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정리하는 모양새다. 2014년 정부는 연초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점유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으로 시작해, 전반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움직임여 왔다. 일례로, 정부는 KT그룹을 제외한 모든 방송사업자가 반대하는데도 ‘접시 없는 위성방송(DCS)’을 허용했다. 이 같은 흐름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은 ‘통합방송법안’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특혜는 유지하되 규제는 완화하고, 플랫폼에 힘을 실어주는 게 핵심이다. 한 진영의 규제를 완화하면 또 다른 진영이 규제완화를 요청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 지상파 방송 3사와 이통3사 그리고 종편 4사가 벌이는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 올 해도 '규제완화'라는 이름의 정책으로 방송통신계 안팎에 떠돌아 다닐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업자들이 ‘동일서비스 동일규제’를 ‘시장의 원칙’인양 강조하고 있지만 이 같은 정책방향에도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상파와 일반PP의 지위가 다르고, 케이블SO에게 ‘지역채널’이 지역성을 구현하기 위한 공적 책무로 주어졌듯, 규제는 공공성과 특수성을 모두 고려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전체 로드맵 없이 추진하는 규제완화는 ‘사업자 민원 해결’과 ‘국정과제 실적 쌓기’에 불과하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는 가급적 빨리 정책을 정리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올해 대규모 규제완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쉽지 않다. 이해관계자들은 자사 이익을 위해 국회와 정부에 로비를 벌일뿐더러 직접 ‘보도’하거나 언론에 ‘광고’를 주고 자기 뜻을 전한다. <미디어스>가 지난해를 뜨겁게 달군 방송통신정책을 평가하고, 올해 변화가 예상되는 정책을 추려봤다.

#1. 유료방송 합산규제 논의 ‘본격화’

‘3분의 1’ 합산규제는 2014년 12월과 2015년 1월을 관통한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KT는 그 동안 법안 논의를 연기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국회와 정부는 1월 중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할 분위기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6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7일 전체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2013년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계류 중이고, 미래부와 방통위는 통합방송법안에 이 같은 내용을 반영했다.

KT는 위성방송과 IPTV, 두 가지 유료방송플랫폼을 소유한 ‘특혜’ 사업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는 KT가 이종매체를 겸영하게 될 당시, 이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지 않았다. 만약 KT그룹이 서비스하는 IPTV와 위성방송 점유율을 한데 묶어 규제하면 케이블SO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에게 호재다. KT는 지금 ‘3분의 1’은 이미 초과했다며 ‘49% 일몰제’를 요구하고 있는데 KT의 이 같은 요구가 관철될지 관건이다.

▲ 당장에 가장 뜨거운 불은 'KT규제법'이라고 불리는 유료방송 합산규제이다. 1월 처리 여부가 관건이다.

국회가 논의를 본격화함에 따라 사업자들은 또 다시 여론전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심각한 문제는 KT 대 반KT로 나눠진 이 싸움에서 ‘전국 유일·독점 위성방송사’를 어떻게 재구조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특정사업자의 방송장악력을 사전에 차단하고 미디어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 ‘3분의 1 합산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KT스카이라이프가 KT의 수익 창출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점을 동시에 바꾸지 않는다면, KT가 스카이라이프를 ‘버리든’ 아니든지 스카이라이프가 ‘버려지든지’ 두 가지 결과만 남는다. 합산규제와 함께 시급하게 다뤄야 할 것은 공적 플랫폼으로 출발한 ‘위성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2. 방송광고 규제완화, 시청자의 눈과 귀를 후벼판다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규제완화나 정책결정이 임박한 현안도 많다. 방송광고 규제완화 논의는 이미 시작됐고, 정부는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을 던지고 반응을 보고 있다. 정부는 이것을 출발로 중간광고와 가상광고, 광고품목 규제완화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방송광고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지상파의 주된 요구다. 물론 지난해 좌절한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 논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정부는 방송광고부터 손대고 있다. 이 논의과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방송광고 규제는 지상파와 유료방송에 차별적이다. 유료방송에 대한 규제는 일부 유형별 규제가 있기는 하지만 ‘총량제’가 도입됐지만, 지상파는 유형별 규제가 강하다. 시청권 보호 목적이다. 그런데 방송시장에서 ‘갑’ 지위를 잃고 있는 지상파는 광고총량제와 중간광고 도입을 원하고 있다. 지상파는 ‘이대로 가다가는 지상파의 콘텐츠 생산능력이 떨어지며, 이미 시청자는 중간광고 등에 익숙하다’는 논리다. 방통위도 이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규제완화를 예고했다.

전망을 하자면,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과 광고시간 증가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정부가 중간광고까지 허용하면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 규제 차이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물론 유료방송사업자와 중소PP는 “지상파에 총량제와 중간광고 둘 중 하나라도 도입하면 나머지 사업자가 고사한다”며 반대한다. 문제는 지상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지상파 시청률과 시청점유율은 갈수록 떨어진다는 데 있다. 이럴 경우, 지상파는 중간광고와 협찬, 그리고 방송광고 품목 규제 완화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방통위의 규제완화도 이 같은 방향이다.

변수가 하나 있다면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이다. KBS는 2015년 내 수신료가 인상되면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광고를 폐지할 계획이다. EBS는 VOD를 무료화할 계획이다. 이 같은 플랜이 현실화하면, 광고물량은 MBC나 SBS, 종합편성채널로 넘어간다. 중소PP도 일부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최대 수혜자인 KBS 등 지상파 방송사의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강해 수신료 인상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KBS는 플랜B를 고민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3. 재전송료와 700㎒, 쩐의 전쟁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된다. 지상파-유료방송 간 재전송료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상파는 여전히 ‘갑’의 지위로 사업자 간 협상을 진행하지만, 협상력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현재 유료방송사업자는 지상파 3개 채널(KBS2 MBC SBS 디지털)에 가입자 1인당 월 280원을 ‘저작권료’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다. 지상파는 2014년 하반기, 협상을 시작하면서 더 높은 가격을 불렀다. 가격은 채널 당 400원으로 알려졌다.

결국 280원과 400원 사이에서 재전송료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합리적인 대가산정 없이 지상파의 ‘통보’와 유료방송사업자의 ‘버티기’만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문제다. 방통위는 분쟁이 있어날 경우,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사업자 간 협상에 맡겨둘 게 아니라 대가산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이와 함께 콘텐츠 재생산을 위한 제도적 지원도 함께 고민해야 유료방송 가격 상승과 블랙아웃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700㎒ 대역 싸움은 지상파와 이동통신사의 ‘기싸움’ 성격이 강하다. 지상파는 수차례 자사 이익을 대변하는 보도를 내보냈고, 통신사들도 언론을 통해 대응했다. 지상파는 차세대 방송 기술표준이 될 ‘UHD’를 전국에 내보내고 지상파 플랫폼을 유지하기 위해 이 대역 중 과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동통신사는 급증하는 이동통신 데이터 트래픽을 커버하려면 기존 모바일광개토플랜을 수정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공재난망을 구축 중인 정부는 700㎒ 중 20㎒ 대역을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이 문제는 이미 정리가 됐다. 남은 것은 700㎒ 대역 중 78㎒(=108㎒-20㎒) 부분인데, 재난망-방송망-통신망의 간섭대역을 고려하면 지상파든 통신사든 대폭 양보는 불가피하다. 그런데 국회 여야 모두 이 문제에서 지상파 손을 들어주고 있다. 전망부터 하자면 애초 방통위의 ‘모바일광개토플랜’으로 이동통신사에 넘어갔던 700㎒ 대역 일부가 지상파에 우선 배정될 가능성이 크다.

#4.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산적하다. 일례로 통합방송법이 가져올 ‘플랫폼 비대화’다. 공공성을 중심으로 방송정책 로드맵을 짜지 않다보니, 사업자들 간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중소지역방송과 라디오, DMB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기보다, 유료방송 규제를 푸는 데 집중하고 있다. 종편 등에 대한 특혜는 유지하는 것도 큰 문제다. 미디어생태계를 뒤흔들 시간이 다가오는데 정부는 사업자 이해관계만 조정하고 있다.

오는 3월 한미자유무역협정 발효에 따라 방송시장이 개방된다. 방송제작업의 경우, 간접투자가 100% 열린다. 다양한 형태의 자본이 방송산업에 진입하면 자본을 ‘펀딩’받는 제작사 입장에서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공적 영역’과 ‘다양성 영역’에는 치명타다. 결국 공익PP들이 채널에서 더 밀려나고, 공영방송 민영화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게 이쪽 ‘바닥’의 중론이다. 한미FTA 방송시장 개방에 따른 영향평가라도 진행해야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사실상 전무하다.

정부는 사업자에 ‘돈’을 얹어주는 식으로 위기를 지연하고 있다. 올해 출범할 제7홈쇼핑이 방송산업과 시청자에 어떤 영향도 미칠지도 주목되지만, 정부는 정책을 강행했다.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적어도 수백억 원의 추가 송출수수료를 얻게 됐다. 방송사들이 공동으로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자)을 구성, 뉴미디어 방송광고시장에 진출했지만 이와 관련한 규제는 없다. OTT사업자에 대한 규제도 사실상 전무하다. 사업자들의 행태와 관행이 그대로 규제 가이드라인이 돼, 특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 이 같은 참극은 예고됐다. 단말기유통법을 예로 들어보자. 애초 이 법은 삼성전자가 ‘마사지’했다. 단통법은 제조사의 ‘판매량’도 어느 정도 보장하면서, 이통사의 ‘마케팅비 절감’도 동시에 가져와야 하는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준다. 피해는 가입자만 입는다. 방송-통신 결합상품 저가경쟁은 방송을 ‘공짜’로 이동통신을 ‘고가’로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지금 정부는 규제총량제와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고, 사업자들의 민원을 하나씩 해결 중이다. 그런데 이런 규제완화는 시작일 뿐이다. 방송통신 융합시대, 시청자와 이용자는 점점 고가상품 가입자가 되고 있다. 방송사는 점점 더 프로그램을 상업화하고, 공적 영역은 점점 줄어든다. 2015년 방송통신업계에는 대규모 규제완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업자에게는 선물이겠지만, 시청자와 이용자에게는 폭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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