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이야말로 이 영화의 북미 흥행을 도와준 일등 공신이다. 일본이 연합군에게 행한 잔혹한 처사는 무시한 채, 영화가 왜곡됐단 이유로 일본 우익이 안젤리나 졸리의 일본 입국을 금지하는 보이콧 운동을 벌이지만 않았어도 <언브로큰>이 이렇게까지 흥행 가도를 달릴 수 있었을까. 참고로 <언브로큰>은 크리스마스 개봉작 가운데 역대 흥행 3위에 해당하는 높은 스코어로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언브로큰>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묘사된 수위는 실제보다 덜하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루이 잠페리니가 와타나베를 쳐다보았다는 이유만으로 구타당하고, 포로수용소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잠페리니에게 주먹을 날리게 만드는 린치, 제대로 먹지 못해 근육이 말라붙은 잠페리니에게 무거운 짐을 들게 한 후 물건을 떨어뜨리면 그 자리에서 총을 쏘아 죽이라는 와타나베의 명령 정도로 비교적 순화되어 묘사된다.

하지만 일본군에 생포된 포로를 살아있는 채로 불에 태워 ‘인간 장작’으로 만들거나, 미군 포로를 처형한 다음에 죽은 포로의 인육을 먹어댄 사람 같지 않은 일본군, 먹을 것이 떨어져서 죽은 동료의 고기를 먹었다는 포로의 증언 등은 스크린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2차 대전의 일본군 행적을 날조했다는 일본 우익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북미 관객으로 하여금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게 만들어준 홍보 수단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일본 우익의 주장대로 있지도 않은 일을 실제 있었던 것인 양 날조했다고 한다면, 일본군에게 짓밟힌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나 미군 포로들이 일본군에게 받은 잔혹한 대우에 대한 증언은 왜 일관되게 쏟아지는 것일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2차 대전 당시 피해자들의 일관된 증언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일본 우익이 착각하는 건 아닐까.

역사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들이 원폭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일본 우익의 역사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언브로큰> 류의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쏟아질 것이고 지속적으로 쏟아져야 마땅하다. 일본이 아시아와 세계에 가했던 가혹한 진실을 폭로하고,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이 봇물처럼 쏟아질 때 2차 대전의 가해자라는 정체성을 원폭의 피해자로 위장 코스프레 해대는 일본의 우경화에 세계가 제동을 걸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600만 명의 유태인을 가스실의 연기로 만들어버린 독일 나치의 만행은 잘 알아도, 중국 난징에서 30만 명을 도륙한 일본의 잔혹한 실체는 세계인은 고사하고 바로 옆 나라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렴풋이만 알고 있다. 일본 우익이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안젤리나 졸리의 일본 입국 금지를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추악한 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걸 두려워한다는 강력한 방증인 셈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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