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국내 경제가 후들거려도 언론이 ‘희망’을 말하면 그 희망은 ‘현실’이 될까? 바로, 동아일보의 얘기다.

<동아일보>는 지난 16일자 지면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은 제한적이다” “경상수지 적자도 10월부터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주요 발언을 부각시키며 ‘경제 낙관론’을 선보였다.

▲ 동아일보 16일치 5면 머릿기사
같은 날 다른 신문들이 “환율 급등에 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 물량이 수차례 나왔으나 먹히지 않았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의 자금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보도한 것과 대조적이다.

동아일보는 “일부 서구 언론과 IMF가 한국 경제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외신 보도를 자세히 다루고, 국제 금융 시장에서 한국 신용도가 좋아졌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6일자 5면 <“한국 경제침체 막으려면 감세-재정지출 확대 바람직”>에서 강만수 장관이 14일 미 금융인들과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은 수출이 다변화돼있는 등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영향이 제한적이다. 그동안 유가가 오르면서 커졌던 경상수지 적자도 10월부터는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한 것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자회사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현재 신흥국 지수로 분류되는 한국의 선진국 지수 편입여부를 12월 잠정 결정할 예정”이라며 페르난데스 MSCI회장은 한국이 선진국 지수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외환 자유화 노력을 지속하고 외국인 주식투자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16일치 5면 기사
동아일보는 같은면 <“일부 서구 언론-IMF, 한국에 편견”>에서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이 14일 홍콩발 기사에서 “최근 사건들은 서구 언론에 등장하는 한국 경제상황(국내은행의 문제점과 외환위기 재발 위험성 등)에 관한 그칠 줄 모르고, 부정확하며, 요란스러운 보도와 호주에 대한 보도 사이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밝혀 일부 서구 언론과 IMF가 한국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IHT는 한국과 달리 거의 칭찬만 받고 있는 호주의 상황은 실제로 한국 상황보다 더 위험하게 간주돼야 한다고 보도했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는 <국제금융 한국 신용도 좋아져>에서 “15일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국채에 대한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4일 2.57%로, 13일보다 0.58%포인트 내려 이틀 사이에 0.83%포인트 급락했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2014년 만기)의 미국채 대비 가산금리도 14일 기준 3.32%로 13일보다 0.34%포인트 내려 이틀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며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신용도가 좋아졌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한국은행들이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고, 기업의 부채비율이 100%도 안 된다는 점, 경상수지가 10월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점 등을 신용평가사들에 설명했고, 국가신용등급도 괜찮을 것 같다”는 강만수 장관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일까. 동아일보의 보도는 단 하루만에 ‘희망’에서 ‘절망’으로 롤러코스터를 탔고, 독자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몰라 멀미를 일으키게 됐다.

17일 동아일보는 1면 톱 <R의 공포>에서 “국내 증시가 16일 역사상 가장 큰폭으로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이 1997년말 이후 최대폭으로 상승했다”며 “금융위기 후폭풍으로 각국의 성장률 전망 및 소비, 고용 등 지표가 악화되는 조짐이 나타나면서 세계 경제는 이제 ‘실물경기의 침체’라는 더 큰 괴물을 상대하게 됐다”고 전했다.

▲ 동아일보 17일치 1면 머릿기사
동아일보는 “국내적으로도 극심한 고용 부진과 수출 및 투자감소 우려, 건설업 침체 등으로 실물경기 둔화 조짐이 뚜렷한 데다 한국경제에 대한 해외 언론과 신용평가사의 부정적 견해가 잇따르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한국은 9월 취업자 수 증가폭이 3년 7개월만에 가장 작은 11만2000명 선으로 떨어지고 내년 경제성장률이 3%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실물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3면 <외국인 6204억 ‘투매 폭탄’…금융시장 다시 ‘터널’로>에서도 “외국인 주식매도가 환율상승을 불러오고 이에 주가가 하락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며 “‘셀 코리아(Sell Korea)’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한 경제전문가는 “동아일보가 뜬금없이 낙관론을 내놓은 것은 애국주의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질 못하니까 오늘 다시 원래대로 비관적 상황을 보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같은 통계치나 발언을 두고도 긍정적으로 봐주고 싶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듯 냉정하지 못한 보도는 우리나라 경제저널리즘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 보도는 오보더라도 시장 참여자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보도 내용대로 현실화되어 가는 측면이 있다”며 “타매체도 이러한 ‘애국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동아일보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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