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대한민국은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성접대 동영상’ 파문으로 들썩였다. 동영상에 나오는 남성이 김학의 당시 법무부 차관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됐다. 사건 초기 ‘김 전 차관과 유사하긴 하다’던 검찰은 끝내 동영상 속 남성을 ‘불상의 남성’으로 결론지었다. KBS <추적60분>은 2015년 첫 번째로 아이템으로 별장 성접대 동영상의 진실을 파헤쳤다.

▲ KBS '추적60분' 캡처
KBS <추적60분>은 10일 ‘누가 거짓을 말하나 - 별장 성접대 의혹의 진실’ 편을 편성했다. KBS는 지난해 6월 당시 사건의 참고인으로 진술했던 이수연(가명)씨가 별장 주인 윤 아무개 씨와 김학의 전 차관을 고소한 사건에 주목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다시 나설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

KBS <추적60분>에서 이수연 씨는 윤 씨로부터 강간을 당했을 뿐 아니라, 동영상이 있다는 협박에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윤 씨에게 김학의 전 차관을 소개받고 강남 모처에서 지속적으로 성접대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씨는 불기소 처분 당시 참고인 조사만 받았을 뿐, 사건의 당사자는 아니었다. 그런 이 씨가 이러게 직접 윤 씨와 김학의 전 차관을 고소한 이유는 간명했다. 이 씨는 “제가 나타나지 않아도 벌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라고 답했다. KBS는 이 씨의 진술을 토대로 검찰의 수사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날 KBS <추적60분>에서 새롭게 밝힌 대목은 △윤 씨와 김학의 전 차관이 서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 △김학의 전 차관이 윤 씨 별장에 왔었다는 사실, △윤 씨가 이수연 씨에게 김학의 전 차관을 소개해줬다는 사실, △김학의 전 차관이 찍힌 동영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동영상 속 남성은 김학의 전 차관이 맞다는 사실이다.

▲ KBS '추적60분' 화면 캡처
2013년 성접대 파문 당시 김학의 전 차관과 윤 씨는 서로를 “모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KBS <추적60분>은 윤 씨로 하여금 김학의 전 차관을 소개받은 제3자를 만났다. 또, 윤 씨로부터 동영상을 찍혔다고 주장하는 학원 운영자 권 씨 역시 “윤 씨가 김 전 차관과의 친분과 동영상 과시했다”고 말했다. 윤 씨와 김학의 전 차관이 서로 “모른다”고 했던 주장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윤 씨 역시 KBS 취재진들에게 김학의 전 차관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수연 씨를 소개시켜준 사실 또한 시인했다. KBS에서 윤 씨는 동영상 속 장소가 자신이 소유한 별장과 김학의 전 차관이라는 사실을 부인했지만, 감학의 전 차관이 별장에 왔었다는 사실 또한 인정했다. 검찰의 결론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KBS <추적60분>은 성접대 동영상 속 남성에 주목했다. 정밀한 과학수사의 상징으로 꼽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약칭 국과수)은 수사 당시 경찰에게 넘겨받은 저화질 동영상 분석 결과, “윤곽 정도는 확인이 가능하지만 음성 분석은 판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판독불가’라는 답이었다.

배명진 교수, “국과수 결론 의아…분석 결과 동영상 속 남자 김학의”

그렇지만 KBS <추적60분>에서 숭실대 소리공학과 배명진 교수는 “국과수의 결과를 듣고 의아했다. ‘손을 못 댈 정도는 아니었다”며 “오차 정도는 있을 수 있지만 판독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KBS <추적60분>을 통해 동영상 속 남성의 음성과 김학의 전 차관의 연설 당시 목소리를 대조한 결과, 배명진 교수는 “2~3중 확인한 결과 95%의 유사성이 얻어졌다”며 “원래 90% 넘으면 그 사람이 맞다고 한다. 95%라는 점에서 ‘그 사람(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 KBS '추적60분' 화면 캡처
수사과정의 문제는 또 드러났다. 수시기관은 이후, 성접대 동영상에 대한 고화질 동영상을 입수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수상 참여했던 한 경찰은 KBS <추적60분>을 통해 “원본을 그대로 되살렸을 때에는 아주 선명한 그런 화면이었기 때문에 ‘누구인가’ 정도가 아니었다”며 “굳이 의리를 안 해도 그 사람(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명확히 확인이 될 만한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동영상 속 남자는 김학의 전 차관이라는 얘기다. KBS <추적60분>은 또 다른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윤 씨가 김학의 전 차관이 찍힌 동영상 테잎 회수를 부탁하는 정황이 담긴 녹취파일을 공개했다. 해당 녹취에서 윤 씨는 김학의 전 차관이 찍힌 동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혔을 뿐 아니라, 서로 찍어줬다는 점에서 김학의 전 차관 또한 동영상의 존재 여부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의 수사뱡향은 정해져 있는 듯 이수연 씨 진술 과정에서 사건의 진실 보다는 ‘경찰의 수사의 적절성’을 묻는 질문이 많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김희수 변호사는 “특정한 의도가 있었다”며 “진술인의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이 가연 믿을 수 있는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또한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질문들로 보이지 않는다. 이 질문만 보면, 경찰관의 비위혐의에 대한 감찰조사를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 검찰은 이 씨에게 조사과정에서 “오해를 털어 버리라”고 이야기한 사실도 확인됐다.

불기소 처분…“거짓말한 김학의·윤 씨 말 신뢰성이 있다고 본 검찰”

그렇게 검찰은 불기소 결정서에서 김 전 차관을 ‘불상의 남성’이라고 결론 내렸다. KBS <추적60분>의 공식 질문에 검찰은 “누구인지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동영상 속 여성이 이수연 씨라는 것을 믿을 수 없고,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영상 속 남자 또한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는 답이다.

▲ KBS '추적60분' 화면 캡처
이수연 씨는 이와 관련해 “윤 씨와 김학의 전 차관은 나를 전혀 모른다고 했는데, 이것부터 거짓말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법무부 차관이라고 해서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김희수 변호사 또한 “별장 성접대 사건은 ‘고위 공직자와의 성접대가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대가가 없는 접대는 없다는 것이 상식인데, 이 부분에 대해 무엇하나 명쾌하게 밝혀진 게 없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최근 5년간 <직무 관련 검찰청 소속 공무원범죄 접수 및 처분 현황>을 살펴본 결과, 1.03%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검찰의 형사 사건 기소율이 38.8%인 것과 비교해 현저하게 낮은 수치라는 지적이었다. KBS <추적60분>은 국민들이 검찰을 믿지 못하는 이유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KBS <추적60분>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성접대가 있었느냐는 것”이라며 “동영상 속 이름에 대해 ‘불상의 남자’라거나 ‘누구인지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가 아니라, 고위직 김학의 전 차관과 별장 주인 윤 씨는 무슨 사이인지 그들 사이에 무엇이 오고 갔는지는 검증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끝맺었다. 사법정의에 대한 의문, 일침이었다.

이수연 씨는 2013년 ‘별장 성접대 동영상’ 파문이 일었을 때, 정확한 조사가 처벌이 이뤄졌으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이 씨를 노출시킨 것은 검찰이었다. 이 씨는 그렇게 7~8차례 검찰에 불려가 끔찍했던 성접대 사실을 재차 진술해야 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2014년 12월 31일 이 씨의 말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김학의 전 차관과 윤 씨를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 후, 이 씨의 우울증 증세는 더 심화됐다고 한다. 사건의 진실은 가려지고(가해자가 고위층인 경우는 더욱) 피해자만 더 고통받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자,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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