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각 정부부처는 청와대에 ‘업무보고’라는 걸 한다. 2015년 각 부처의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목표와 주요 정책 과제 등을 상세히 밝히는 자리다. 사실상 해당 부처의 한 해를 미리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관심이 크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는 15일(오늘) 청와대를 찾아 2015년 업무보고를 했다. 예년과 달라진 점은 ‘합동 업무보고’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역동적 혁신경제'를 주제로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중소기업청 등 5개 부처의 업무보고를 앞두고 1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양희(가운데) 미래창조과학부장관과 관계부처 차관들이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정화 중소기업청장,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최양희 장관, 이기주 방통위 상임위원,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사진=연합뉴스)
방통위는 이날 유사한 업무를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는 물론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중소기업청 등과 합동으로 업무보고를 했다. 14일 사전 브리핑에서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과거와 달리 올해 업무보고는 ‘주제별’로 이뤄진다”며 “5개 부처가 ‘역동적인 혁신경제’ 실현을 위한 계획을 협업을 통해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장관은 청와대 업무보고를 위해 “5개 부처가 10여 차례 이상의 대면회의와 SNS를 통한 업무보고 내용을 조율해왔다”고도 덧붙였다.

청와대가 ‘업무보고’ 방식을 바꾼 것이다. <서울경제> ‘내년 정부업무보고 2주 안에 끝내라’ 기사(▷링크)에 따르면, "청와대가 업무보고를 1월12일부터 23일까지 속도감 있게 집중적으로 하기로"했고 △경제혁신3개년계획 △통일준비 △국가혁신 △국민행복 등 4대 주제를 중심으로 부처를 그룹으로 묶은 뒤, 합동보고 형식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경제혁신3개년계획’은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됐고 그 안에 ‘방통위’가 포함됐다. 청와대는 ‘속도’, ‘집중’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기조와 2015년 국정운영 방향이 아닌 내용은 듣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야 말로 청와대 ‘맞춤형’ 보고가 된 셈이다.

사전 브리핑에서 미래부 최양희 장관은 <경제혁신3개년계획>에 맞춰 “국민 모두가 이용하는 방송 서비스도 혁신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원동력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방송’은 ‘산업’이고 이를 ‘활성화’해 부가가치 창출을 늘릴 것이며 그러기 위해 △UHD(Ultra High Definition), EBS MMS(Multi Mode Service), 공영TV 홈쇼핑 채널 등 신규 방송서비스 도입, △인터넷 기반 OTT(Over The Top), 디지털 사이니지 등 스마트 미디어 육성, △한류 재도약을 위한 콘텐츠 역량 강화(한·중 FTA 후속 조치로 시청각물 공동제작 협정 체결 추진 등), △방송 콘텐츠 투자 확대를 위한 안정적 재정기반 마련(간접광고·가상광고 등 칸막이식 방송 규제 완화 및 KBS 수신료 현실화, △시장 질서 확립해 경쟁 활성화 및 역동성 제고 유도(재송신 분쟁 조정 기능 강화 등)에 나설 것이라는 계획이었다. 철저하게 ‘방송’의 ‘산업’의 측면만 부각해 청와대 업무보고가 이뤄졌다. (▷관련기사 : ‘방송’의 산업적 차원만 강조된 미래부·방통위의 대통령 업무보고)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5년 정부업무보고:경제혁신 3개년 계획Ⅱ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곤 “방송산업 활성화를 저해하는 낡은 규제와 칸막이를 혁파해야 한다”며 “방송산업에서 민간 활력이 살아나기 위해선 공정하고 활발한 경쟁이 이뤄지는 것도 중요한 만큼 건전한 방송시장 조성에도 힘써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또한 방송 관련 ‘산업’의 측면만 봤고, 그에 대한 코멘트만을 했다.

아시다시피 방송은 ‘산업’적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방송법> 제1조(목적)는 “이 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방통위의 설치 목적 또한 “방송과 통신의 융합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는 것”에 있다. 방통위의 운영원칙 첫 번째 조항 또한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과 통신 이용자의 복지 및 보편적 서비스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이다. 방송은 산업보다는 ‘공공’이 우선되며 방통위 또한 이를 위해 복무하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방통위가 규제기관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청와대가 어떤 의미에서 방통위를 <경제혁신3개년계획> 주제에 맞춰 보고 하라고 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지난해 방통위의 청와대 업무보고 내용을 보면 확인이 가능하다. 방통위는 2014년 목표로 △창조방송 구현과 세계화, △방송의 신뢰성 제고, △국민행복을 위한 이용자 보호로 규정했다. ‘창조방송’이라는 추상적 용어와 중요도 순서 등에서 논란이 일었지만 2015년 방통위 청와대 업무보고 내용과 확연한 차이가 난다. 특히, 수식어라는 비판도 컸지만 ‘방송의 신뢰성 제고’(지상파 방송의 공적 책임, 종편의 공공성 확보, 보편적 시청권 보장), ‘이용자 보호’(개인정보보호 등)이 포함됐었다. (▷관련기사 : 2014년 ‘창조방송’ 내건 방통위의 사업계획은?)

그러나 2015년 방통위의 청와대 업무보고에는 이 같은 내용들이 모두 빠졌다. 과연, 2015년 방통위는 ‘방송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방통위 한 관계자는 “이번 청와대 업무보고는 ‘방송산업’ 내용만 담았다”며 “방통위의 2015년 전체 업무계획 보고 및 브리핑은 27일 경에 별도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별도 브리핑은 청와대에 다시 보고하지 않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결국, 청와대는 방통위의 ‘방송산업’ 이외의 공적책무 등 관련 업무는 정식적인 브리핑을 받지 않는 셈이다. 방송의 공적책무에는 청와대가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는 얘기도 된다. 이는 합당한 것일까. 청와대가 부분적이고 일방적인 업무보고 형식을 갖는데 각 정부부처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은 청와대 업무보고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