 취직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나는 아직 꽃피지도 않았는데 시스템에서는 안 받아주겠다며 나가라는 거다. 자기가 만약 ‘지금’이 전성기라면, 그렇게까지 과거를 회고할 필요는 없다. 그러다 보니 90년대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크게 이상한 건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대중문화를 가장 활발하게 소비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현재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응답하라> 시리즈 만든 이우정 작가, 신원호 PD가 대표적이다. 제작하는 사람이나 소비하는 사람이나 결국 90년대에 젖줄을 대고 있기 때문에.

또 <토토가>에 대한 열광이 명확히 세대가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토토가>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때는 H.O.T., S.E.S.에 열광하다가 지금 에이핑크나 B1A4 덕질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의 덕질은 현재에 대한 추구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는 거다. 나의 영광의 시절은 지금이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 생체리듬이 더 길어져서 현재 30~40대가 과거의 20~30대와 비슷해졌으니, 바로 지금이 영광스러워져야 할 시기인데 암만 봐도 영광이 안 올 것 같은 것이다. 내 차 마련, 내 집 마련도 어렵고, 애 낳아서 키우는 것도 힘들 것 같고. 그러니 자꾸 좋았던 90년대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 종편 등장 이후 극단적으로 X세대물과 실버물(노인층 겨냥한 프로그램)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방송사 프로그램의 타깃 오디언스 자체가 굉장히 높아졌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국제시장>도 CJ가 새로운 영화 영토를 개척한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를 안 보러 오는 노인들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JTBC만이 타깃을 명확하게 잡고 나가는 것 같다.

: JTBC는 타깃 오디언스가 2049(20~49세)로 명확하다. 모든 콘텐츠가 다 2049를 겨냥하고 있다. 손석희 사장을 데려온 뉴스, 심층적인 분석을 원하는 젊은 시청자들을 위한 <5시 정치부회의> 등 뉴스도 그렇다. <정치부회의>는 설마 일선에서 뛰는 기자들은 믿을 수 있겠지, 하면서 보수 진보를 떠나서 적어도 헛소리는 안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젊은 층을 노린 프로그램이라고 본다.

JTBC는 종편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존재다. 다른 종편 채널은 2049 그 너머의 시청자들을 겨냥한다.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전진 배치시키고, ‘뉴스의 예능화’를 시도한다. TV조선이 가장 심각한데 이런 사례가 너무 많다. 앵커가 뉴스 진행하다가 경례를 하질 않나, 새해부터 김정은 관상을 보면서 북한 미래를 점치고 있다. 젊은 감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본 경험도 큰 의지도 보이지는 않는다. 신문으로 확보한 독자만 불러 모아도 그만이라는 식이다. 다만, 지난해 TVN, JTBC가 예능을 꽉 잡은 걸 보고 느낀 게 있었는지 최근 송창의 PD를 데려간 것 같다. 하지만 TV조선은 이미 2049 세대에게 너무 ‘구린’ 이미지다. 정치적 스탠스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서 ‘구리다’는 느낌이 들면 아예 안 봐 버리지 않나. 송창의 PD 영입은 스테이션 컬러를 바꿔 보기 위한 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상파가 타깃 오디언스 높게 잡은 건 안전하게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젊은 PD들이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패해도 재도전하는 문화가 없어졌다. 이번에 조금 성과가 조금 못 나와도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tvN이나 JTBC로 지상파 PD들이 많이 옮겨가지 않았나. 사실 비지상파 쪽에서 인상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지상파 출신이 대부분이다. 그쪽에서 키워낸 인력이 전방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결국 콘텐츠도 사람이 만드는 건데, 젊은 세대들이 말 걸 수 있는 제작자가 다 다른 채널로 가고 기획안을 보고 결정을 내리는 건 부장급 CP이니 점점 프로그램이 올드해질 수밖에 없다. 음식점이 장사가 잘 안 되면 일단 단골부터 잡아보자, 하는 식으로 나가지 않나. 지상파도 그렇게 하고 있다. 건강, 의료, 떼토크 등등.

인력이 빠져 나간 문제도 있지만 애초에 지상파는 자유롭게 뭘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된다. 지난 정부에서 워낙 ‘꽂아 내리기’ 작업이 활발해서. 일례로 위에서 꽂은 김재철이 쫓아낸 MBC PD와 기자들만 몇인가. MBC 얼굴로 불렸던 아나운서들도 나갔거나 비제작부서에 가 있는 게 현실이다.

: 지난해는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컨텐츠 파워게임이 교차점을 기록한 해였다고 본다. 사실 콘텐츠 파워는 완전히 (비지상파에) 넘어갔다. 작년 지상파 콘텐츠 중 산업적이든 문화적이든 그나마 의미 있게 평가할 수 있는 건 <무한도전>, <정도전>, <별에서 온 그대> 정도다. 그렇게 많은 파워를 점유를 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 주변에서도 그런 얘기들을 한다. 나이가 좀 있으셔도 tvN이나 엠넷을 본다고. 그 채널이 재미있으니까. CJ E&M의 성장은 콘텐츠뿐 아니라 산업론적인 측면에서도 봐야 한다.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 저는 가장 놀랐던 게 100억을 투자해서 만들었다는 드라마 <삼총사> 첫 방송을 봤는데 그게 CJ계열 8개 채널에서 동시 방송되고 있더라. 그 정도로 본인들이 ‘미는’ 콘텐츠라면 채널을 다 장악해서까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멀티플렉스 상영과 똑같은 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CJ는 콘텐츠 파워를 계속 키워가고 있다.

JTBC는 작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소위 말하는 ‘젊은’, ‘진보적인’ 시청자 층을 끌어안을 수 있었다고 본다. 종편이라고 하면 보통 실버세대를 겨냥한 예능이 많은데 JTBC는 이 방면에서도 차별성을 보인다. 아주 젊지는 않지만 20~40대가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든지 발랄한 프로그램들. ‘우리는 다른 종편이랑 달라’라고 굉장히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썰전>은 이미 너무 유명해졌고.

지상파는 낄 자리가 없었다. 과거에는 MBC가… 정말 과거네요(웃음). 그런 역할을 했었는데 MB정권 들어서면서부터 뭔가 해 보려는 사람들이 다 사라진 것 같다. KBS나 SBS도. 개중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CJ나 다른 방송사로 가 버렸다. 지금 지상파는 JTBC를 제외한 ‘종편’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주요 결정을 내리는 장을 차지하고 있고. 굉장히 재미있게 본 MBC 드라마 <개과천선>은 조기종영을 했다. 보면서도 ‘와, 저렇게까지 표현해도 되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어제(13일) 종영한 <오만과 편견>도 끝이 너무 이상하더라. 제가 봤을 땐 마지막회에서 세월호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승 : 대놓고 얘기했죠) 너무 널뛰기하듯이 편집을 해서 꾸준히 봐 온 사람만 이해할 수 있지, 보편적인 시청자가 알 수 있게 마무리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 제작, 방송 과정에서 외압설이 가장 많이 나도는 곳이 MBC인 것 같다.

지금의 지상파는 자유롭게 콘텐츠 제작할 수 있기보다는 굉장히 경직된 조직문화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점점 더 종편스러운 프로그램들만 등장하는 것 같다. 작년 하반기에 지상파 프로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올드하다고 해야 할까. 실버 세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좋다. 하지만 새롭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은가. 지상파는 종편을 그대로 갖다 놓은 것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종편을 ‘재현’한다. 연세대 윤태진 교수는 이런 현상을 보고 ‘지상파 방송의 노후화’라고 얘기하시더라.

: 그렇다면 올해도 지상파는 콘텐츠 측면에서 부진할까.

이, : (일제히) 네.

▲ 지난해 중국에서 한류 붐을 일으켰던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사진=SBS)

: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좀 해 보자. 아까 드라마 조기종영 얘기도 나왔는데 요즘은 지상파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유일한 당위가 바로 ‘한류’인 것 같다. 다들 <별에서 온 그대> 같은 걸 만들어야 된다는 기세다. 시청률은 국내에서 10%대만 찍으면 충분한 거고, 이걸 중국에 팔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해졌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중국자본이 들어오고 있고. 앞으로는 중국에 판매하는 것이 목적인 드라마가 더 붐을 이루리라고 본다.

: 90년대를 비하하는 건 아닌데, 요즘도 90년대의 내러티브를 가진 드라마가 나오더라.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인가? 비, 크리스탈이 출연했었던…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너무나 예측 가능한 스토리가 나오고 이분법적인 선악구도가 나오고. 90년대 트렌디 드라마 줄기를 따 온 후, 연기를 잘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중국에서 인기가 있는 한류스타를 꼭 집어넣는다. 완성도보다는 이 정도의 조합을 만들어 수출하자, 하는 계산 아래 드라마를 만든다.

: 일본이 한류의 새로운 시장으로 부각됐을 때에도 한류스타를 넣은 것에 더 의의를 둔 이상한 드라마가 많이 나왔다. 중국 한류에 편승하는 것 역시 산업적으로 굉장한 실패로 이어질 것이다. 중국은 자체제작 드라마 수준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잘됐던 것은 중국 한류에 먹혔다는 점도 있지만, 좋은 연출자와 작가, 배우들의 합이 다 맞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잘 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지금처럼 가다간 보나마나 중국시장에서 먹히는 배우 몸값만 올라갈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퇴조하고 영향력 떨어진 것이 ‘좋은 걸 만들어 보자’가 아니라 ‘해외시장에 이렇게 하면 먹힌다’ 하면서 레시피대로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맞다. 일종의 프랜차이즈화다.

▲ 이승한 대중문화평론가 (사진=미디어스)
: 지난해 의미 있었던 드라마는 JTBC <밀회>와 <유나의 거리>라고 본다. <유나의 거리>는 이렇다 할 한류스타도 나오지 않았던데다, 시청률만 놓고 보면 조기종영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항간에는 너무 시청률이 안 나와서 24~25부 쯤에서 조기종영한다는 '카더라'도 있었고. 물론 JTBC는 50회까지 정상방영했다. 결국 좋은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걸 더 중시해서 단기적인 손해는 감수하는 쪽이 괜찮은 작품을 만들고 수출도 잘 된다. 브랜드 파워도 생기고.

예전 MBC를 드라마 왕국이라고 했던 건 MBC에서 만드는 작품은 믿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JTBC, tvN에 대한 채널 충성도가 높은 것도 ‘여기 프로그램은 최소한 평타는 쳐’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 일본 한류 붐 때 말도 안 되는 드라마 나오면서 지상파 드라마 전체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떨어진 것처럼, 앞으로 중국에 맞춘 그런 류의 콘텐츠의 제작이 가속화된다면 기대는 더 떨어질 것 같다.

올해 드라마 경향을 전망해 보자면, 미니시리즈까지 막장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막장 중의 막장, 주부들을 타깃으로 한 주말극에서 ‘이 배역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던 <왔다 장보리> 이유리가 대상을 받은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시청률이든 이슈든 지상파에서 가격 대비 유의미한 성과를 끌어내는 건 막장밖에 없다는 얘기다. 작년 <라디오스타>에서 배우 이규한 씨가 ‘어머님들의 F4’ 특집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미니시리즈로 갈 때 나는 재빨리 최연소 아버지나 삼촌 역할을 할 거다. 거기가 블루오션이다. 다행히도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고. 김수현, 전지현처럼 그 세대 젊은이들부터 해외에까지 소구력 있는 한류스타로 성장하는 사람은 무척 적다. 수많은 배우들은 굶지 않기 위해서 거기(아침극, 일일극, 주말극 시장)로 갈 수밖에 없다. 막장 드라마를 만들면 제작비도 줄고 이슈화는 쉬워진다. 안정적으로 시청률 뽑기 위해 지상파는 아마 그런 카드를 쓸 거다.

반면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개과천선> 조기종영, <오만과 편견> 이상한 뒷마무리만 보더라도, 박경수 작가(SBS <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 등 사회비판적 내용의 드라마를 주로 쓰고 있다)처럼 데뷔작(MBC <태왕사신기>) 때부터 엄청 네임 밸류를 쌓아서 방송사가 건드리지 못하는, 충성적인 시청자 층이 있고 외압이 들어오든 말든 시청률을 근사하게 뽑아주는 작가가 아니라면 더 이상 시대적인 부분을 못 건드릴 것 같다. 그나마 지상파에서는 <무도>가 그런 역할을 해 왔는데, 그건 회사에서 건드리기 어려울 만큼 위치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한류 관련해서 저도 동의하는 게 정말 그때는 영화나 드라마나 말도 안 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최지우 씨가 나온 <연리지>는 연기도 별로였지만 촬영기간이 1달도 안 걸린 것 같이 보일 정도로 졸속이었다. 아무리 일본 시청자들이 한류스타들을 신격화하고 좋아한다고 해도 콘텐츠 평가라는 건 하지 않나. 또 콘텐츠를 사가는 사람들은 채널을 운영하기 때문에 더 엄격한 눈으로 본다. 스타파워 중심으로만 장사를 해서 일본한류가 사그라졌던 것이다. 그러다 중국 한류가 발발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중국자본의 비중은 커지고 있다. 영화사의 경우 NEW, 초록뱀미디어는 중국에 넘어갔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우리가 늘 ‘판매’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막상 중국에 그렇게 팔 만하거나 얘기할 만한 거리가 없는데도.

<별에서 온 그대>는 정말 얻어 걸린 것이다. <겨울연가>도 그렇고. 일본, 중국에 수출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우연히 그 기호가 맞아서 잭팟을 터뜨린 거다. 물론 좋은 배우, 작가, 연출의 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수출만을 목표로 한 상품은 아니었다. 그런데 방송사에서는 어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우리 결혼했어요>와 <런닝맨>이 몇 억에 수출됐다 하면서 방송사 이미지를 홍보하기에만 바쁜 듯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가 남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웃음). 아까 미니시리즈의 막장화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왔다 장보리>의 대상은 그 작품이 일반 막장드라마하고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라고 본다. 매우 입체적인 성격을 지닌 악역이었다. 이렇게 미친 짓을 하지 않고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연민정은 어쩌면 시청자의 기호에 맞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해도 안 된다 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저렇게까지 하지 않고서는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고 본다.

만약 일반적인 막장 드라마가 많이 늘어나기만 한다면 잘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최근 임성한 작가의 <압구정 백야>는 시청률이 예전만 못하지 않나.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