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분장을 한 몇 명의 개그맨들이 등장한다. 등산객으로 분한 개그맨 장유환은 산등성이에서 부엉이의 길 안내를 받다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부엉이는 갸웃하며 일축한다. “쟤는 날지 못하나 봐.”라고. 11일 방영된 개그콘서트의 신작 ‘부엉이’의 한 장면이다. 계산대로라면 부엉이의 대사 이후 웃음이 터져야겠지만 객석은 찬 공기만 감돌았다. 관객의 대부분은 고꾸라진 등산객이 남기고 떠난 비명 소리에만 집중하는 듯했다.
이것은 곧 한 커뮤니티 사이트의 상징성이 아닌가라는 의심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부엉이와 추락사는 ‘일간베스트’ 즉 일베의 주요 유희거리다. 일베에 발걸음조차 들이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이 사이트의 사건, 사고가 워낙 자주 회자되었고 각 커뮤니티에서 주의 요망을 부탁하여 올라온 게시물 또한 많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연결 시켜놓고 몰랐다는 주장은 궁색해 보인다.
더군다나 네티즌의 트렌드에 참 민감한 개그맨들이다. 그들이 설마 이것의 연결고리를 몰랐을까. 아니 모르고 만들었다 해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가설을 전혀 세워보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 미련한 순진무구가 더 터무니없다.
물론 ‘100% 그럴 리가 없다’는 위험한 주장을 하려하는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선 그럴 수도 있다. 우연이 여럿 모여 필연을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단언하는 것은 억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건 그들이 소위 일베 언어를 썼기 때문이 아니다. 일베 언어를 쓰거나 쓰지 않거나 개그콘서트의 트렌드 자체가 이미 일간베스트의 그것을 지지하고 있으니까다.
이날 개그콘서트의 일베 논란은 해당 사건 하나만이 아니었다. 개그콘서트는 또 다른 코너 ‘사둥이’에서 ‘김치녀’라는 단어를 쓰며 논란이 됐다. 2015년 새해 목표를 묻는 아빠에게 둘째 여름 역인 김승혜가 “난 김치 먹는데 성공해서~ 김치녀가 될 거야!”라고 다짐하는 장면이다. 그저 언어유희가 빚어낸 오해라고 말하기엔 이미 김승혜가 해당 대사 이후 덧붙인 “오빠, 나 명품백 사줘. 신상으로! 아님 신상구두?”라는 말에 이미 해당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썼음을 증명하고 있다.
개그콘서트 제작진이 해당 위기를 넘어가기 위해 쓸 만한 변명은 이는 풍자였다거나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다는 이야기 정도가 될 것이다. 단언하고 싶은 것은 진정 고의가 아니라 실수였다고 해도 현재의 개그콘서트는 일베스럽다는 것이다. 김치녀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았을 뿐. 이미 개그콘서트가 상징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그 단어의 뜻과 다를 것이 없잖은가.
개그콘서트의 여자는 단 두 가지 부류뿐이다. 예쁜 여자는 명품에 미친 남자 등골 브레이커요, 못생긴 여자는 스스로를 자학하며 아무런 서사 없는 외모 비하 개그에 인생의 팔 할을 담는다. 당사자인 여자 개그맨 또한 아무렇지 않게 적극적으로 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문제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개그콘서트의 코너 90퍼센트 이상이 여성 혐오, 증오로 이루어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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