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재벌의 돈벌이나 족벌 신문의 논조를 배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재벌·족벌 기업들의 대변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마침내 커밍아웃을 했다. 그들답게 돈벌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법과 규제를 바꾸라고 ‘규제개혁 종합연구 보고서’라는 것을 작성하여 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130여명이 4개월간 각계 전문가들과 주한외국인 경제단체의 의견을 참고하여 작성했다는 보고서는 산업과 효율을 빙자한 천여가지가 넘는 방대한 규제의 폐지와 개선을 감히 요구하고 있다. 한 국가의 사회 질서와 합의를 갈아엎는 일당의 이익과 거만함이 묻어난다.

특히 방송 통신 미디어부문에서 그들은 속내를 당당히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 성장 환경조성’이란 글발아래 △공영방송사의 민영화추진 △미디어 간 교차소유 등 규제완화 △대기업의 미디어산업 진출 △미디어전반에 대한 규제완화를 목표 달성의 실천방안으로 제시했다.

너무 많은 공영방송사가 좁은 광고 시장에서 치열한 시청률 경쟁으로 공익적 프로그램 공급이 어렵고, 공영방송이 콘텐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신규사업자의 방송진입과 서비스의 보급 속도를 통제해 왔다는 황당한 핑계로 MBC와 KBS 2TV를 민영방송으로 전환하라고 참람한 주장을 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민영화 논리는 시민사회영역에 속한 방송을 자본에 예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 사회의 문화로서, 민주주의의 도구로서 존재하는 방송을 오직 산업적 이해와 효율에 가두는 매우 편협하고 지극히 불순한 대중의 재산 약탈 행위다.

전체방송 네트워크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케이블과 위성, 그리고 눈앞에 다가온 IP-TV는 기본적으로 상업적 이윤을 추동한다. 유료방송은 계층 간, 지역 간 정보 습득과 문화소비의 격차를 유발시킨다. 여기에 공영방송은 계층과 지역을 넘어, 정보와 문화에 대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여 상업방송이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문화양식을 제공한다. 우리 사회의 지상파방송이 多公營 一民營(다공영 일민영)방송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공영방송의 채널 축소는 공공서비스의 축소를 의미한다. 진보한 사회는 공적영역의 양적, 질적 확대가 함께한다. 따라서 KBS 2TV와 MBC를 공영방송에서 제외시키는 공공영역의 축소는 역사에 대한 반동이다.

공영방송의 재원위기 타계는 시장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TV 수신료를 현실화 하고, 방송시장을 유·무료 시장으로 획정하여 무료방송의 경쟁을 완화하고, 유료방송의 경쟁체제를 도모할 일이다. 전경련의 발상은 방송을 산업적으로도 진흥시키지 못한 족벌 기업에 방송을 안겨주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거대 족벌기업의 방송 소유욕은 거의 병적이다. 전경련의 주장대로라면 민영방송의 주인은 대기업이 유일하다. 오직 자본의 이익에만 단련된 그들에게 항구적인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고 방송의 공적서비스 의무를 지우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방송법이 대기업의 지상파방송 소유와 겸영을 금지하는 것은 자본권력이 방송과 결탁하여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불의한 사적 이윤 추구 도구로 방송이 전락하는 것을 걱정한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의 교차 소유·겸영 요구는 족벌 신문을 거느린 재벌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방송법에 일간신문이나 뉴스통신을 경영하는 법인은 지상파방송사업,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 편성을 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방송은 민주사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존중하고, 동일한 논조의 매체집중으로 인한 여론의 쏠림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작년 6월 헌법재판소는 “다원주의를 전제로 하는 민주제의 기초인 여론의 다양성을 위하여 이종매체간 겸영제한은 헌법정신에 부합 한다”는 결정을 내려 이종 매체 간 소유·겸영 금지의 정당함을 확인해 주었다. 재벌을 등에 업은 족벌 신문들은 헌재의 판결도 무시하고 방송을 희롱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신문·방송 겸영 금지 풀어야”로 제목을 단 중앙일보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다. 중앙일보는 이미 Q채널, 히스토리채널, J 골프, 카툰네트워크를 소유하고, 올 6월에는 미국 L·A에 지상파 라디오(JBC)까지 개국하는 등 거대 미디어그룹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전경련 보고서와 KBS 2TV, MBC의 민영화를 주장한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은 이때를 그들이 그냥 넘기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족벌 신문들과 재벌들이 여론형성과 침투력이 강한 지상파방송에 또 하나의 불의한 그들 신문을 배달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위한 충실한 주구이며, 신자유주의와 재벌을 비호하고 가진 자의 편에 서서 한미 FTA 체결에 총력을 기울이던 뻔뻔함을 보였던 수구 족벌 신문에게 꿈은 꿈일 뿐이다. 방송을 장악하여 자본의 논리를 전파하고 민주적 여론을 왜곡하는 그들의 궤변을 신문과 방송에 동시에 쏟아내게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10월1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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