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소설가 마거릿 미첼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이니 당연히 미국 정서가 떠올라야 정상이다. 한데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관람하던 중 이 뮤지컬이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뮤지컬이라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왜일까. 넘버 ‘검다는 건’, ‘인간은’ 때문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 레트 버틀러와 스칼렛 오하라, 애슐리의 삼각관계 사랑이 주로 기억나지 흑인 캐릭터에 대한 잔상은 별로 묻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뮤지컬은 백인 캐릭터에만 방점을 두고 있지 않았다. 유색인종, 흑인에 대한 연민을 이 두 넘버를 통해 고스란히 객석에 전달하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3대 정신인 자유와 평등, 박애 가운데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관을 마거릿 미첼의 소설에 투영한 결과물이 뮤지컬 속 ‘검다는 건’, ‘인간은’ 두 넘버로 태동하지 않았나 싶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강점은 음악이다. 간혹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처럼 함량 미달의 프랑스 뮤지컬이 있기는 해도,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프랑스 뮤지컬은 대체로 <노트르담 드 파리>나 <벽을 뚫는 남자>처럼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다른 풍미의 감미로운 음악을 자랑하지 않는가.

▲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쇼미디어그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마찬가지다. 모 예매사이트 상위권에 랭킹되는, 뮤지컬 팬이라면 죽고 못 사는 어느 뮤지컬의 넘버를 들어도 귀가 시큰둥하거나 감동을 전달받지 못하던 필자의 귀를 자극하는 넘버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2막에서 마이클 리가 사랑을 고백하는 스칼렛 오하라를 달래며 부르는 넘버 ‘스칼렛’은,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스칼렛의 구애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심정이 넘버의 하모니와 연기를 통해 200% 객석에 전달될 수 있었다. 죽어가는 아내를 두고 노래하는 마이클 리의 ‘사랑했어’ 역시, 뮤지컬 넘버는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이해해야 감동이 배가된다는 걸 새삼 되새기게 만들어주는 넘버가 아닐 수 없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하는 서현은 ‘진화’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를 보면 제자리 상태에서 더 이상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녀시대 서현 역시 첫 술에 배부르지는 않았다. 뮤지컬 데뷔작 <해를 품은 달>에서는 서현의 다소곳한 이미지처럼 조용하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쇼미디어그룹
하지만 이번에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하면서부터는 ‘내가 알던 서현이 맞나?’, 아니 두 번째 뮤지컬 무대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를 품은 달> 때보다 연기 처리와 넘버 소화력이 진일보했다. 1막에서 ‘그런 여자 아니야’를 부를 때에는 소녀시대에서 트레이닝 받은 안무 실력을 뮤지컬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서현의 지금 모습은 뮤지컬 스타가 된 옥주현의 무대 초창기 때와 오버랩된다. 넘버를 소화하는 가운데 긴 호흡 내쉬는 법만 완벽해진다면, 그녀는 지금과는 또 다른 원숙미를 가진 뮤지컬 배우로 계속하여 발전할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해 서현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건 무대 뒤에서 뮤지컬을 위해 남몰래 땀 흘린 그녀의 노력 덕이 아닐까 싶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