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가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허삼관>은 중국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한 세계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허삼관>은 천만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 분)는 1950년 12월에 일어난 흥남부두 철수 때 아버지와 생이별한다. <허삼관>에서 허삼관(하정우 분)이 아름다운 아내 허옥란(하지원 분)과 결혼하는 시기는 전쟁이 끝난 1953년이다. 두 영화는 6.25 전쟁 혹은 휴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국제시장>의 덕수는 아버지 없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독일로 떠나고, 여동생의 결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쟁 통인 베트남으로 발길을 돌린다. <국제시장> 속 덕수가 가진 기술이 없어도 몸뚱이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건 육체 노동력을 가족을 먹여 살릴 자본으로 바꿀 수 있는, 노동을 자본으로 바꾸어 줄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삼관> 속 허삼관도 마찬가지다. 허삼관도 피를 팔기 전까지는 덕수처럼 노동력을 자본과 교환하는 노동자였다. 이 지점까지는 <국제시장>의 덕수와 맞물린다. 그렇지만 허삼관은 덕수와는 다른 ‘장점’ 하나를 더 갖는다. 그건 매혈, 피를 팔 수 있다는 장점이다.

변변한 기술 하나 없는 허삼관이 아내 허옥란에게 향수와 차,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제공할 수 있던 것, 세 아들을 먹여 살릴 수 있던 것도 <국제시장> 속 덕수가 가진 노동력이 아니라 매혈 덕택이다.

<국제시장>과 <허삼관>에는 기술이 없어도 주인공의 노동력을 구매해고, 주인공의 피를 사줄 시장이 있었다. 그 덕에 두 영화의 주인공은 변변한 기술이 없어도 몸뚱이 하나로, 혹은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해도 이들을 취업시켜 줄 시장이 ‘부재’하는 절망적인 시대다. 등록금과 교재비 때문에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졸업을 한다.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넣어보지만 수십, 아니 수백 통의 기업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일할 조건이 된다 한들 이들을 고용해줄 ‘시장’이 받쳐주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국제시장>의 덕수가 몸으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해도, 아니면 <허삼관> 속 허삼관이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하려고 해도 이런 현실에선 시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두 영화 속 시대는 물질적으로는 배고픈 시대지만 이들의 노동력과 피를 사줄 시장은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 속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시대가 되었지만 젊은이들의 능력을 고용해줄 시장이 극도로 좁아진 세상이 되었다.

<국제시장>과 <허삼관>의 세대가 굶주린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동정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청년 세대들이 동정 받아야 할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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