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의 목소리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의 소유자, 배재철(유지태 분)의 실화를 다룬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포털에서 잠깐만 검색해보면 배재철이 어떻게 갑상선 암이라는 역경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하는가를 그리는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만일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가 추리소설이었다면 결과를 뻔히 알고 보아야 하는 곤욕을 치렀을 터,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배재철이 재기에 성공한다는 ‘결과’를 관객이 알고 있음에도 그가 어떻게 재기에 성공하는가 하는 ‘과정’에 집중해야 하는 영화다.

관객이 결과를 알고 관람해야 하는 이 영화를 심리학적으로 조망하면 ‘종말 잔존 효과’로 분석 가능하다. 상반기에 내놓은 작품보다 하반기에 내놓은 영화나 가요가 연말 영화제나 가요제에서 수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심사위원들이 반 년 전에 히트한 작품을 기억하기보다 하반기에 히트한 작품을 기억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배재철의 역경 극복기는, 갑상선 암이라는 역경을 만난 것보다는 역경을 극복한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결과로서의 종말 잔존 효과를 보여준다. 암을 만난 시련은 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암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다는 결과로서의 종말 잔존 효과 말이다.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배재철 개인만이 역경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 뒷받침된 가운데서 역경을 극복한다. 비록 아베 정권이 우경화로 치닫는 바람에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다다르고 있지만, 영화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 극적으로 묘사된다. 일본 오페라 기획자 사와다(이세야 유스케 분)가 갑상선 암으로 목소리를 잃은 배재철과 계속 계약을 이어갈 당위성은 없다.

더 이상 우유를 짤 수 없는 젖소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와다에게 배재철은 목소리로는 더 이상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사와다는 배재철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심지어는 배재철이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사와다는 끝까지 배재철을 기다려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일본의 우경화와는 정반대로 한국의 배재철과 일본의 사와다가 돈독한 우정을 맺어가는 반면, 서양인 타자 멜리나(나타샤타푸스 코비치 분)는 영화 속에서 배재철과 그의 부인의 속을 긁어놓는 적대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국가대표>에서 외국인 타자가 하정우와 일행의 속을 긁어놓는 것 마냥, 멜라니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배재철과 그의 아내를 경멸하고 조롱한다.

멜라니의 방해공작이 극에 달하는 장면은 배재철의 아내 박현호(차예련 분)가 오디션을 볼 때 의도적으로 방해를 놓는 장면일 것이다. 동양인 사와다는 주인공을 도와주는 적극적인 조력자가 되지만, 반대로 서양인 타자 멜라니는 주인공을 방해하는 악역으로서의 타자 기능을 수행한다.

배재철이 재기에 성공한다는 ‘결과’를 뻔히 알고 보는 영화이기는 해도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의 짜임새는 관객으로 하여금 김빠지게 만들지 않는다. 인위적인 연출법이 눈에 보이기는 해도 역경을 당한 배재철이 역경을 극복하는 성장담으로서의 과정에 집중하고 보는 데 있어 이야기는 손색이 없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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