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외부 신체기관 중에서 가장 바삐 움직이는 손은 호모 하빌리스 이래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 그들의 손재주와 도구는 인간과 금수의 차이를 더 벌려놓았고, 인간은 문명을 이룩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손과 관련된 속담이나 격언들을 많이 만들어냈고, 자주 인용해왔다. 지난해 한국의 사회현상을 함축했던 ‘지록위마(指鹿爲馬)’ 역시 손가락으로 사슴을 가리키는 행동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정권의 여러 모습을 설명하는 데는 손과 관련된 속담이나 관용구가 자주 인용되는 것 같다. 기초 노령 연금이나 반값 등록금 등 복지관련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꾸는’ 정부, 세월호 참사에서 ‘손을 놓고 있던’ 정부 등, 묘하게도 2014년은 손의 기능이 부재한 상황을 묘사하면서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추세는 2015년이라고 달라지진 않을듯하다. 뻔히 아는 사실을 억지로 감추려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탓할 때 쓰는 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벌써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담화를 통해서 이 속담을 몸소 겪었다. 박 대통령은 2015년 신년 담화에서 지난해 담화문을 ‘복사해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읊었고, 국민 대다수가 믿지 못하고 있는 비선 실세의 정치 개입에 대해서는 극구 모르쇠로 일관하였으며, 각본없는 문답이라던 기자회견도 조율된 것임이 밝혀졌다. 말 그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이어서, 그동안 박 대통령에 지지를 보여 온 보수 신문들조차도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문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에 대해 단순히 어리석다며 혀를 찰 수 없다는 점이다. 손바닥이 눈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하늘은커녕 앞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손바닥이 눈과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 혹은 누가 사람들 눈앞에서 손바닥을 멀리 떨어뜨려주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이 손바닥을 줄기차게 우리 눈앞에 줄기차게 들이대는 존재가 있다. 바로 언론이다.

예를 들어,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되는 초이노믹스를 평가함에 있어서 박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손바닥을 가져다 놓았다고 생각해보자. 언론들은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주택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거나, 집을 사기에는 지금이 적기라고 기사를 쏟아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정책은 가계부채 1000조 시대 돌입을 촉발시켰고 경제 위기를 가속화시켰다. 정권을 감시하는 감시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언론들이 오히려 손바닥을 국민들의 눈앞으로 끌어다 놓은 셈이다.

즉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보도는 ‘박 대통령의 진심이 돋보인 각본 없는 기자회견’ 식의 보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도대체 북한 방송인지 알 수 없는 종합편성채널의 북한 관련 카더라 보도나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검찰발 팩트만 좇는 보도 역시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는 보도이다. 다만 얼마만큼의 거리에서 눈을 가리고 있느냐, 얼마만큼 하늘을 볼 수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게 당치도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 국민의 40%는 손바닥으로 인해 시야가 가려져 있다. 그 손바닥을 눈앞에 이끈 것이 언론이지만, 한편 멀찌감치 떨어뜨려 하늘을 조망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언론이다. 아쉽지만 난국을 타개할 희망도 언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론이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더욱 늘려가길 바라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신년담화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신문의 보도를 보면 점차 ‘그쪽 바닥’의 분위기도 ‘어찌 손 쓸 수 없는 정권’이라는 인식 쪽으로 넘어가는듯하다. 그러나 어느 국민도 정권이 실패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또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앞으로 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기사들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기도 한다. 이후에 박 대통령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국민들과 진실한 소통만 해준다면, 오늘부터 정화수를 떠다놓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 의향이 있다.

이경락 _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 YTN사이언스의 사이어스투데이에서 '미디어 앤 사이언스'라는 이름으로 과학저널리즘을 비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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