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우리도 존엄한 인간이다’라는 인권의 에토스가 모든 사회구성원의 인식과 생활의 원리로서 자리 잡지는 못했어도 2014년에 싸우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깊이 새겨진 해가 아닐까 싶다. 인권과 인권운동에서 사람이 없을 수 없듯이 싸우는 주체 없이 인권의 정서와 감정, 담론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한 사회 체제가 만들어낸 폭력에 반응과 대응으로 ‘공유된 책임, 연대’라는 인권의 에토스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너무나 많은 싸움과 사건들 속에서 무언가를 얘기하는 일이 또 다른 주변을 만들까 두려운 마음으로 2014년 주요 인권운동의 키워드를 정리해본다.

국가폭력과 자본의 폭력이 만들어낸 세월호 참사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어떤 땅에 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자본의 탐욕으로 언제든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하는 민중들에게 그 불안이 실제로 목숨까지 앗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국가폭력을 여과 없이 보여준 학살이기도 하다. 그래서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이 세월호에서 속절없이 죽어갔을 때, 그 죽어가는 모습을 그냥 지켜봐야 했던 전국의 시민들은 탄식하며 물었다. 국가란 무엇이냐고.

▲ 지난 4월'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상에서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대해 책임이 있다.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국가는 지배계급의 충실한 집행위이거나 사회 제 세력 간의 불안정한 힘의 관계이다. 루소와 같은 사회계약론자의 입장에서는 인민의 일반의지로서의 국가가 자유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체제이며, 청구권적 인권 레짐으로 보면 국가는 국민의 인권을 존중, 보호, 실현할 의무주체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2014년 4월 16일 국가가 무엇을 했는가다. 국가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이른바 돈 없는 중생들에게는 1원 한 푼 쓰지 않겠다는 것, 생명보다는 다른 것이 우선되는 가치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우리 두 눈으로 봤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월호가 어떻게 해서 침몰했고 왜 구하지 않았는지 사람들은 권력에 묻고 따졌다. 2014년 5월 8일과 18일 청와대 만민공동회와 6월 10일 만인대회에서 ‘이윤보다 인간이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의 외침은 분노가 집결된 형상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부채감, 책임의식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러나 국가폭력과 자본의 탐욕에 대한 질문이자 저항에 대해 국가는 여전히 연행과 구속, 벌금이란 폭력으로 답했다. 세월호 책임을 지고 박근혜는 사퇴하라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던 전교조 교사들을 징계하였고, 그도 모자랐는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고 있다.

인권운동 의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재난상황에서의 인권’은 세월호 참사가 처음이다. 그동안 재난이 발생하면 그것은 국가의 몫이거나 재난 기구의 몫이라고 보았지, 인권운동의 몫으로 여기지 않았다. (물론 그 이전 대구지하철 참사사건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노동문제와 시설 안전문제로 본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심화 속에서 국가는 재난이 발생해도 생명을 구할 의지가 없으며(특히 잉여인구는!), 이윤 외에는 관심사가 아니므로 국민은 언제든 불안한 처지에 있다. 따라서 재난상황에서 국가나 기구가 생명을 우선시하고 인권을 존중하도록 하는 시스템과 인식을 갖추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안전은 시민들의 참여와 권력에 대한 감시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국가폭력은 세월호 말고도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싸움을 하던 농성장을 강제철거하던 6월 10일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밀양 주민들의 목에 쇠사슬을 감았지만 경찰은 다치든 말든 목에 절단기를 들이대고 머리를 땅바닥에 끌어가며 천막을 철거했다. 결연히 맞섰던 주민들이 12월 26일 또 다시 시험 송전을 막기 위해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10월 17일부터 12월 2일까지 수차례 강남구청은 거리환경을 개선한다며 백주대낮이건 새벽이건 할 것 없이 용역반 100여명을 동원해 노점상을 폭력과 욕설로 철거했다.

혐오세력과의 싸움

2014년은 주로 온라인을 통해서만 활동하던 혐오세력들이 본격적으로 거리에서 공공연하게 혐오폭력을 휘두른 해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당연시하는 혐오세력들은 우익 정치와 만나 더 조직적인 흐름을 만들었다. 동성애는 변태라거나 에이즈 감염이라는 잘못된 편견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상황에서 혐오세력들의 선동이 사회에 전파되기 쉽기에 성소수자 혐오는 쉽게 확산된다. 2014년 6월에 서울과 대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엄마부대 봉사단 같은 극우단체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행사를 방해하고 성소수자들 면전에서 모욕적인 언동을 일삼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도 혐오폭력을 일삼았다. 그 결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들이 제정한 ‘서울시민 인권헌장’ 선포를 일방적으로 폐기했고, 한국장로교총연합회와 간담회 자리를 열어 논란을 일으켰다며 사과하고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차별발언을 했다. 이에 12월 5일 성소수자인권단체들과 시민들은 서울시청 로비를 6일간 점거하며 성소수자 인권보장을 외치고 혐오는 폭력임을 알렸다.

▲ 지난 6월 7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로에서 열린 '제15회 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동성애 반대시위를 하는 기독교인들 앞에서 'Love Conquers Hate(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맞서고 있다. (연합뉴스)

혐오세력들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공격을 바탕으로 사회의 우경화, 반인권의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가속화와 2007년 경제위기로 삶이 불안해진 사람들이 가상의 적(원인)들을 만듦으로서 시민들의 분노를 표출할 곳을 찾게 되는 경향이 있고, 정치지도자들은 그것으로 위기를 탈출하려는 혐오의 정치를 사용한다.

한국에서 혐오는 ‘종북 게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종북 혐오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매카시즘이 ‘공산주의는 나쁜 것, 전쟁의 위협’의 내용으로 이루어졌다면 최근에는 ‘종북 혐오’와 만나며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북한을 무서운 존재로 선전했다면 이제는 3대 세습으로 드러난 봉건성, 거듭된 식량난이 상징하는 후진성을 덧붙여 혐오가 작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2008년 이후 우익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으로 이러한 흐름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심각한 것은 혐오폭력이 우익 백색테러와 결합하고 있는 점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엄마부대봉사단이나 서북청년단 재건위 같은 보수 우익단체들과 일베(일간베스트) 회원들은 “자식이 죽은 게 훈장이냐”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모욕하였고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제어하려고 했다. 급기야 12월 9일 익산에서 신은미 씨와 황선 씨의 토크문화콘서트 현장에서 고등학생인 일베 회원이 사제 폭탄을 던진 일이 발생했다. 그는 종북 혐오에 대한 인식으로 자신이 벌인 폭력으로 2명에게 전신 화상 등 심한 부상을 입혔지만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공포와 사찰의 정치-카카오톡 사찰, 통합진보당 해산

정치 상태와 인간의 전반적 생활 상태는 분리될 수 없듯이 정치와 인권이 떨어질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가능했고 정당성이 결여된 정권이라는 불안은 시민과 단체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시켰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정원이 어느 정도까지 개입됐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경찰과 검찰은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묻던 사람들의 카카오톡을 사찰했다. 정진우 씨의 카톡을 사찰해 3000명의 개인정보와 은밀한 사적 대화가 경찰과 검찰에게 들어갔다. 이는 프라이버시 침해일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온라인 사찰에 대한 법제도가 미비한 것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사찰이후에도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당사자에게 알려주다보니 올해 초 있었던 철도노조 파업 과정에서도 철도노조 간부에 대한 카톡 사찰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 2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국진보연대 주최로 열린 '민주수호 국민대회'에서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결정으로 공중분해된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 등의 참가자들이 '근조 민주주의'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해산을 결정하였다. 8월 11일 2심에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무죄가 났지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제 말할 자유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이 정당 결성의 자유, 결사의 자유도 박탈당했다. 사실 그동안 비선실세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 파문으로 행정 권력의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고 있었던 터였다. 헌재의 결정은 정당민주주의가 사법부의 힘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자 각급 국가권력기관이 얼마나 우경화되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로서 87년 항쟁으로 획득한 정치적 권리마저 분명하게 빼았겼다.

비정규직 체제가 낳은 노동권 박탈에 맞서

통합진보당 해산이후 많은 사람들의 화두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민(民)이 평등하게 주인으로서 존중받는 사회라면 불평등과 차별의 씨앗인 비정규직 문제를 건너뛸 수 없다. 2014년 10월 압구정동에 있는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노동자 이만수 씨는 그동안의 모욕에 괴로워하다 분신해 11월 7일 목숨을 잃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이 드러내듯 위험한 직종이나 업무는 비정규직이 맡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재해도 비정규직이 주로 당한다. 11월 30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추락 사망했다.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하는 정리해고는 동전의 양면이다. C&M(씨앤앰) 원·하청이 109명을 정리해고 하자 원직복직과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원청인 MBK의 태도 변화가 없자 서울신문 광고판 위에서 박성덕, 임정균 씨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5월 27일 구조조정과 해고에 맞서 싸우던 스타케미컬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차광호 씨의 굴뚝 농성에 이어 두 번째이다. 그리고 12월 13일 쌍용차 정리해고 싸움 6년에 김정욱, 이창근 씨가 굴뚝 농성을 시작했다. 11월 13일 대법원에서 회계조작에 의한 정리해고가 부당하지 않다는 대법원의 판결이후 선택한 벼랑이다. 이전에도 대법원은 콜트콜택 정리해고를 판결하면서 현재 경영상의 위기가 없더라도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를 위한 것이므로 정당하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사법부마저 노동자들의 인권을 외면하자 10년을 싸운 기륭전자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12월 22일 97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법제도를 없애야한다고 5일간 오체투지를 했다. 정치세력과의 싸움 없이, 법제도 폐지 없이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되기 어렵지 않은가. 특히나 박근혜 정부가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해 노동자들의 인권은 위기에 처했다. 지난 9월 18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며 모두 정규직’이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단 이후 법제도를 개악하려는 정부의 계산이다. 이제 비정규직 체제는 모두의 문제이다. 3월 6일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발표한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성 청소년들이 많이 하는 배달알바는 배달대행업체와 사업자로 계약을 하는 것으로 악화되고 있는 현실이지 않은가.

아직도 구조적 차별과 괴롭힘에 맞서

비장애인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사소한 것을 얻기 위해서도 목숨을 걸어야한다. 인강원 등 장애인시설 비리와 폭력이 판을 치고 있다. 전북에 있는 자림복지재단에서 원장이지적장애여성 8명을 10년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던 사건이 7월 17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렇듯 장애인을 등등하게 지역에서 생활할 권리를 빼앗고 있는 현실에서 교황이 대규모 시설인 꽃동네를 방문하는 것은 그동안 해온 탈(脫)시설운동을 뒤로 돌리는 일이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교황의 꽃동네 방문 반대운동을 했다. 시설문제는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87년에 세상에 드러난 부산형제복지원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부랑인 시설에서 벌어진 고문에 가까운 가혹행위와 폭력으로 513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아직 국가는 사과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광화문 광장에는 장애인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농성장이 있다. 하지만 올해도 송국현 씨가 장애인등급제로 활동보조시간이 줄어든 상태에서 화마를 피하지 못해 사망했다. 이러한 죽음은 끝나지 않고 오지석 씨와 박홍규 씨로 이어졌다.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좌측)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우측) 사무국장이 13일 오전 4시께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공장 내 도장공장건물 옆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사진=연합뉴스)

구조적 폭력과 차별이 군대나 직장이라는 장소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 28사단 소속 윤일병 구타 사망사건과 kt 직장 내 괴롭힘,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이다. 외부와 차단된 장소에서 계급이 절대적 기준인 군대에서 일상적인 성추행과 구타 등의 가혹행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민주화와 개방 같은 제도적 장치와 군인도 시민권이 있는 동등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정부에 있어야 한다. 군대에 비해 직장은 외부와 열려있는 듯 보이나 그렇지 않다. 노동소득에 의존해 살 수 없는 노동자들이라는 점을 악용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인식과 행동에 미치지 못한다. 회사 안의 위계와 그에 따른 인사고과, 고용불안이라는 작동 방식은 모욕적이고 상습적인 폭언과 배제, 부당한 업무지시를 감내하도록 만든다. 더 문제인 것은 kt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 사례에서 보이듯 고용주나 상급자가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위해 경영전략으로서 괴롭힘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차별이나 괴롭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위계질서가 분명한 직장이라는 장소를 볼 때 상사가 하는 일이면 참아야한다는 조직문화를 깨기 위해서는 괴롭힘에 대한 실태조사와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

존엄과 연대로 맞서는 2015년을 기대하며

2014년에 싸움들은, 인권의 의제들은 그대로 갈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며 강하게 비정규체제를 공고히 하려고 할 것이기에 비정규체제에 맞선 인권운동의 싸움과 극우보수단체의 확장으로 혐오세력과의 싸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차별과 억압에 맞서 존엄한 인간으로 살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공유된 책임과 행동이 아닐까. 인권담론이나 인권의제가 싸움 없이, 실천 없이 만들어진 적은 없다. 우리의 몸이 말하는 것, 우리의 감각이 말하는 모욕과 공감에 대해서 놓치지 않는 일, 연루된 부정의에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겠다고 용기를 내는 일이 인권의 역사를 만든다. 그렇게 존엄한 우리 모두가 함께 손잡는 2015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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