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사랑의 결실로 맺어질 때 최고의 결합은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일 터. 하지만 부부로 만난 배우자가 사랑의 종착지에 다다른, 마지막 연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언제일까.

배우자에게 크나큰 실망을 할 때 다른 이성에게 곁눈질을 하게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다른 이성과 눈이 맞고야 마는 불륜에 빠지게 되는 게 아닐까. 연극 <멜로드라마>는 부부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의 수, 불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불륜을 다룬다고 해서 불륜을 미화하지만은 않는다. 요즘 공연계에서 <프리실라>나 <프라이드>, <라카지>나 <쓰릴 미>처럼 동성애를 미화하는 일련의 작품을 쏟아내는 경향과는 반대로 <멜로드라마>는 결혼 후에 등장하는 다른 이성과의 사랑을 최고의 사랑으로 미화하는 데에는 별반 관심이 없어 보인다.

▲ 연극 ‘멜로드라마’ ⓒ박정환
이 연극에서 드러나는 불륜은 서경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에서 비롯되는 ‘하마르티아(파국에 다다르도록 만드는 성격적인 결함)’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게 보여졌는가를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서경은 완벽주의자다. 정재영이 주연한 영화 <플랜맨>의 여자 버전이라고 연상하면 쉬울 듯하다. 서경의 결정 하나에 거액의 돈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이라, 서경은 일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함을 넘어서서 강박에 가까운 자세를 갖는다. 서경의 문제는, 일에 대한 철두철미함이 부부관계에까지 침투했다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으면 없을수록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멀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서경은 남편과의 대화 시간을 단 십분 밖에 허용하지 않는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야기를 더 하고자 해도 서경은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며 남편이 아내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끊는다.

아내가 부부 생활의 주도권을 잡는 것까지는 괜찮은 일인데, 큐레이터의 전문성을 위해 배우자에게 있어 소통의 여지마저 차단하는 서경의 태도는 그야말로 남편을 질식하기 바로 직전의 단계까지 몰고 간다.

▲ 연극 ‘멜로드라마’ ⓒ박정환
남편을 향한 서경의 이러한 태도는 남편 찬일로 하여금 ‘관계의 결핍’에 도달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아내와의 정서적인 교류가 정상적일 수 없으니, 남편 찬일은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미현이 다가올 때 단호하게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미현과 남편 찬일이 한 이불 아래 있었다는 것을 안 서경이 분노와 실망에 가득 차 재현과 맞바람이 난다는 건, 남편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한 찬일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그 이전에 찬일이 배우자로서의 책임을 저버리게끔 원인 제공을 한 서경의 태도에 보다 큰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배우자와의 정서적인 유대와 교감보다 일이 중요하다고 착각한 서경의 이러한 워커홀릭적인 태도, 배우자와 결혼 생활의 주도권을 나누기보다는 서경 자신이 삶의 주도권을 쥐어야 안심이 되는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결혼 생활 태도야말로 불륜이라는 화를 부른 큰 원인이다. 박원상이 연기하는 찬일에 대해 손가락질하기보다 측은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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