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총체적 우경화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인권의 자리에까지 ‘혐오세력’들이 치고 들어오고 있다. 새누리당이 기독교 정신을 내걸고 운영 중인 법무법인 <산지> 이은경 변호사를 인권위 비상임위원으로 추천했다. 지난해 말, 동성애 혐오자 최이우 목사를 신임 인권위원(대통령 추천)으로 임명해 논란을 빚은지 2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은 9일 오후 성명을 내어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비상임위원으로 추천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새누리당은 어제(8일) 곽란주 인권위원 후임으로 이 변호사를 인권위 비상임위원으로 추천했다.

이은경 대표변호사가 있는 ‘산지’…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법무법인

이은경 변호사는 기독교 정신을 내걸고 운영 중인 법무법인 <산지>의 대표 변호사이다. 이 변호사가 직접적으로 동성애 혐오발언 등 '혐오' 활동을 하지는 않았으나, 기본적으로 인권위원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라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는 ‘인권’ 관련 전문 경험이 있는 자를 임명하도록 돼 있으나 이은경 변호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무지개 행동은 이은경 변호사에 “인권 관련 업적이 미미할 뿐 아니라, 인권에 배치되는 행보를 보였던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 2014년 11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위원회, 성소주자 차별 반대 무지개 행동은 기자회견을 열어 "무자격·반인권 최이우 인권위원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미디어스

이은경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변호사는 △신린병원 직원들이 한동대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반환 소송 상소심에서 한동대 측 변호, △증권거래법위반 혐의 피고인 변호, △임금 체불로 근로기준법 위반한 영구아트무비 법률 고문 등을 지냈다. 무지개행동은 이런 이력에 대해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보다는 기득권과 사업주의 위법 행위를 변호해왔다.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전문가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무지개행동은 또한 이은경 변호사에 대해 “그는 동성애자의 인권을 빌미로 차별금지법 입법 반대에 앞장서는 대형교회(서울 온누리교회)의 집사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법무법인 <산지>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이태희 미국 변호사는 ‘인권보다 신권(神權)이 중요하다’며 차별금지법 및 동성애자 인권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라며 “이 같은 활동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법무법인 활동으로도 이뤄지고 있으며 홈페이지에도 버젓이 홍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지개행동은 정부가 잇따라 부적격 인사를 인권위에 '낙하산'으로 보내는 이유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국제사회는 한국에 끊임없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9월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폭력 및 차별금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박근혜 대통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지만 국내에서 정부와 여당은 <차별금지법> 제정과 인권 증진을 무력화할 보수기독계 인사들을 인권위에 밀어 넣으며 ‘종교적으로 곤란한 인권’ 도려내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비판했다. 최이우 목사의 경우, 노골적인 동성애 혐오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관련기사 :“동성애 혐오 최이우 목사 인권위원 임명, 국제적 망신”)

인권위가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심사에서 등급 하락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나오고 있다. ICC는 인권위의 가입 이후 처음으로 ‘등급보류’를 결정했다. 인권위원 후보자 선정과 자격심사에 있어서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최이우 목사에 이어 이은경 변호사의 임명은 “등급하락이 불 보듯 뻔한 상황”, “새누리당이 기름을 부은 것”이라는 게 무지개행동의 입장이다. ICC는 올 상반기 인권위에 대한 재심사를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새사회연대 “이은경, 인권위원으로서 공정한 업무 수행 가능하지 않아”

새사회연대(대표 김도현·신수경) 역시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이은경 변호사 추천과 관련해 “인권위 위원으로서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인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새사회연대는 “이은경 변호사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관리위원회 위원을 비롯해 새누리당의 공직후보자 추천위, 공천심사위 위원 등을 수차례 역임해왔다”며 “2014년 9월에는 새누리당 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돼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변호사는 몇몇 정부기관 인권관련 직책을 역임했지만 인권을 보호, 증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업적은 거의 없다”면서 철회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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